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용의자

기억 속 나는, 누구였을까

도현은 밤새 문서를 뒤졌다.

기록은 대부분 파손돼 있었고, 문장들은 절반쯤 찢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 중 한 장.

 

기억을 붙잡듯이 찢기지 않은 종이 한 장이

그의 눈을 멈추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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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01 / 실험 시작 시점]

피험체는 정상적인 인지 반응을 보이며, 기억은 설정된 프레임 내에서 작동 중.

 

기억 주입 대상: "관찰자 D.H"

실험 목적: 복제 인간이 자기 정체성을 스스로 구축할 수 있는가.

1차 테스트: 타인의 시선 속에 자신을 투사하도록 유도.

2차 테스트: 관찰자-피험체 간 역할 혼동 발생 유도.

상태: 기억이 ‘자신의 것’이라 믿고 있음.

 

도현은 숨을 멈췄다.

 

‘기억이 자기 것이라 믿고 있음’

그 한 줄이 머릿속을 때렸다.

 

‘관찰자 도현’이라는 기억이 주입된 실험체.

즉, 그는 관찰자가 아니라, 피험체였을 수 있다.

 

손이 떨렸다.

이건 단순한 문서가 아니었다.

 

이건—자신이 진짜 ‘이도현’이 맞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 순간.

눈을 감자,

어릴 적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긴 복도.

하얗게 밝은 형광등 아래, 작은 그림자 하나.

 

작은 자신이 책상에 앉아 있었고,

그 맞은편엔 하얀 옷을 입은 남자가 있었다.

 

“도현아, 이 사람은 이제 널 지켜볼 거야.”

 

“왜요?”

 

“너를… 지켜보는 게 이 사람의 일이거든.”

 

남자의 얼굴은 흐릿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분명했다.

 

“도현이라는 이름, 마음에 들어?”

 

작은 자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예뻐요.”

 

그 다음 기억은 번져 있었다.

 

침대. 주사. 빛.

그리고 거울.

 

거울 속 아이는 웃고 있었고,

그 표정은 도현이 요즘 지어본 적 없는 완벽한 미소였다.

 

‘그게 정말 나였을까?’

‘아니면… 나를 연기하던, 누군가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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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다.

 

방은 여전히 어두웠고, 태블릿 화면이 켜져 있었다.

하윤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정하윤]

도현아. 너 국과수 있을 때 받았던 건강검진 기록,

국가 시스템에 등록 안 되어 있음.

주민번호도 일부 불일치.

이거… 너 진짜…

혹시…

 

도현은 손으로 이마를 감쌌다.

 

진실을 알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 진실이 자신을 부정하는 형태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는 중얼거렸다.

 

“…나는…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지.”

“근데 그게… 내 기억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문득 떠오른 그 남자의 말.

 

“넌 그 얼굴을 견디지 못해.”

“그래서 내가 필요해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