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사 : 아가씨를 부탁해!

시즌2 2화

[2]


전학 첫날부터 수 많은 칭호들을 안겨준 짝궁싸움은 성재선생님의 깔끔한 정리로 마무리가 되었다.

"어째서! 어째서 내가 아가. 아니, 여주의 짝이 아니냐고!"

마지막까지 성재선생님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에는 내 뒷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은 태형은 울상 그 자체다.

"하필 짝이 김태형이라니."

지민은 김태형이 짝이라는 것에 더 절망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의 위너 정국이는 뒤를 돌아보며 지민과 태형을 향해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려보인다.

"야. 전정국. 솔직히 거기는 어디까지나 여주의 남자친구인 내가 앉아야하는 거 아니냐?"

태형이 세상 억울하다는 말하지만 정국에게는 그냥 멍멍이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가보다.

"언제부터 네가 여주 남자친구였는데?"
"뭐? 너? 아오."

일단 학교에서는 동급생 행세를 해야하니 정국이의 너라는 말에 태형이는 반박할 수가 없다. 안 그래도 말에는 재주가 없는 태형은 정국을 보며 으르렁대기 바쁘다. 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반 아이들은 또 다시 수근대기 시작한다.

"대박. 지금 쟤 둘이서 김여주 사이에 두고 쟁탈전 하는 거지?"
"김태형 완전 내 타입인데. 씁."
"개 타입은 니가 아닌 듯."
"아파! 왜 자꾸 때리고 난리야? 이년이."

뭐랄까. 난 가만히 앉아있는 것뿐인데 어쩐지 죄인이 되어버린 것 같다.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기분으로 멀뚱히 있는데 내 왼편에서 윤기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주야. 이리 와 봐."

마치 처음부터 나의 동급생이었던 것처럼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내 이름을 부르는 윤기는 정말로 내 친구인 것처럼 느껴졌다. 매일 아가씨, 아가씨라고 불리다가 이름을 불리는 게 어색한 건 나뿐인가? 윤기는 손수 내 삐뚤어진 교복 리본을 바르게 정돈 해줬다. 눈은 내 목에 있는 리본을 응시한 채로 예쁜 손가락을 움직이는 윤기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새삼 윤기가 멋있어 보인다.

"윤기야. 잠깐만 손 좀 보여줄래?"

윤기는 나에게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아니. 그쪽 말고 반대로!"

윤기의 손을 양손으로 만지작 거리며 윤기의 손을 뒤집었다. 윤기의 새하얗고 고운 손이 눈에 들어온다. 남자 손이 이렇게 예쁠 수 있는 건가?

"윤기 손 되게 예쁘다. 우와."

내 작은 두 손이 윤기의 손 위에서 꾸물거리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윤기가 살짝 미소를 머금으며 자신의 다른 편 손바닥을 나에게 내민다.

"손."

손을 가져다 대라는 건가. 내가 윤기의 손바닥 위에 내 손바닥을 겹치자 한 마디 이상이나 차이가 난다. 짧고 뭉퉁한 손가락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손을 때려는데 윤기가 내 손을 감싸 쥔다.

"우리 여주 손은 내 손에 쏙 들어오네?"
"놔줘. 나 손 못 생겼다는 말이야."

어쩐지 오늘따라 윤기의 예쁜 손에 잡힌 내 손이 더 못생겨보여 윤기의 손아귀에서 내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윤기가 자신의 커다란 손으로 내 손을 고쳐 잡는다.

"귀여워."

작고 짧은 내 손이 내 콤플렉스 여서 였을까. 내 손이 귀엽다는 윤기의 말을 듣는게 부끄러웠다.

"거봐. 저 둘이 사귀는 거 맞다니까?"

다정해보이는 나와 윤기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반 아이들은 윤기남친설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지민이에게 기대어서 칭얼거리던 태형이는 윤기의 손에 잡혀 있는 내 손을 발견하고 질투심에 눈동자가 활활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여주야. 나랑도 손!"
"오, 현 남친의 반격?"
"그럼 민윤기 쪽이 옛날 남친?"

태형이가 적극적으로 윤기에게 맞서니 반 아이들은 흥미진진한 눈초리로 삼각구도를 지켜보고 있다. 태형이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손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손이 나보다 크네. 귀여워."

정국이는 윤기의 대사를 따라하며 태형이를 약올렸다.

"잠깐만 이 구도는 또 뭐죠?"
"설마?"

아니. 아니야.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니. 얘들아.

"네 놈 손은 저리로 치우라고. 난 어디까지나 여주하고 손을 맞대보고 싶단 말이야."

갑작스러운 정국이의 행동은 소녀들을 흐뭇하게 만들었으나 태형은 정국이의 손을 뿌리쳤다. 태형은 곧장 나의 손을 잡으려 하였으나 지민이가 나서서 태형이의 행동을 저지시키며 태형이의 입을 손으로 봉해버렸다.

"자. 착하지? 태형아. 자리로 가자. 응?"
"아. 왜 방해질이냐고. 너 전정국이랑 한 패냐?"

지민이에 의해서 강제로 자리에 앉혀진 태형은 지민이를 향해 울분을 토했지만 지민은 답답하다는 얼굴로 태형의 넥타이를 끌어당겨 태형의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했다.

"안 그래도 아가씨가 시선 쏠리는 거 힘들어하시는데 네 놈까지 거기에 기름을 부으면 어떡해?"

지민이에게 혼쭐이 난 태형은 울상이 된 강아지 눈을 하고 자신의 바로 앞에 앉아 정국과 윤기와 다정하게 손장난을 치고 있는 아가씨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그렇다고 저걸 어떻게 보고만 있으라는 거야?"

에라. 모르겠다. 차라리 보지 말자. 태형은 자포자기 한 심정으로 책상에 엎드렸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턱을 괸 채로 아가씨의 뒷모습을 다정한 눈길로 바라본다.
.
.

갑자기 많은 인원의 전학생들이 생겨난 바람에 공간의 효율성을 위해서 내 짝은 두 명이 됐다. 두 명의 짝은 앞에서 말했던 대로 정국이랑 윤기다. 내 뒤로는 태형이와 지민이가 있고 그 뒤에는 석진이와 호석이 남준이가 줄줄이 앉아있다.

"혹시 여기 학교 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을까?"
"괜찮다면 내가 안내 해줄게."

호석이는 특유의 붙임성으로 반아이들에게 미리 학교의 사전조사를 하느라 바쁘다. 호석이의 부탁이라면 여기저기서 여학생들이 봉사를 자원하고 나섰다.

"아니, 안내는 됐고. 도서관이나 학교식당과 매점. 이정도만 위치를 알려주면 되는데."

호석이의 철벽에 코가 베일 듯하다. 철벽남인 호석의 앞에서 여학생들은 어쩔 수 없다는 쓸쓸한 얼굴로 입맛만 다시고 있다. 남준은 수학교과서를 꺼내 새 공책에 정갈한 필체로 문제풀이를 해나간다. 정리가 끝난 뒤 남준은 석진에게 공책과 교과서를 넘겨준다.

"첫교시 진도까지는 풀어뒀어."
"오케이."

석진이가 남준이 건네는 공책과 교과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으로 다가온다.

"첫교시는 수학이야. 수학 교과서를 보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공책에 풀이가 적혀 있으니까 그걸 참고해서 푸세요. 아가.."

석진이의 입에서 존댓말이 튀어나오기 시작함과 동시에 아가씨라는 호칭이 반 이상 나오는 위기를 맞았다. 반 아이들의 시선은 여전히 석진이와 나에게 있다. 내 옆에 있던 윤기와 정국이의 표정이 멍해지고 턱을 괴고 내 모습을 지켜보던 태형이도 얼떨떨한 얼굴로 석진을 바라보고 있다.

"아. 골치 아프네."

석진을 지켜보고 있던 지민이 머리가 아픈 지 이마를 짚는다. 전학 온 지 몇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