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코 과부화

D: 키스조차 방심은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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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키스조차 방심은 금물

키스조차 방심은 금물이었으니, 날카롭게 재패는 어떤 것도 놓인 정신보단 못했다. 간결한 정 사이 경멸과 증오는 어디 멀리 존재할까.



일말의 기대도 없었다지만 너무한건 피차 매한가지였다. 전부 빼앗겨 장비 하나 없이 나선 유은은 독안에 든 쥐나 다름없었으니깐. 갉아뱉고 도망간다 한들 질게 뻔한 게임이었으니, 적이 족히 백은 넘는 소굴에서 맨몸으로 살아남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뒤틀린 속을 다잡고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총격 한 발에 모든 희망이 거짓이었다는 듯 유은을 농락했다. 그러게 왜 나대고 지랄이야.
태형이 차분함은 잊었는지 다급히 걸어오며 비웃었다. 유은에게 모욕적인 말이 닿고 기꺼이 몸을 일으켜 세우자 태형이 한참 노려보더니 유은의 등을 내리쳤다. 그러자 힘없이 넘어지는 유은의 목을 급히 깜싸쥐고 그녀의 등이 바닥을 향하게 했다. 다리로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하고 얼굴을 마주보자 잔뜩 언짢은 표정의 유은이 보였다.

“ 이번엔 네가 졌어. 인정해야지, 예쁜아. ”



유은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가 다가가 입술을 맞댔다. 그것도 한껏 치명적이게. 숨이 막히긴 커녕 오랜 키스 내공의 소유자일까 오랫동안 서로에게 맞물려있다간 떼어내자 진한 타액이 묻어났다. 유은이 풀어헤친 넥타이를 다시 곧게 매주려 손을 올리자, 태형이 이를 뿌리치고는 유은에게 다시 입술을 문댔다. 유은이 태형의 머리채를 낚아채 들어올리자 그는 비뚠 심기로 눈썹을 찌푸렸다.

키스가 하고 싶으면 대가를 내야지, 안 그래 늑대야. 


“ 이미 치뤘어. 네가 물고 있던 그거, 그대로 받아 먹었잖아? 그걸론 부족한가봐. 욕심도 많아라. ”

알면서 처먹기는, 미친 놈.

가만있어도 깊게 품기는 술냄새에 서서히 와인향에 취해갈 쯤 도수 쎈 보드카를 두모금 가까이 삼킨 태형이 눈이 풀린 견과로 유은에게 쓰러져 내렸다.
이제 이걸 어떻게 치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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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 여전히 깨지 않는 태형을 보고 따분하다고 중얼거리며 그를 지켜보다 갑자기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태형의 귀에 속삭였다. 방금 일어난 거 알아. 귀신같기는.
태형은 몸을 일으키자마자 비틀 머리를 잠시 부여잡더니 말없이 둘러보곤 이해가 안간다는 모양새로 유은을 쳐다봤다. 그러자 유은이 그럴줄 알았다며 고개를 으쓱하곤 재차 이야기했다.


“ 의아할게 뭐가 있어? 여긴 네가 모르는 배 밑 지하실이고, 너한테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건.. 인질이라는 것과, 기껏해야 바다 한가운데에서 죽으면 누가 찾을 수나 있을까 싶은 것 아닐까. ”

“ 말 한번 살벌하게 하네. 됐고 이거나 풀어. ”


“ 이해가 안 가는건지. 너 인질이라니깐? 풀긴 뭘 풀어 죽여도 속 시원찮을 판에. ”


유은이 태형에게 칼을 겨누었다 말았다를 반복했다. 태형에게서 옅은 헛웃음이 나오고야 말자, 그는 유은이 손에서 굴리던 칼을 입으로 잽싸게 물어 손을 묶은 밧줄을 잘라냈다. 그러고는 당당히 술을 요구하자 유은이 순하게 굴며 그러려니 나섰다.
한 몇분 지났을까. 지하실 철문이 열리고 유은이 와인 와병을 손에 흔들더니 마개를 따 그에게 건냈다. 태형은 넘겨받은 술을 유은에게 뒤집어 씌우자 진한 적색과 함께 시큰한 포도향이 셔츠 주변으로 물들었다.


“ 술 좀 달래서 건네줬더니 뒤집어 씌우냐. 정 없는 놈. ”

유은이 혀를 차며 태형에게서 와인을 가로채 반남은 와인을 병 채로 들이마셨다. 그나 남은 몇모금을 마시더니 술에 취한 듯 주절주절 쓸데없는 소리만 늘어놓았다. 
시끄러 개새끼야.


마치 열렬하게 사랑하는 것처럼 서로에게 더 옭아메져갔다. 모든것이 짜맞추어지기라도 한 듯, 심지어 와인의 슬며시 피어나는 향의 그 정도까지도 너무나 완벽했다. 술에 취해 서로에게 진심이 아닌것을 들켜버렸을까, 취한것 치곤 건전하게 굴리는 키스에 다정함은 태초부터 없었다. 마침 곁에 있는 서로에게 조금의 이성이라던가 와인의 흠, 마침 아름답고 이끌리듯 시도함과 같았다.

이런, 또 키스해버렸다. 술에 같이 취하게 생겼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