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 (滿月)

[5화] 수학여행 (1)

“ 자 다들 다음주가 수학여행인 건 알고 있지? “

” 네~ “

” 동의서 받아오고.. “

” .. 하 “

” 참고로 추가 부담비용 있으니까 잘 보여드려라 “

” 네~! “

” 자 그럼 다들 내일 보자! “


늘 이럴 때면 내 처지가 참 원망스러웠다. 몇년이 지나도 이런 순간은 익숙해지지 않고 늘 비참해졌다.

어차피 가지도 못할 동의서 따위 난 얼른 찢어버리려 했다.


그때,

탁,


” ㅁ.. 뭐해?! “

” .. 뭐가 “

” 그거 왜 찢어..? 너 안 갈거야? “

“ .. 넌 내가 가고 싶으면 갈 수 있는 것 같냐? ”

“ 아.. ”

“ 너도 바로 수긍하잖아. 그게 지금 내 처지고 ”

“ … ”

“ 난 이딴 거 못 가 “


모순적인 말이었다. 이딴 거라고 말할 만큼 별 것 아닌 것처럼 말하지만 난 갈 수 없다. 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냥 조금 남은 내 자존심이었다. 그마저도 이미 바닥난 지 오래였지만


그때,

스윽,


“ 갈 수 있어. ”

“ 뭐? ”

“ 나랑 가자 ”

“ .. 너 내가 그거 동정이랬..ㅈ “

” 나도 그 돈을 다 내주진 못 해. 너도 동정이라고 안 받을 게 뻔하고 “

” … “

” 너도 어느정도 부담은 해. 니가 할 수 있는 최대한, 그럼 나머지는 내가 메꿔줄 수 있어 “

” .. 왜 “

” 내가 너랑 가고 싶으니까. 그래서 내주는거야, 널 배려하는 마음이 아니라..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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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전히 내 욕심이야 ”

“ … ”


그 말을 들으니 정말 웃기게도 그 아이의 제안을 받아드려도 괜찮은 것처럼 들렸다. 한낮 동정으로 생각되던 그 말이, 내가 이기적으로 생각되던 그것이

정말 한 순간에 그 아이의 욕심에 내가 이용되는 것처럼 들렸고 마음의 무거운 것이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내려간 자리엔 설레임으로 메꿔지고 있었다.

결국 난 그 종이를 찢지 않았고 책상에 고이 모셔두었다. 그 어느때보다 신중하게 또 조심스럽게


“ 뭐?! 수학여행을 간다고? ”

“ 그렇다니까~ ”

“ 부럽다.. 나도 얼른 2학년 하고 싶어 “

“ 이번엔 여주도 가서 같이 재밌게 놀다 오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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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누나도 가?! ”

“ ..((끄덕)) ”

“ 하.. 나도 같이 가고 싶어 ”


태현이는 생각보다 더 친화력이 좋은 아이였고 어느새 우리 셋은 관장님 몰래 수다까지 떠는 사이가 되었다. 물론 그 아이랑 태현이만 떠들고 난 그냥 듣고만 있을 뿐이지만


“ 자자 수학여행 못가는 1학년은 얼른 가서 기본기 해라 “

” 못 가는 것도 서러운데 차별도 당하는거야? 나 이러면 서운해 “

“ 수학여행 가는 2학년들은 특별히 2배로 하기로 했거든, 어때? 같이 할래? ”

“ .. 아니 ”


조금은 재밌어진 일상 중 가장 재미있는 순간이다. 내가 다른 사람과 있었을 때 이렇게 편했던 적이 있었나?

그렇게 운동을 끝내고 나와 그 아이는 잠깐 편의점에 앉아 쉬다 가기로 했다.


“ 얼마정도 더 있어야 갈 수 있어? ”

“ .. 10만원 ”

“ 15만원은 확실히 부담할 수 있는거지? ”

“ 모아둔 거 조금이랑 당겨달라고 하면 돼 ”

“ .. 알았어, 그럼 내가 10 부담할게 ”

“ .. 고마워 ”

“ 어? ”


진심에서 우러나와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다. 진짜로 고마웠으니까 난 평생 한 번도 해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 중 하나인데

자신도 부담스러울 걸 알면서 자기 일도 아닌데 저렇게 노력해주는 게 너무 고마웠다.

처음 꺼내본 말이어서 어색했지만 그렇기에 진심이 아닐 수 없었다.


“ ㅁ..뭐가 “

“ 헐.. 나 지금 고맙단 말을 들은거야?! ”

“ .. 뭐 싫으면 철회하고 ”

“ 아니야! 그걸 왜?! 난 더 듣고 싶은데 ”

“ 뭘.. 더 듣고 싶기까지야 ”

“ .. 내가 살면서 들은 말 중 가장 기분 좋은 말이었어 ”

“ … ”

“ 나도 고마워, 내 욕심 들어줘서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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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ㅎ.. 너무 진지했나? ”

“ .. 좋았어 ”

“ 어? ”

“ 니 욕심이 맘에 들었다고 “

“ 그거 참 다행이네 “


정말 마음에 드는 욕심이었다. 욕심 치고는 때 타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피해가 가지도 않았다.

정말 순수하고 착하기만한 욕심이었다. 그래서 남들과 다른 그 욕심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끼익,


” 나 왔어. 아빠 “

” 어~ 왔어? “

” 밥은? 먹었어? “

” 아침에 니가 해주고 간 거 먹었어 “

” .. 잘했어 ㅎ ”

“ 우리 딸 수학여행 가고 싶지 않아? “

” 어? “

” 한 번도 못 가봤잖아. “

” 아.. 그게 “


그때 아빠는 손을 뻗어 앞 서랍을 열어 한 통장과 봉투를 내게 주었다. 그 통장은 엄마가 남기고 한 통장이었고 아빠가 제일 아끼는 것이었다.

꼭 그 통장이 엄마 같다고 해서 절대 쓰지 못할 돈이라고


“ 이걸 왜.. ”

“ 조금, 아주 조금만 뺐어 ”

“ 아빠.. ”

“ 네 엄마라면 분명 이렇게 했을거니까 ”

“ … “

” 몸 아픈 나 대신 니가 돈을 버는데 나만 쉬자니 마음이 편할리 없잖냐 “

” … “

” 너도 그 3일은 푹 쉬다가 와 “

” .. 그래도 돼? “

” 당연하지. “

” .. 고마워, 아빠 “


그날 밤, 청소를 마치고 내 방으로 가니 동의서엔 삐뚤빼뚤한 글씨로 아빠의 이름 석 자가 쓰여있었다.

난 그 이름을 보자마자 눈물을 흘러나왔고 혹여나 내 소리에 아빠가 깰까 숨죽여 울었다.


다음날,


“ 저기.. “

” 어? “

” 돈 필요없어 “

” ㅇ..어? 왜? 갑자기 안 가고 싶어진거야? 아니 왜..? “

” 그게 아니라.. “

"..?"

” 아빠가 줬어. 놀다오라고 “

” .. 하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야 “

” ㅁ.. 뭐 그렇게까지 좋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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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또 니가 안 간다고 할까봐 방금 심장이 막 두근두근댔다고 “

” … “

” 그럼 이제 진짜 편한 마음으로 갈 수 있는거지? “

” ..((끄덕)) “

” ㅎ 다행이다 진짜 ”


그렇게 우린 함께 수학여행을 가게되었다. 수학여행의 장소는..


“ 우와! 제주도다~! ”

“ 와 바다 푸른 것 좀 봐~! ”


제주도였다. 바람도 솔솔 불고 도시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곳이었다. 늘 빽빽하던 도시와는 다르게 한적한 느낌에 내 마음도 한적해지는 기분이었다.


“ 바람 시원하고 좋다 “

” 그러게. 생각보다 더 좋네 “


앞으로 이곳에서 일어날 일들이 매우 기대가 되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