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사 : 아가씨를 부탁해!
시즌2 1화

타생지연
2021.09.27조회수 104
심호흡을 하고 조심스럽게 내 눈앞에 있는 하얀색 미닫이 문을 열고 교실로 들어섰다.
"오. 예쁜 여자전학생이다."
"선생님 제 옆자리 비워둘게요."
교실로 들어서자마자 똑같은 옷을 입은 남녀들의 모습이 보인다. 순간 나는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고 발걸음을 멈췄다.
'거지년.'
'엄마, 아빠도 없는 거지같은 년.'
'여주야. 자꾸 어려운 일을 하게 해서 미안해. 하지만 오빠는 정말 네가 내 여동생이라는 걸 인정받고 나와 한 가족일 수 있으면 좋겠어.'
좋지 않은 기억과 함께 떠오르는 명수오빠의 간절한 모습에 다시 걸음을 옮겼다. 교탁 앞에 서서 고개를 들어 같은 반 아이들을 둘러봤다.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불안하다. 집사들과 떨어져 있는게 너무 오랜만의 일이라서 그럴까?
"전학생, 자기 소개 한 번 들어볼까?"
담임선생님, 육성재의 말에 나는 불안하게 떨리는 손에 힘을 주었다. 일단 뭐라도 말해야 돼. 새로운 학교에서는 잘 해내기로 했잖아.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한 번 고개를 드는 순간 교실 앞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여러 명의 발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안녕. 친구야.♬"
"김태형?"
"너희들은 뭐냐?"
태형을 따라 줄줄이 교실 안으로 들어오는 집사들의 모습에 성재가 얼떨덜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본다. 태형이 내게로 다가와 아주 자연스럽게 어깨동무를 한다.
"전학생입니다."
전학생이라고?
"완전 남초다."
"게다가 잘생겼어."
집사들의 등장에 순식간에 교실이 소란스러워졌다. 성재는 때마침 문자 한 통을 확인하더니 얼떨떨한 얼굴로 반 아이들을 보며 말을 이어간다.
"그러니까 전학생들이란다."
"아가씨. 집안일 하고 오느라 늦었어요. 혼자 먼저 보내서 죄송해요."
성재선생님의 말에 여학생들은 축제 분위기가 됐다. 소란스러운 틈을 타 석진이가 나에게 다가와서 나에게만 들릴 정도로 귓속말을 한다. 그럼 나 혼자 학교를 다니는 게 아니라 집사들이랑 같이 학교를 다니는 건가? 어느새 나를 둘러싼 집사들을 보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쩐지 긴장되어 뻣뻣하게 굳어있던 내 몸이 편안해지는 것 같다.
"전학생 김태형이다."
"전학생 박지민이다."
"야. 따라하지마."
"유치하다. 김태형."
태형이와 지민이는 고작 인사 한 마디를 내뱉었을 뿐인데 한바탕 싸움이 붙었다.
"안녕, 김석진이라고 해. 잘 부탁해."
"전정국이라고 한다. 잘 지내보자."
"완전 잘생겼어. 대박."
"나보다 예쁜 것 같지 않아?"
"맞아. 너보다 예뻐."
괜히 수긍했다가 등짝 스매싱을 당하는 반친구1 이었다. 남자다른 비주얼 라인들은 벌써부터 팬클럽 형성 중이다. 잘못하다가는 여학생들의 교우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심히 걱정되기도 한다.
"김남준이다."
"정호석이라고 해. 호시기호시기해!"
묵묵하게 인사를 하는 남준과 반대로 발랄하게 인사하는 호석이의 등장에 분위기는 더욱 물이 올랐다. 점점 내 차례가 다가올 수록 손에서 식은땀이 나는 것 같다. 윤기가 불안한 나를 눈치챈 건지 슬며시 내 옆으로 걸어나온다.
"민윤기인데. 그것보다 우리 여주 괴롭히거나 건드리면 나한테 혼난다."
윤기의 팔이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 올라왔다. 윤기는 슬쩍 고개를 내 머리위에 기대며 남학생들을 향해 경고를 보냈다.
"쟤네 둘이 사귀나봐."
"아. 모처럼 마음에 들었는데."
"어쩐지 반반한 애가 남자친구가 없을리 없지."
윤기의 선전포고에 나에게 눈독을 들이던 남학생들이 아쉬움에 입맛만 다신다. 나는 얼떨떨한 눈으로 윤기를 올려다보지만 윤기는 평소같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살짝 윙크를 한다. 나를 신경 써 주고 있는 구나.
"사귀는 거 맞네. 맞아."
별 문제 없이 잘 넘어간다고 생각했는데 태형이가 박력 넘치게 교탁을 두 손으로 내려친다. 덕분에 반 아이들은 태형이에게로 시선이 집중됐다.
"아니거든? 내가 여주 남자친구거든?"
나는 갑작스러운 태형이의 발언에 놀란 눈으로 태형이를 돌아봤다. 지민이와 정국이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머리를 감싼다.
"헐. 삼각관계인가."
"분명하다. 이건 삼각구도야."
"복 받은 년."
덕분에 나는 전학 온 첫날 그것도 심지어 첫 소개를 하는 순간 복 받은년이라는 칭호를 획득했다.
.
.
"여주는 전학생이니까 누구랑 짝을 하는 게 좋을까."
성재가 빈자리가 없는 걸 확인하고 내 자리를 어디로 할 지 진지하게 고민한다. 내 새로운 짝궁이라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성재의 눈길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저요."
손을 든 건 지민이랑 태형이었다.
"너희 둘도 전학생인데?"
"제가 아가. 아니, 여주를 잘 챙겨줄 수 있습니다."
지민이의 힘찬 대답 뒤로 태형이가 내 손을 덥석 잡더니 맞잡은 손을 위로 들어올린다.
"제가 여주 남자친구입니다!"
태형아. 제발. 최대한 조용히 학교생활하고 싶었는데. 나를 보는 여자아이들의 시선이 따갑게 다가온다.
"대체 남자친구인 거랑 짝인 거랑 무슨 상관인거냐?"
성재가 비글미가 넘치는 태형의 모습을 안타까운 눈길로 본다.
"제가 남자친구이니까 여주를 책임지겠습니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하나는 확실하다."
태형이 기대에 찬 눈으로 성재를 올려다본다. 성재는 여전히 태형이를 향해 환한 미소를 유지하고 있다.
"너는 절대 여주 짝궁 안 시킨다."
"아. 선생님!"
분명히 고등학교를 졸업한 걸로 알고 있는데 태형이는 학생연기가 자연스럽다. 애초에 저게 연기가 맞나 싶기도 하다. 매번 집사의 모습만 보다가 교복을 입은 태형의 모습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그렇다면 역시 제가."
지민이가 다시 손을 번쩍 들며 저요를 외친다. 정국과 윤기가 스리슬적 하나 둘 합류하기 시작한다.
"헐. 설마."
"저게 대체 몇 각이야?"
"전생에 나라를 구한 년."
지민이와 태형이의 한바탕 전쟁 통에 그들의 사이에 놓인 나는 전학 온 첫날, 그것도 자리를 정하는 시점에 전생에 나라를 구한 년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했다. 앞으로 이곳에서 무사히 학교생활을 보내고 졸업할 수 있을지가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