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용의자

지워진 병원을 찾아서

“서울 외곽.

폐쇄된 민간 병원 하나가 떠 있어.

국가 인증은 없고, 출입 기록도 끊긴 지 6년 됐어.”

 

정하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근데 이상한 건,

거기 CCTV는 지금도 돌아가고 있어.

누군가는 내부 장비 전원을 계속 켜놓고 있단 말이지.”

 

“…좌표 줘.”

 

도현은 망설이지 않았다.

 

“도현아.

거기… 뭔가 있어도,

기억이 다 진실이라는 보장은 없을 거야.”

 

“상관없어.

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거기 가서 내가 판단할 거니까.”

 

병원은 산 중턱,

길지도 짧지도 않은 굽은 길 끝에 있었다.

 

간판은 지워져 있었고,

철문에는 녹이 슬어 있었다.

그러나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오래된 병원 안으로 발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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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거의 들지 않는 로비.

의자 몇 개가 뒤집혀 있었고,

접수대 위에는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다.

 

하지만…

 

그 한쪽 벽,

프레임이 반쯤 깨진 유리 안내판 위엔

희미하게 글자가 남아 있었다.

 

[임상시험관 A동 →]

 

“여기… 본 적 있어.”

 

숨이 막혔다.

기억이 있었다.

구체적인 건 아니었지만—

 

이 복도의 구조,

바닥의 기울기,

형광등의 간격까지.

여기를, 난… 걸어봤다.

 

복도 끝 문을 열자,

작은 방이 나왔다.

 

그 안에는 책상, 침대,

그리고—

벽면 가득 사진과 도표가 붙은 보드.

 

실험 대상 리스트

A-01 / A-02 / A-03 …

 

비고: A-01 행동 패턴 자율화 단계 진입

관찰자 설정 성공 / 외부 반응 안정적

 

“…‘설정’?”

 

그리고 그 옆엔 오래된 거울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는 천천히 그 거울을 향해 걸어갔다.

 

자신의 모습.

익숙하지만 낯선 얼굴.

 

기억 속에선 늘 ‘내 것’이라 믿어왔던 얼굴이

이 순간엔 너무 낯설었다.

 

 

 

 

 

 

 

 

 

 

이미지

 

그는 거울 앞에 서서 중얼거렸다.

 

“…내가 만든 얼굴이 아니라,

누군가가 만든 얼굴이었네.”

 

거울 너머의 자신은

마치 대답하듯 무표정으로 서 있었다.

 

“근데…”

“그 얼굴로 내가 살아왔잖아.”

 

그는 보드에서 한 장의 사진을 발견했다.

 

누군가 정면을 바라보는 사진.

파일에 ‘A-01’이라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메모가 붙어 있었다.

 

“D.H 프로토콜 발동.

피험체의 기억은 완전히 구조화됨.

본인이 실험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도록 설정 완료.”

 

“이후 행동 경로: 감시 필요.”

 

도현은 눈을 감았다.

 

감시 대상.

기억 주입.

자기 얼굴에 의심을 품지 못하게 한 프로토콜.

 

이 모든 게 뜻하는 바는 하나.

그는 원래부터 ‘이도현’이 아니었다.

 

혹은,

그 ‘이도현’이라는 인격조차 실험의 일부였을 수 있다.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하윤이었다.

 

“도현… 지금 네가 있는 병원 말이야.”

 

“…왜.”

 

“거기 CCTV가… 지금 막 꺼졌어.

누군가 네가 있는 걸 봤을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