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씨... 도저히 기억이 안나네... ''
범규는 머리를 긁적이며 연준이의 집에서 나왔다. 분명 연준이가 다시 돌아온 자신을 반갑게 맞이해줄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돌아오는건 꺼지라는 차가운 말이었다.
'' 아, 또 귀찮아서 기록 안하고 죽었나? ''
범규는 어깨를 으쓱이며 태현이를 바라보았다. 태현이는 그런 범규를 한심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 왜? 뭐? ''
'' 수빈이 형한테 물어봐요. 셋이 연관되어 있는거 같던데. ''
'' 뭐야????? 너 뭐 알고있지? ''
'' 정확히는 모르는데 수빈이가 그 상황을 지켜본건 알아요. 그러게 내가 제때 제때 기록하라고 했잖아요. ''
범규는 자신의 머리를 감싸며 고통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 으으... 전혀 기억이 안나... ''

'' 안나겠죠. 기록을 안했으니까. ''
그때 저 멀리서 여명이를 안고 오는 수빈이를 발견한 범규가 후다닥 달려갔다.
'' 수빈이형!!! ''
손을 붕붕거리며 수빈이에게 손인사를 하는 범규는 수빈이의 품에 안긴 여명이를 보곤 손을 천천히 내렸다.
'' 시체? ''
'' 시체 아니야. 살아있어. ''
범규를 따라 천천히 수빈이에게 다가온 태현이는 눈쌀을 찌푸렸다.
'' 또 뭐 이상한걸 주어왔어요? ''

'' 이상한거 아니야. 내꺼야 ''
태현이의 물음에 수빈이는 여명이를 보더니 조금더 자신의 쪽으로 끌어안았다. 범규는 어느새 수빈이의 옆으로가 여명이의 볼을 쿡쿡 찔렀다.
'' 근데 이쁘게 생겼다 ''
'' 건들지 말라고. ''
단호한 수빈이의 말에 범규는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손을 내렸다.
'' 반하기라도 했어요? ''
'' 엥? 설마? 강태현.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
'' 어. 반했어. ''
'' 에엥? ''
'' ...외계인이죠? ''
'' 어어...? ''
태현이의 물음에 깜짝 놀란 수빈이가 여명이를 안은 손에 힘을 주었다. 기절해있던 여명이는 아팠는지 싫은 소리를 냈다.
'' 무슨 생각으로 주워온거예요? ''
'' ....내가 키울거야. 신경쓰지마. 나 간다. ''
수빈이는 한말 톡 쏘아붙이고 태현이와 범규를 지나갔다. 범규는 멀어지는 수빈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태현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 야, 저것도 기록해야하나? ''
'' ...얼마 안가서 죽겠죠. ''
'' 그치 그동안 수빈이형이 주어온 애들은 다 죽었으니까 ''
수빈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때쯤 범규는 손벽을 딱 치며 말했다.
'' 아, 맞다. 수빈이형한테 물어봤어야했는데 ''
태현이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 형이 연준이형 먹을거 훔쳐 먹었어요. ''
'' 아, 뭐야. 별거 아니여서 기록 안했네 ''
'' 별거 아닌일에 연준이형이 화내요? ''
'' 그럼 뭔가 더 있었나보지. 그냥 먹을거 왕창 가지고 가서 형한테 주면 풀려. ''

02우주의 언어
극심한 갈증에 눈을 뜨니 낯선 천장이 보였다. 나는 눈을 천천히 굴려 주위를 살펴보다가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 아. ''
다리에서 느껴지는 찌릿한 통증에 눈쌀을 찌푸렸다. 이쁘게 붕대가 감겨있었다. 나는 내 다리가 치료된 것을 보고 손을 볼 위에 살며시 올렸다.
'' 치료해줬나보네. ''
내심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침대에서 이러날려고 하자 문이 열리더니 아까 본 아이가 들어왔다.
'' 일어났네. ''
손에는 먹을게 잔뜩 들어있었다. 그는 내게 과일처럼 보이는 것들과 물을 건냈다.
나는 잠시 그를 노려보다가 허둥지둥 물을 마시고 과일을 미친듯이 손으로 퍼먹었다.
'' 켘, 케켘 ''
급하게 먹었는지 가슴이 답답해져 주먹으로 퍽퍽 내리쳤다. 외계인은 내 등을 토닥여주며 빈 물잔에 물을 더 떠주었다.
'' 음... 천천히 먹어. ''
나는 물을 마시고 고개를 끄덕였다.
'' 내 말을 이해해? ''
나는 내 귀에 있는 번역기를 툭툭 두드렸다. 그는 내 머리를 귀 뒤로 넘긴 후 번역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신기하네... ''
심장에서 나온 청색 파장, 그 짧디 짧은 감정이라는 이름의 파장이 온몸의 세포를 쿡쿡 찌르는 기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심장이 간지러웠다.
'아... 미친... '
나는 급하게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돌렸다. 심장이 귓까지 울렸다. 내가 이 외계인한테 빠진건가? 그럴리 없다. 그건 소행성끼리 충돌하는 것과 비슷한 아니, 그것보다 더 희박한 확률일테니까.
나는 그가 건낸 과일을 다 먹은 후 꾸벅 인사를 했다.
'' 최수빈이야. ''
나는 고개를 한번 갸웃거리며 내가 텅빈 접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수빈이는 푸핫 웃으며 자신을 가르켰다.
'' 내 이름이 수빈이라고. ''
'' 슈빙? 숩인? ''
'' 어? ''
수빈이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말도...할 수 있네? ''
((끄덕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음... 그게 아니라. 따라해봐. 수. ''
'' 수...? ''
'' 그래, 수. 그리고... 빈. ''
'' 빈... ''

'' 맞아 그거야. 수빈. ''
'' 수, 수...빈. 최수빈? ''
내가 처음 배운 그의 언어는
최수빈
그의 이름이었다.
'' 수빈... 최수빈... ''

'' 응, 왜 불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