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나의 우주에서 너의 기억이 사라진다 해도

01. 지구별과 똑같은 너의 행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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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x 개새끼들... "






나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일어났다. 내 마지막 기억은 내가 탄 탈출용 버틀을 본체에서 때어낸 내 동료라는 자들의 비열한 웃음이었다.






"하... 미친놈들... 사람을 아주 죽일려고 작정했지?"






나는 내가 쓰고 있던 우주비행사용 고글이 남아있는 산소가 부족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이를 부드득 갈며 빠르게 내 손목을 바라보았다.



산소 0.09%미만
오존 : 보통
온도 : 21도
생존 가능성 : 89.8%
지구와 유사성 : 99.79%



나는 입술을 꾹 깨물다가 눈을 지긋이 감았다.






''이대로 여기서 헬멧을 벗고 숨쉬면... 뒤질려나?''






벗어도 죽고 벗지 않아도 죽을거 그냥 벗고 죽기로 했다. 정확히는 내 우주복이 주는 정보를 믿었다. 내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고글은 산소가 다 떨어졌다는 신호를 보냈다.


망설임 없이 황급히 눈을 뜨고 우주용 헬멧을 벗었다. 숨을 한번 내 뱉고 다시 크게 들이 마쉬니 한달동안 맡지 못했던 흙냄새가 풍겨왔다.






"후하... "





당장 숨막힐 걱정이 사라지니 이제서야 내가 기절해있던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주비행사용 잡지나 논문에 실린적 없는 행성임이 분명했다.

모든 행성의 이름을 기억하는 내게 모르는 행성이 있을리가 없고 그런 나보다 더 정확한 시스템이 이 행성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을리가 없다.






" 대체 이 행성은... "






하늘을 올려다 보니 밝은 태양과 비슷한, 아니 태양보다 더 큰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정말... 지구는 아니구나... ''






내 앞엔 커다란 나무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나무들에 가려 생긴 그늘에는 생전 처음보는 꽃부터 이름모를 풀들까지. 다양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 근데 여기가 지구라고 해도 난 믿을거 같아... ''








주변은 산이며 들이며 물까지 보이니 마치 내가 알지 못한 지구에 어느 한 지역에 머물러있는 기분이었다.






"이쁘다... "






고요한 정적 속 흐르는 물소리만 가득했다. 물에 흔적만 발견된 행성은 여럿 있었지만 흐르는 물이 직접 있는 행성이 발견된 것은 지금이 처음일 것이다.


물론 나무와 꽃, 풀 등 살아있는 유기물이 있는 행성도 처음이니 우주비행사이자 탐험가로써 성공한 발견이고 생물학자로써는 조사할 것이 가득한 광산이었다.


아름다운 그 관경도 잠시. 생물학자의 직업병으로 자리에 일어나 주변을 탐색하려는 순간 왼쪽 종아리 부근에서 강한 통증과 끈쩍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아... 미친... "






왼쪽 다리를 보니 우주복이 찢어져있었고 피가 스멀스멀나기 시작했다. 당장 우주복을 벗어보니 어디에 쓸린듯한 상처가 깊게 자리했다. 황급히 긴급 구급함에서 소독약과 붕대, 그리고 약을 꺼내 빠르게 치료했다.






"지구에 신호를 보내야하는데... ㅈ됐다 진짜. "






지금 내게 있는건 일부 비상약과 소량의 소독약 등이 담긴 구급함과 간단한 에너지바 4개, 태양광을 이용하는 기록용 카메라 하나와 회전력을 이용한 기록용 테블릿, 모든 언어를 번역해주는 통신기가 다였다.


즉, 내겐 지구별에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장치가 하나도 없었다. 내가 타고 있던 탈출용 버틀에 신호기가 하나 있지만 지금 중요한건 내가 기절해 있는 틈에 긴급 탈출이 발동한 탓에 내 희망인 버틀이 어디있는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다.






"아니야, 아니야 넌 찾을 수 있어. 아직 희망이 있다고. "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다시 일어나 기록용 카메라에 남은 배터리를 확인했다.


남은 배터리 : 67%
현재 상태 : 충전중


다행히 여기에 있는 태양과 비슷한 별로도 태양광이 돌아가는 모양이다. 나는 빠르게 카메라를 키고 내가 있는 주변을 천천히 찍으며 말했다.






"오늘 날짜. 2122년 아, 이제 2123년 1월 18일... 아니 20일. 내 이름은 윤여명. 나이는... 올해로 23.

현재 이름 모를 행성에 조난 당했다. 이곳은 지구와 99.79% 유사한 행성이며 아직 살아있는 소비자를 만나지 못했지만 꽃과 풀, 그리고 나무와 비슷한 여러 생산자들이 자리하고 있다. "






나는 이 모든 생물들의 모습을 남기기 위해 내 주변에 있는 꽃과 나무들을 천천히 찍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가로 천천히 가 흐르는 물의 모습도 담았다.






"이들은 우리 인간이 발견한 최초의 유기물이며 이곳에 물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또한 물의 존재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은 어쩌면 우리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이며 우리와 비슷한 지성을 가진 외계인들을 조우할 가능성이 있다. "






가능성은 개뿔. 내 다리 상황이 더 악화되고 남은 에너지바를 다먹은 5일이 지난 후에도 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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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지구별과 똑같은 너의 행성은

















" 조난 5일차. 그냥 뒈지고 싶어 죽겠다. 저녁엔 존나 욕나올 정도로 춥고 배고파 죽겠다. 그냥 죽고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나는 한숨을 한번 푹 내쉬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처음에 이짓도 울면서 했지만 시간이 지나보니 다 부질없게 느껴졌다.






'' 지금 주변에서 내가 먹을 수 있을 만한 과일... 뭐 그런 비스무리한 것들을 가지고 왔는데. 일단 한번 먹어보겠다. 이대로 죽으면... 뭐 어쩌겠는가? 내 인생이 그런거지 뭐. 하... ㅈ같다 진짜. "






나는 궁시렁궁시렁거리며 과일을 하나 둘 먹기 시작했다. 내가 가지고 온 과일들은 하나같이 앙증맞게 콩알탄처럼 생겼다. 


일단 크게 심호흡을 하고 혹시 독이 들어있을까봐 만능 해독약을 먹고 병균이 있을까봐 면역력증진 약을 함께 삼켰다. 먼저 같은 나무에서 자란 빨간색 과일을 한움큼 쥐고 먹어보았다.





" 으음... 이건 그냥... 너무 시다. 빈속에 먹으니 토할 듯 속이 쓰려온다. 다음부턴 빈속에 먹지 말아야지. "






다른 과일도 먹으려는 순간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고 바로 내 볼을 스치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과일이 있는 쪽으로 떨어졌다.

과일은 그 날카로운 칼과 비슷한 무기로 인해 으깨지거나 형태를 잃어 이 과일 저 과일과 뒤엉켜버렸다.






" 내... 내 밥... "






눈에선 억울한 나머지 눈물이 툭툭 떨어졌고 볼에서 따끔한 감촉이 느껴졌다. 나는 곧바로 뒤를 돌아 나를 공격한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 와... "






그와 조우한 순간 나는 말을 잃었다.

내 23년 한 평생 그렇게 잘생긴 사람은 처음봤다. 떨어지는 항성의 빛을 받아서인지 그는 빛이 났다. 마치 숲 속에 살고 있는 작은 요정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며 빛의 정령처럼 보였다.

물론 이들을 한번도 본적이 없고 전설처럼 내려져오는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들이었지만 이들이 실존하면 지금 내 앞에 서있는 그였을 것이다.


과장이 아니라 지금 바로 지옥의 문 앞에 서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감탄만 나왔다. 아마 그가 자신이 악마라 말해도 따라갈 것이다.






" 아, 안녕하세요? "






혹시 말이 통할까 기대감에 부풀어 공통어로 그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아무래도 그들의 생김새가 나와 유사한 것을 보아하니 오래 전 나처럼 이름 모를 이 아름다운 행성에 조난당한 이들이 분명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내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 어... 어... 이러면... 이러면 안돼는데.... "






나는 패닉에 빠진 상태로 황급히 통신기를 귀에 꽂았다. 통신기는 그들의 언어를 주어듣더니 작동을 하기 시작했다.






" 사, 살려줘!! "






이 통신기의 단점은 나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의 언어를 들을 수 있지만 그들은 내 언어를 들을 수 없기때문에 나는 몸으로 내 상태를 표현해야만 했다.






"흐, 흐흡... 흑... 미안... 죽고싶다는 말 다 구라삥뽕이야 난 살고싶다고 흐아아아아ㅏㅇ"






참았던 눈물이 터져나오고 그는 안절부절못하더니 나를 공주님 안기로 번쩍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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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어... 저, 저기... 울지마 외계인. ''













그게 나와 나의 첫번째 수빈와의 첫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