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다시 돌아오게된 한국,일주일 밖에 안 지났는데...
어쩐지 씁쓸한 기분이 든 여주는 어떻게 알고 온건지 다가오는 몇몇 기자들을 피해 어머니가 미리 보내준 경호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차에 올라탔다.
차 안에서 멍하니 창 밖으로 흘러가는 구름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비행기를 타기 전 미국 공항 앞에서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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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싶을거에요... "
이제 공항 안으로 들어가봐야하는 여주를 와락 끌어안은채 정국이 중얼거렸다. 공항 안에서도 혹시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싶어 일부로 공항 근처까지만 정국의 배웅을 받고는 돌려보내기로 했었다. 여주의 부탁에 정국은 그냥 수긍하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막상 헤어지기로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자 그녀를 놓아주기 싫어진 것인지 계속 안고만 있었다.
" 정국아...나 이제 가봐야하는데... "
" 기억해요. 누나 미국가도 누나 남친은 나에요. "
" 당연하지... "
약혼자는 또 따로 있겠지만...,, 차마 그 이야기는 꺼낼 수가 없어 그저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보인 여주는 연락은 꼬박꼬박하라는 정국의 말에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고서야 그의 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 꼭 다시 봐요 우리 "
" 응, 꼭 다시 보자... "
그때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그에게 이별을 말하는 때이겠지...물론 지금 바로 헤어져도 되는 것이겠지만...어쩐지 지금은 싫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여주는 포기했다.
그저 이 미국에서의 기억들을 한 여름 밤의 꿈과 같이 달콤하고 행복한 추억들로만 가득히 채우고싶었다. 가 여주의 바램이었기 때문에 여주는 마지막까지 웃으면서 정국과 헤어지고 공항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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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움직이는 차안, 여주는 즐거웠던 회상을 마치고는 조금 더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은 자신이 없어도 계속 집안일을 담당해주는 분들이 오기에 청소가 말끔히 끝내져있는 깔끔한 상태였다.
캐리어에 담겨있던 짐들을 빼고, 여주는 문득 고개를 들어 벽에 붙어있는 시계를 체크했다. 7시 53분,, 약혼자와의 첫 저녁약속이 9시 30분까지라고 했었으니까 꽤나 서둘러야만하는 시간이었다.
" 어서 준비하고 가야겠네. "
누굴까, 내 새로운 약혼자라는 사람은...?
불과 한달 전까지만해도 지민과 사이좋게 지냈었기 때문에 여주는 새로운 약혼자를 만들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할 수 없었기에 떠오르는 후보조차도 없었다.
뭐, 어머니가 어련히 알아서 정하셨겠지..?
적어도 자신과 관련한 모든 것들에 신중하셨던 어머니셨으니,, 여주는 그리 생각하며 금방 자신의 약혼자에 대한 관심을 끄고 준비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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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에 달린 아름다운 샹들리에가 빛나는 고급레스토랑에 개인룸 안, 나이프가 가끔 접시에 부딪치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어색한 분위기가 감도는 룸에, 여주가 흘깃 시선을 올려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이름 김태형, 몇년전부터 국내에서 급부상하더니 최근에는 왼만한 대기업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성장해 우리나라 대표 그룹중에 하나로 이름을 올리게된 TH그룹의 외동아들이랬나..? 역시 우리 엄마...사윗감 하나는 끝내주게 고른다니까,,
여주는 속으로 어머니에게 감탄을 날리며 자신이 계속 빤히 쳐다보고 있는지도 모르고 태형을 가만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태형이 움직이고있던 손을 멈추고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자 그제서야 다시 시선을 내려 잔을 들고는 그 안에 든 와인을 한모금 마셨다.
그러나 이미 여주의 시선을 눈치채고 있었던 것인지, 언제 쳐다봤었냐는듯 모르쇠를 시전하고 있는 여주를 향해 고개를 들어올린 태형은 그 모습을 보며 픽 웃었다.

"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되게 빤히 쳐다보시네요. "
" 네..? "
들킨건가..?,, 쪽팔림에 귓가가 조금 화끈거리는 것을 느낀 여주가 티나지 않게 여전히 차분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그를 마주보자 태형은 마치 기다렸다는듯 눈이 마주친 여주를 향해 환하게 웃어보였다.
누가 보아도 자신에게 호감이 가득한 눈길, 아무리 정국과 헤어질 생각이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사귀고 있는 사이였기에, 죄책감이 들기 시작한 여주는 결국 상대에게는 말을 해줘야겠단 결심이 들어 입을 열었다.
" 저기...실은...저 남자친구있어요. "
" 남자...친구..? "
아니나 다를까, 남자친구의 이야기에 올라갔던 입꼬리가 내려가며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어버린 태형의 표정에 여주는 시선을 조금 내려 테이블 위에 올려진 냅킨을 바라보면서 다시금 멈추었던 말을 꺼냈다.
" 네...물론 약혼자가 생긴 이상 헤어지긴 할거지만...그래도 말씀드리고싶어서요. "
" 아, 그런거면 상관없어요. "
" 네? "
예상치 못한 반응인지 태형의 말에 놀라 다시 떨어뜨렸던 고개를 든 여주는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표정이 풀어진 태형을 마주할 수 있었다.
" 헤어지겠다는거 보니까, 지민씨때도 이러진 않았던것 같고, 그럼 최근에 사귀신 분이겠네요. 미국에서인가..? 와, 여주씨 예상은 했지만 남자들한테 인기많네요. 정신차려야겠다. "
" 남친있는거...괜찮아요? "
여주가 얼떨떨하다는 표정을 짓자 태형은 잔을 들어 와인을 한모금 마시면서 어깨를 작게 으쓱였다.
" 어차피 여주씨랑 결혼하게될 사람은 저인걸요. "
어떻게 얻게된 너인데, 벌써부터 조급함을 보이면 안되지...결국에 최후의 승자는 내가 될텐데, 괜히 패자에 대한 화를 내서 미움을 사지는 말자
뒷말은 와인과 함께 삼키며, 태형은 싱긋 웃었다.
" 남친이 있다는 것보다 제가 더 신경쓰이는 점은...제 앞에서 다른 남자 생각했다는건데요? 갑자기 남자친구 이야기 하는거 보니까...방금 남자친구 생각한거...맞죠? "
나 생각보다 질투심해요. 그러니까...

" 내 앞에서는 나한테 집중해줬으면 좋겠는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