삼각관계 속 딜레마

26. 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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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파멸


말랑공 씀.




  긴 꿈의 끝을 알리는 메시지의 알림 소리가 정수연의 귓가에서 울려퍼졌다. 마치 과거에라도 갔다온 듯 생생했던 꿈 탓에 정수연은 잠에서 깼음에도 깊은 여운이 남아 눈만 뜬 채 그대로 멍하니 누워 있었다.


  ‘꿈…… 이었나.’


  그제서야 꿈이었단 걸 제대로 인지한 정수연은 정신을 차리고는 메시지를 확인하려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그러자 시간이 보였고, 그녀는 벌써 12시 30분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 놀라고 말았다. 오늘이 주말이었었더라면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학교에 가야 하는 평일이었고, 신청한 강의가 있는 날이었다. 그동안 한 번도 지각이나 결석을 하지 않았던 정수연은 벌써 이런 시간까지 잤다는 것에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어쩐지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어차피 늦었는데, 걍 가지 말까……’


  정수연은 핸드폰을 그대로 내려놓으며 한 쪽 팔로 눈을 가리듯 제 머리에 올려놓고는 눈을 감았다. 그렇게 다시 잠에 들 무렵 또 다시 메시지가 온 듯 알림이 울렸다. 정수연은 누가 자꾸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나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다시 들여다봤고, 그 메시지의 주인은 다름아닌 민윤기였다.


민윤기
-수연아.
-무슨 일 있어?
-아직까지 연락도 안 되고 학교에도 안 오고.
-항상 성실하던 네가 갑자기 안 오니깐 교수님께서 걱정하셔.


선배는요?


민윤기
-어?


선배는 나 걱정 안 돼요?


  정수연은 무심코 보내버린 본인의 메시지에 자기 자신한테 진절머리가 났다. 그동안 윤기가 본인을 사랑한단 걸 알면서도, 사랑한단 마음이 변할 리 없다면서 윤기를 제 마음대로 갖고 놀며 자신감에 차있었던 주제에 이제 와서 사랑을 갈구하는 꼴이라니. 게다가 본인은 ‘민윤기’ 라는 사람한테 관심도 없으면서…


  정수연은 자기 자신이 너무 역겹고 한심해 땅이 꺼지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메시지가 삭제되었습니다.
이상한 말해서 죄송해요.
그냥 무시해 주세요, 선배.


민윤기
-나도 네가 걱정돼.
-솔직히 여기서 너한테 고백하는 건 정말 매너가 아닌 것 같고.
-지금은 네 상태가 더 걱정돼서…
-나 지금 뭐라냐… 횡설수설을 하고 있네…
-아무튼.
-혹시 어디 아픈 건 아닌가 걱정돼서 연락해 본 거야.


전 괜찮아요.


민윤기
-그렇담 다행이네.
-푹 쉬어.


선배.
선배는 대체 내 어디가 좋은 거예요?


  정수연은 궁금했다. 신입생 환영회 때부터 갑자기 말을 걸어온 민윤기가 어째서 자신을 좋아하게 됐는지. 항상 보여 줬던 모습은 성실하고, 바르고, 얌전하고, 어느 정도 연약한 그저 소설 속에 클리셰로 등장하는 여주인공같은 모습이었는데 말이다.


민윤기
-사실 신입생 환영회 때 너한테 첫눈에 반했어.
-그래서 너한테 다가간 거였고.
-그리고 감사하게도 넌 나랑 계속 같이 다녀 줬고.
-너랑 같이 다니다 보니까 너의 매력적인 모습들도 알게 됐고.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널 그저 평범한 애라고 생각했어.
-그 탓에 사랑이 조금씩 식기 시작했는데.
-평범한 것도 좋더라고.
-잔잔한 게 좋더라고.
-너 덕에 평범한 것도 좋다는 걸 알게 됐어.
-원래 평범한 게 더 어려운 법이래잖아.
-그래서 뭐… 널 더 사랑하게 됐다고.


  정수연은 그 말을 듣고 기쁠 수가 없었다. 안심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정수연 본인이 생각하기에 자기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으니깐. 남의 약점을 이용하고, 윤기와 지민이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걸 알고서 즐기는 본인은 ‘평범함’이라는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과연 평범함의 기준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