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탁-탁-
일정하게 도마를 치며 채소가 썰리는 소리, 여주를 호텔에 데려다준 뒤, 빠르게 장을 보고온 정국이 요리를 시작한지 시간이 조금 흘렀다. 부엌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정국의 뒷통수를 탁자에 턱을 괴고 보면서 여주는 자연스럽게 픽, 미소를 지었다.
' 뒷통수가 동글동글한게 귀여운데... '
등근육은 또 존재감이 어찌나 강한지...정말 웃기는 아이라니까,,
과연 검은색의 무채색 티 위로 칼질을 할때마다 살짝살짝씩 드러나는 등근육이 탄탄했다. 여주는 정국의 뒷통수를 빤히 쳐다보다말고 흘깃 시선을 내려 등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짧게 감탄을 했다.
' 꾸준히 운동하나보네... '
그런데 그 시선이 느껴진 것일까, 그녀가 그의 등을 멍때리듯 한참을 쳐다보자 정국이 웃음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그렇게 좋으면 그냥 다가와서 끌어안아도 되는데, "
" 뭐..? "
" 등 뚫리겠어요. 시선 다 느껴지는데...닳는거 아니니까 그냥 와서 만져요. 누나꺼잖아. "
아니, 닳는거라고 하더라도 누나 손길에 닳는거면 그것도 그것대로 좋겠네요. 안그래요?

정국이 뒤를 돌자 여주와 바로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눈이 마주친 그 순간, 정국이 그럴줄 알았다는듯이 눈이 휘어지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 ㅁ,무슨...!! "
여주는 그런 정국의 눈웃음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발끈하면서 그대로 앉아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부엌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리고는 정국이 쥐고있던 식칼을 빼앗아 들더니 그대로 자신이 자리를 잡고 썰기 시작했다.
" 어어..? 그냥 제가 하면 되는데, 위험해요. "
" 됐어, 넌 다른거나해. 칼질정도는 나도 할 수 있으니까,, 기다리는 것도 지루하고...배고파서 빨리 먹고싶어 "
그러나 칼질을 하는 여주의 귓가가 붉게 달아올라 있었기에, 정국은 속으로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순순히 물러나 면을 삶기위해 냄비에 물을 받기 시작했다.
' 더 놀리면 삐지겠지..,, 아 진짜...귀엽게 '
그런데 그렇게 각자 요리를 시작한지 몆분이 흘렀을까, 칼을 쥐어본적이 없어 영 서툰 솜씨로 불안한 칼질을 이어가던 여주에게서 ' 아..! ' 하는 단발마의 신음이 새어나왔다.
그에 놀란 정국이 여주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아니나 다를까 여주가 한손으로 꼭 감싸고 있는 손가락에서 피가 새어나오는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 내가 이럴줄 알았어..! 손 줘봐요. 얼마나 다쳤는지 보게 "
" 아 괜찮아, 얼마 안다쳤어... "
" 씁, 달라니까요..? "
결국 여주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꼭 쥐고있던 손에 힘을 풀고는 베인 손가락을 내보이자 정국은 그 손가락을 연신 살피더니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이내...
베인 손가락을 자신의 입가로 가져가더니, 끝을 그대로 입속으로 머금어 피를 빨아들였다.
" 뭐하는거야 지금...! "
" 므흐긴으. 스득흐즈느으. "
( 뭐하긴요. 소독하잖아요. )
입에 물고있는 손가락이 혹여나 다칠까, 정국은 일부로 웅얼거리면서 여주에게 대답했다. 그녀가 아예 귓가를 넘어서서 얼굴전체가 붉어진채로 얼른 빼라고 그의 어깨를 여러번 내려치고서야 정국은 손가락을 입에서 빼내면서 싱긋 웃었다.
" 달다. "
" 달기는 무슨 개뿔이 달아..! "
" 어? 내말 못 믿어요..? 진짜 달달한데 "
' 피가 어떻게 달아..! ' 하며 결국 여주가 쪽팔림에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치자 정국은 순간 눈을 가늘게뜨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여주가 뭐라 반응할 사이도 없이 그녀의 뒷통수를 감싸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기면서 그대로 고개를 숙인채 그녀의 입술을 머금었다.
잠시 아주 짧은 시간동안, 서로의 혀가 섞이면서 타액이 넘어가는 질척이는 소리가 났다. 물론 그녀의 귓가에만 들린 소리였지만...혀를 통해 전해지는 희미한 피의 비릿한 맛에,, 여주가 미쳤다고 그의 어깨를 퍽! 소리나게 강하게 밀어내는 손길로, 정국은 여주에게서 두어걸음 물러나며 해맑게 웃었다.
" 어때요? 진짜 달죠..? "
" 이..이...미친놈... "
" 아무리 그래도 남자친구인데 미친놈은 좀... "
" 몰라 이 바보야..! "
쾅—! 하는 큰 소리를 내며 닫힌 여주의 방을 바라보며 정국은 결국 참지 못하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 크킄..크..하아...이번에는 내가 조금 심했나? 그러게... "
다치지 말고 조심했어야죠 누나,
그렇게 여주는 들릴리 없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린 정국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녀의 방을 잠시 미소를 머금은채로 바라보다가 느릿한 발걸음으로 그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아~ 누나 미안해요. 이번에는 내가 좀 심했어, 화 안풀거에요? "
그렇게 여주의 화를 풀기위해 문앞에서 쩔쩔매는 정국을 뒤로하며, 또 미국에서의 하루가 지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