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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A rat in a trap : 독 안에 든 쥐, 부장

영원히 날 밝게 비춰줘. 어둠이 가득한 내 방을 너로 밝게 비춰줘. 어두운 밤하늘을 빛내는 하나의 별이 돼 줘. 너는 내 우주이자 내 전부야.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너를 지킬게. ······사랑해. 이 세상 누구보다.


블랙 펄
부장


누가 봐도 더러워 코를 틀어막게 되는 인어 번식장은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로 가득했다. 새로 잡아들인 인어가 담긴 어항을 옮기는 소리였다. 건희는 이런 일이 제게 닥칠지 몰랐다. 그냥 저 바다 밑바닥에서 잘 살다가 몇백 년 뒤에야 죽을 줄 알았는데, 이대로라면 바로 지금도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건희가 눈물이 나오지도 않는 두 눈을 깜빡거렸다. 조금만 빨리 태어났으면 좋았을 뻔했는데. 한 몇백 년만 일찍. 건희의 한숨에 공기 방울이 생겨 위로 찬찬히 올라갔다.

예에, 이번 삼십칠 번 인어는 말이죠. 예쁘장하게 생겼지 않나요? 귀족 가 영애들이 좋아하게 생겼습니다. 팔만 브론부터 받겠습니다. 건희가 눈을 뜨자마자 화려한 불빛이 건희의 눈을 아프게 했다. 건희가 미간을 구겼다. 드디어 팔리네. 건희는 물건 취급을 받게 된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썩 나쁘지도 않았다. 그저 그랬다. 십만 브론, 십이만 브론. 비싼지도 모르는 가격에 책정되는 게 건희에게는 우스웠다. 바보들. 내가 그렇게 쉽게 울 줄 아나. 건희는 어렸을 때부터 진주가 귀한 것이라 들었다. 그래서 저렇게도 집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십만 브론! 한 소년의 외침에 사회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십만 브론, 이십만 브론. 더 없으신가요? 이십만 브론. 낙찰되셨습니다. 사회자의 목소리가 경쾌했다. 소년이 억지 미소를 띠며 건희를 응시했다.



*



-있잖아.
-응.
-너는 왜 날 샀어? 진주로 떼돈 벌고 싶어서?

아니. 네가 안쓰러워 보여서. 내가 빚에 허덕여도 너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게 해 주고 싶어서. 소년이 건희를 향해 미소 지었다. 그럼 거긴 어떻게 알고 왔는데? 건희의 물음에 소년이 답했다.

-지나가다 시끄러워서. 잠깐 구경하려고. 그런데 네가 보였어.

그렇구나. 나는 건희야. 이건희. 건희가 말했다. 나는 여환웅. 소년의 소개를 들은 건희는 방긋 웃었다. 뭐가 어쨌든, 갈굼 당하는 것보단 나았다. 이렇게 살다가 죽어도 나쁘지만은 않을 듯했다.

근데, 진주가 비싼 건 어떻게 알아? 전에, 우리 할머니가 알려주셨어. 눈물도 흘릴 일 없고, 흘러도 바닷물에 섞이면 금방 형체가 사라지니까 동그란 진주는 인간들이 정말 좋아한다고. 건희가 환웅을 응시했다. 제가 잡혀 오던 그 어항 그대로에 있지만, 환웅만 있다면 뭐든지 좋았다. 그저 환웅이 행복하면 됐다. 건희는 환웅과 함께 무언가에 쫓기지 않고, 누군가의 위협을 받지 않고 편히 살고 싶었다. 거의 쓰러져 가는 집도 건희에겐 동화 속 한 장면 같았다.



*



야, 빨리 열어. 얼른 안 열어? 거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건희야. 우리 아무래도··· 도망쳐야 할 것 같아. 환웅이 침착한 표정으로 웃었다.

-건희야, 안심해. 괜찮아. 저 사람들은 나랑 술래잡기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그런데 여기서 그냥 잡히면 재미없으니까, 도망을 가야 해. 저 바다까지, 아주 조금만 고생하면 돼. 정말 조금만.

내가 미안해. 환웅이 입안에서 맴도는 그 말을 꾹 눌러 삼켰다. 아무 죄 없는 너는 살아야지. 널 살릴 거야. 내가 궁지에 몰려 죽는 한이 있더라도. 환웅이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환웅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환웅의 꼴은 제 발로 덫에 들어간 쥐의 모습이나 다름없었다.


-건희야.
-응?
-···아니야. 그냥 불러봤어.

더는 못 부를 것 같아서. 쓴웃음을 짓는 환웅을 본 건희가 환웅의 두 손을 힘주어 잡았다. 우리 더는 못 보면 어떡해? 아니야. 괜찮아. 우리는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어. 내가 약속할게. 그 말에 건희가 웃었다. 웅아. 있잖아. 우리가 비록 잠시 떨어져 있지만, 아주 잠시 떨어져 있지만··· 나는 네가 그때마저도 행복했으면 좋겠어. 건희의 눈이 감기며 물방울이 떨어졌다. 이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건희가 환웅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꼭 나중에 만나러 와. 그 말과 함께 건희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응. 꼭 행복할 게. 환웅이 허공에 대답했다.

건희가 쥐여 준 진주 몇 알로 환웅은 남부럽지 않은 돈이 생겼다. 저택을 몇 채는 더 사고도 남을 정도의 돈을 쥐고서도 환웅은 행복해하지 않았다. 환웅이 겨우 웃는 것에도 공허함이 느껴졌다. 가슴 한편이 뻥 뚫린 것 같았다. 그때부터 확신했다. 자신은 건희가 없으면 죽는 것도 아무렇지 않다고. 그 많던 돈을 다 갚고서도 온갖 부를 누릴 수 있음에도 환웅은 늘 피폐하게 살았다. 환웅이 선택한 건 최후의 방안이었다.

환웅이 총알을 권총에 장전시켰다. 그것도 건희가 준 진주를 판 돈으로 산 것이었다. 행복하기로 했는데. 환웅의 웃음에 공허함이 가득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건희를 만나러 가겠단 건 너무나 막연했다. 권총이 환웅의 왼 가슴팍에 닿았다.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는 걸 건희가 원치 않는단 것을 환웅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환웅은 건희를 포기하기로 했다. 건희는 저와 달리 몇백 년을 더 살 테니, 저보다 더 나은 인간을 만나면 되는 것이었다. 환웅이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웅아. 바다가 왜 푸른지 알아?
-왜?
-바다는 넓어서 모든 것들의 외로움을 다 안아줄 수 있대. 모든 슬픔과 외로움을 가만히 안아주다 보니 그렇게 파래진 거래.

너도 무작정 내 슬픔만 안아주려고 하지 말고, 가끔은 나한테 기대.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우스갯소리로 약속했던 것들이 환웅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환웅이 쓰게 웃었다.
건희, 건희야. 내 유일한 친구 건희야. 내가 사랑하는 건희야. 영원히 나를 밝게 비춰줘. 비록 내가 너와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도, 우린 꼭 다시 만날 거야. 내가 네 공기 방울이 되어줄게. 네 푸른 바다가 되어줄게. 너는 내 우주이자 내 전부였으니까. 너는 내게 사랑을 알려준 처음이자 마지막이니까. 건희야. 사랑해. 정말 사랑해. 이 세상 그 어느 것보다, 그 누구보다 널 사랑해. 이제는 내가 너의 우주가, 너의 전부가 되어줄게.

언덕 너머의 오두막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출동한 경찰이 본 것은 말라붙어가는 피가 잔뜩 묻은 바닥에 편안히 누워있는 한 소년이었다. 그 소년의 오른손에는 검게 변한 진주 몇 알이 소중히 쥐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그 사건을 ‘블랙 펄 사건’이라 칭했다. 그리고 블랙 펄 사건은 몇백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전설로 내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