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용의자

A-01, 그리고 D.H라는 이름

그날 밤, 도현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며 숨을 고르는 사이,

그 남자의 얼굴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말투.

눈빛.

미소.

 

자기 자신이 아닌 자신.

이질감과 기시감이 공존하는 얼굴.

 

“쓸모가 생겼어.”

“너는 그 얼굴을 견디지 못해.”

 

아침이 밝자, 그는 책상 서랍을 열었다.

몇 년 전 국과수에서 퇴직하며 가져온 서류 뭉치.

정리되지 않은 서류, 수첩, 메모.

평소엔 눈길도 주지 않았던 더미였다.

 

하지만 지금,

그 속에 뭔가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A-01’

‘디에이치’

 

복제자가 흘린 두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서류 더미를 뒤적이던 중,

도현은 얇은 회색 파일 하나를 발견했다.

 

국과수 내부 이관 기록

[기밀] 표기, 수기 메모 다수 포함

 

처음 보는 문서였다.

그는 파일을 펼쳤다.

 

첫 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피험체 A-01]

이름: 없음

유전정보: 표준 샘플 기반 / 외형 동기화 테스트 대상

상태: 관찰 중 (심리적 동기화 진행 중)

 

참고: 최초 행동 반응 기록 – ‘의심’, ‘부정’, ‘회피’

 

관찰자: D.H

 

 

 

 

 

 

 

 

이미지

 

“D.H…?”

 

도현은 눈썹을 찌푸렸다.

이 이니셜은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익숙했다.

 

그는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관찰 기록 (3차)

“피험체는 자신이 ‘실제 인간’임을 주장함.”

“기억 대부분이 고정된 상태이며, 자율 판단 기준 확보됨.”

“문제: 외형은 완벽히 인간이나, 정체성에 대한 고유 의식이 결여되어 있음.”

“그러나, 도현(D.H)의 판단에 따라 실험은 계속 유지됨.”

 

“…뭐야.”

숨이 멎는 느낌이었다.

 

“도현의 판단에 따라 실험이 유지된다.”

 

그 문장은 도현 본인이 누군가의 관찰 대상이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혹은—

그 자신이 관찰자였거나.

 

“내가 관찰자인데… 피험체 이름도 D.H라고…?”

그는 파일을 덮지 못한 채 그대로 멈춰 있었다.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그 얼굴을 한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이 그 실험의 일부였다는 가능성이

지금, 파일 위에 적혀 있었다.

 

핸드폰 진동.

 

하윤이었다.

“도현. 방금 경찰 정보망 해킹했는데,

몇 달 전 실종된 연구원 하나… 너랑 같은 이름 쓰는 사람 있었어.”

 

“…도현?”

“어, 정확히는 ‘이도현’.

실종 당시, 얼굴 사진은 비공개.

근데 뭔 줄 알아?”

 

“…뭔데.”

 

“등록번호가 아예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