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 어렴풋이 이전을
어렴풋 떠올린 이전이 마주한 당장과 비슷한게 착각이 아닌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널 사랑하지 않는다 착각하고 있을 때였다.
거뭇게 오염된 셔츠와 곳곳에 피가고인 상처는 따갑다 하지도 못할 것이었다. 손은 수갑에 묶인 채 어깨부근 빗맞은 총상과 깊히 베인듯 사정없이 흘러나오는 피는 욱씬거렸다. 고르려 반복해서 일정한 속도로 내뱉은 숨이 자꾸만 덥혀졌다. 하나로 묶인 머리카락이 그 틈으로 삐져나와 그마저도 약간인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가만없었다. 얼굴에 진득이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않는 머리칼을 수갑에 묶인 손을 올려 신경질적으로 떼어냈다.
주황에 가까운 노란 빛이 골목 사이로 그나마 두어개 있는 등 밑으로 내리쬈다. 몸에 힘이 조금씩 자꾸 빠져나가는 감각에 사람 하나 미치는 것도 이리 쉽구나 싶었다. 정신 멀쩡히 당신 죽는 꼴을 보고있자니 본래가 바른 자세일 수는 없는 거였다.
“ 다 즐긴거면 이제 그만 좀 끝내주지 그래. 피차 피곤할일 직접 나서서 할 필욘 없지 않나. 죽는 꼴이 보고 싶으면 대가리에 총 한번 쏘면 끝날일이고, 대-단한 형사님께서 날 잡아가고 싶은 거라면 순순히 잡혀가줄 수는 있거든. 보다시피 내 상태가 바닥이라. ”
“ 허, 난 너 안 믿어. 못 믿는다고. 상태가 어떻든 수갑하나 풀어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벗어날 사람이란거 설마 내가 모를까봐. 당장이라도 너같은 질떨어지는 건 잡아다가 족쳐놓고 싶은데 참는거야. 말 가려서 하지? ”
“ 잡아다가 족쳐놔? 푸하핫, 지랄을 하네. 일개 형사가 조직배 부보스 잡아다가 어디까지 구워삶을 수 있을것 같은데 그래. ”
태형이 유은을 향해 총을 들어올린 순간 승합차 한 대가 그 사이를 가로지르더니, 형사들은 모조리 기절시키고 급히 유은을 데려갔다.
유은이 태형을 죽이려들었던 그 날의 한참 과거에, 태형이 죽이려들었던 유은은 죽지 않았었다.

의식을 차리자 보이는 것은 어중간한 크기의 방과 한쪽 면으로 길게 치러진 철창이었다. 손 한쪽으로는 링겔을 꽃고 있었고 손에는 못보던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황당한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얼굴 그대로 비치자 지켜보던 태형이 입에 담배를 얹곤 고개를 기웃했다. 짜증이 솟은 유은은 핏기가 가신 팔에 꽃힌 링겔을 저항없이 뜯었다.
“ 오랜만. ”
“ 따지자면 오랜만은 아니지 않나. 아니 그것보다, 죽어간다고 좀 데려가라고 했더니 환자를 이렇게 묶어두는 건 어디 상식이지. 나 줄것 아니면 그 담배도 좀 치우지 그래. ”
“ 아. 이 담배가 땡기시나봐. 내가 마시다 말 건데 괜찮겠으면 뭐. ”
유은이 얄밉게 구는 그를 괘씸하게 쳐다보자 그가 천천히 유은에게로 다가와 담배 한 개비를 물렸다. 거즘 없다시피한 불 씨에 라이터 좀 대보라고 눈짓을 보내자 태형은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는 순순히 따라주었다. 시덥잖은 농담이 몇번 오가더니 그마저도 흥미가 떨어졌는지 이만 수갑을 풀어주었다.
“ 왠일로. ”
“ 별로 재미가 없어서. 어짜피 여긴 내 구역이고 넌 낯설 곳인데 게다가 갇힌 곳에서는 뭘 할수 있겠냐는 내 방심이라고 말하면 믿을래? 뭐, 믿지 않아도 상관없어. 그냥 내 맘이니까. ”
유은이 어이없는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지만 태형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말은 여유롭다는 듯이 해도 수갑을 꽉 쥐고 묶였던 손만 노려보는 언행불일치한 태형의 행동에 유은이 새나온 웃음을 참지 못했다.
“ 뭐, 네 위에 놈들 지시신건가? 아니면 그게 네 법이야? 지긋지긋한 그 수칙 넌 꼭 네가 규정하고 어긴 적이 없잖아. 단순하기는. ”
“ 그딴식으로 지껄이지마. ”
순식간에 싸늘한 눈빛으로 돌변한 태형에게 능글거린 말투로 아무래도 상관없다며 귓가를 톡톡 쳤다. 태형이 숨을 가다듬고 다시 그녀의 앞에 감았던 눈을 뜨자 유은이 보이지 않았다. 아차 싶어서 뒤를 돌자 문 열쇠를 제멋대로 갖고놀며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띤 유은이 태형을 향해 냉큼 혀를 내밀었다. 다급하게 유은에게로 달려갔지만 이미 문밖에서 그가 있는 곳의 철창을 잠그고 있었다.
그러게 범죄자 가까이 올때는 조심할 줄 알았어야지.
여전히 멍청한 새끼네. 아님 일부러 기횔 던져준 건가.
기던 아니던 개새끼는 갇혀 있어, 주인님은 갈 테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