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개

02





여주가 정국을 밀어냈다. 정국은 의외로 순순히 밀려났다. 정국은 초점없이 여주를 바라보았다. 여주는 괜히 소름이 돋았다. 정말, 감정이 없는 사람인 것 같았다. 가끔 보면 악마같기도 했다.



“…”



얼마나 지났을까, 침묵은 정국에 의해서 깨졌다. 정국은 그동안 궁금하고 비밀스러웠던 속마음을 여주에게 뱉었다. 여주는 말없이 정국의 목소리를 머릿속에 눌러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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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를 보면 이상한 감정이 느껴져. 이건 도대체 무슨 감정이야? 너와 같이 있으면 매일 새로운 감정을 배워. 그리고 지금은 너를 안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여주는 단번에 깨달았다. 정국이는 그저 감정에 서투른 거였구나. 내가 싫은 게 아니고, 조금 서투를 뿐이었구나. 여주는 눈물을 머금고 정국을 안았다. 마음껏 안아도 괜찮아. 내가 오해해서 미안해.



“네가 왜 미안해?”

“그냥… 다 미안해. 내가 미안해.”


그리고 여주는 알 수 있었다. 정국이는 나를 싫어하지 않는구나. 다행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이런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서 느끼면, 정국이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에게 털어놓을 것 같았다. 그 감정이 저 자신에게만 한정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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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야,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어.”



여주는 웃었다. 그러자 정국도 웃었다. 여주의 깊게 파인 보조개는 정국의 마음에 쏙 들었다. 정국은 손으로 여주의 볼을 쓸었다. 따스한 느낌이 싫지 않다고 여주는 생각했다. 그리고 정국은 조심스럽고 정성스레 여주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김여주. 뭐 하나 했더니 연애질이냐?”



뒤에서 윤기가 나왔다. 윤기는 여주의 머리에 꿀밤을 한 대 때리고는 종이 뭉치를 여주에게 건네고 유유히 걸어갔다. 그제야 여주의 머릿속에 현실이 들어왔다. 아, 윤기가 노트 정리한 거 준다고 그랬지. 그리고 여주는 방금 전 일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여주야. 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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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의 얼굴을 쓸던 손을 턱에 고정시키고 당겼다. 조금은 위태로운 자세였다. 깊게 파였던 보조개는 금방 쑥 들어갔다. 정국은 아쉬워 표정을 굳혔다. 여주는 그런 정국에 몸을 뒤로 뺐다. 자신의 보조개를 갈망하는 눈빛이 조금은 겁이 났다.



“... 수업 들어가야지.”



정국은 여주를 놓지 않았다. 다시 여주를 잃을까 겁이 났다. 서로 왜 그렇게 겁을 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좋으면 사랑 하면 될 것을,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고민했다.



“가지 말자.”


정국 덕분에 의도치 않게 수업을 빼 버린 여주였다. 덕분에 둘은 교무실로 불려 갔고 남아서 청소를 해야하는 의무가 주어졌다. 정국은 옆에 여주가 있다는 것에 안도했다. 그렇게 하기 싫던 청소는 서로가 있다는 것에 의존해 즐겁게 끝낼 수 있었다.


늦게 끝나버린 청소 때문에 여주와 정국, 둘은 아무도 없는 학교에 남겨졌다. 정국과 여주는 제일 높은 층을 청소 해 학교를 나가려면 꽤 걸어야 했다. 때는 겨울에 가까운 가을이라 으스스하고 춥기도 했다. 정국은 추위를 잘 느끼지 못 했지만 여주는 추워서 몸을 덜덜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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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야, 추워?”



정국은 자연스레 여주를 안았다. 그로인해 여주는 앞으로 걸을 수 없었다. 십 분을 넘게 그러고 서 있었다. 여주는 따뜻해서 좋았지만, 신경쓰이던 추위가 가시니까 어둠이 다가왔다. 몇 달 전 집에서 우연히 본 좀비영화가 문득 떠올랐다. 여주는 좀비의 얼굴이 기억나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자 정국은 추운가, 싶어서 더 꽉 안았다. 여주는 그 덕에 공포를 조금이나마 덜었다.



“정, 정국아. 저기서 무슨 소리 나.”



점점 겨울에 가까워 저서 그런지 해는 빨리 졌다. 그와중에 여주의 뒤에서는 달그락,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났다. 정국은 여주의 말에 이곳저곳을 봤지만 보이는 건 텅 빈 교실, 먼지가 쌓인 복도, 더러워진 창문뿐이었다.



“아무것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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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은 여주를 안심시키려 했으나 여주는 계속 떨었다. 정국은 어쩔수 없다 싶어 여주를 안아 들고 학교를 빠져 나왔다. 학교 정문에 다다르자 뒤에서 뭔가 쿵, 쿵 소리를 내며 쫓아왔다. 정국은 신경도 쓰지 않고 문을 나왔다. 그러자 사방이 조용해졌다. 여주는 당연히 정국이 자신을 내려줄 줄 알았으나 정국은 내려주지 않았다.



“까불지 말고, 가만히 있어.”



뭐야. 여주는 놀랐다. 까불지 말라고? 처음보는 정국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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