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듯이 새햐얀 피부색과, 그를 돋보이게 만드는 진한 흑발
내 뜨거운 피만큼 진한 붉은 빛의 눈동자.
날 잡아먹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덩치와 괜히 하얀 내 목을 불편하게 만드는 뾰족한 송곳니, 온몸의 피가 거꾸로 쏟게 만드는 눈빛까지.
그는 마치 소설에 나오는 흡혈귀 같았다. 어디서 본것 같기도 했다.
큰 눈에 오똑한 코, 눈동자 못지 않은 붉은 입술.
어두운 골목과 유난히 밝은 달빛이 만들어낸 환각이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알수없는 두려움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기에
하지만 그것이 환각은 아닌것 같다.
그가 또다시 내 앞에 서있으니.
그날밤엔 풀어헤쳐 놓은 검정 셔츠를 입고 있었다면
오늘은 정장을 차려입고 내 앞에 앉아있다.
모처럼 친구와 좋은 레스토랑에 왔건만,
모두 멈춰있는 가운데 그와 나만이 움직인다.
"..너 나 알지?"
이사람 아니 이것을 보고 기억을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거다.
"...저 아세요? " 그래도 한번 시치미라도 때본다.
"모르는 척 하지마. 며칠전에 내 눈 본사람 맞잖아"
그러고 보니 오늘은 눈이 빨갔지 않다. 조금 붉을뿐
"....용건이 뭔데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만큼 두렵지만 내가 여기를 어떻게 왔는데, 나가려면 저이가 가야지 하는 심정으로 앉아있는다.
"나 좀 도와줘. 그에 따른 보상은 해줄게"
"뭐를 도와줘요?" 뭐에 홀리기라도 한듯 자꾸 대화가 이어진다 당장이라도 도망치고픈 내 마음과는 달리.
"간단해. 보름마다 날 처음으로 만난 그곳으로 와. 시간은 12시"
"..거기가면 나 뭐 해야 하는건데요"
"그건 그때 가서 알려줄게 비밀유지가 중요해서"
"..아 너 다치게는 안해 걱정마"
"..." 왜 하필 나인지, 왜 그 장소인지 어째서 12시에 가야하는지, 왜 보름에 가야돼는지 물어 보고 싶은게 산더미이지만 선뜻 입을 열지 못하고 그를 뚫어져라 보고만 있는다.
"이유가 궁금해? 그날 알려준다고"
"안 물어 봤는데요"
"니가 생각했잖아"
"헐 제 맘이 들려요?" 설마하는 마음으로 물어봤다. 내가 속으로 저사람 무섭다는 생각을 얼마나 했는데.
"아니 그냥 니 눈이 말해서"
"아 제 눈빛 읽어요??"
"갑자기 들리더라"
말도 안돼.. 이사람 아니 이건 사람이 아닌게 확실하다.
혹시나하는 마음에 보름이 돼는 날을 기다렸다.
뭐 그래봤자 2일만 기다리면 됐지만
그가 보상을 해준다 해서 가는건 아니다. 진짜 아니다.
그저 호기심때문에 가는 것뿐
드디어 그날이 왔다.
평소 같으면 집에 와서 누워있을 나였지만 오늘만큼은 눈치를 보며 길거리를 서성거리고 있다.
11시 59분.
천천히 그 골목으로 걸어본다.
12시 정각.
"...헐"
"어 진짜 왔네"
"당신 뭐야...당신이 뭔데.."
"그럴줄 알았어 이걸 보고도 못믿는거야?"
"..." 내 눈에서 뜨거운 무언가 흘렀다.
"울지마 우리 딸. 아빠가 꼭 다시 온다고 했지"
그곳에 서있는건 눈이 붉은 뱀파이어가 아닌 낡은 옷을 입은 돌아가신 아버지였다.
1월 보름 12시에 칭얼거린 날 위해 붕어빵을 사러가셨다 세상을 떠나신 우리 아버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