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간 곳은 제주도 애월리였다. 나름 수학여행의 의미에 맞게 이곳 저곳 돌아다녔다. 유적지도 가고 지리적으로 가치가 높은 곳들도 가고
모든 게 낮설고 처음이었던 내겐 그것들이 참 흥미롭게 느껴졌고 그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제주내음도 좋았다.
난생 처음 내가 쉬고 있음을 느꼈다. 분명 처음 느껴보는 낮설은 감정이었지만 그 어느때보다 편안하고 좋았다.
“ 여주야 저기 너 있다 ”
“..?”

“ 돌하르방 ㅎㅎ ”
퍽,
“ 아..!! 왜 때려..! “
” 그러게 누가 까불래? 이게 진짜 “
” 씨이.. “
그때,
” 뭐야~ 여주랑 범규 분위기 좋다? “
” 예? “
” … “
” 쌤~ 범규가 여주 따라다니잖아요 “
” 에엥 진짜?! 우리 인기남 최범규가? “
언제 저딴 이야기가 애들 사이에서 돌고있었던 건지 정말 머리가 지끈하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냥 저런 관심은 늘 피곤했다.
무엇보다 나를 친근히 여주라고 부르는 목소리가 참 듣기 거북했다. 내가 괴롭힘 당할 땐 무시하고 방관하더니
그 아이와 함께일 땐 정말 마법처럼 날 괴롭히지 않았고 날 무시하지 않았다.
그런 내게 그들의 목소리, 아니 그들의 모든 것은 전부 역겹게만 느껴질 수 밖에
“ .. 난 간다 ”
“ 어? 아 같이 가자~! ”
그 아이는 대체 뭐가 그리 좋은건지 맨날 저렇게 헤실 웃으며 날 따라온다. 아 나 좋아해서 그렇다고 했지..
참 지나가는 개도 들으면 웃을 이야기다.
왕따 여주를 사랑한 인싸 남주? 언제적 클리셰야..
그 아이를 피해 혼자 벤치에 앉아 바닷바람을 맞았고 거북했던 느낌이 한 번에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금방이라도 토해낼 것 같던 기분이 금세 시원해졌다.
그때,
스윽,
“ 앗..! 차가..ㅇ “
“ 왜? 머리 식히려고 온 거 아니었어? ”
“ 넌 진짜.. ”
“ 초코 좋아하잖아. 얼른 마셔 ”
“ … ”
그 아이는 언제 또 날 찾아낸건지 한 손엔 초코음료를 들고 내 옆에 앉았다.
“ 이거 덕분에 산 줄 알아.. ”
“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음료수님 ”
“ … ”
“ 어때? 처음 느껴보는 휴식이 “
” .. 좋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
” 다행이다. ”
“ 근데 넌 어떻게 내가 열심히 숨어도 늘 찾아내냐 ”
“ 몰라? 그냥.. ”
“..?”

“ 어디 있어도, 누구랑 있어도 늘 너는 딱 보이던데 ”
“ … “
참 기이했다. 기이하다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정말 기이했다. 아니 어떻게 사람을 그냥 딱 찾아낼 수 있지?
“ 너 스토킹이 취미는 아니지? ”
“ 허.. 날 뭘로 보는거야 ”
“ 아니 그렇지 않고서야 날 어떻게 이렇게 잘 찾냐고 ”
“ 원래 사람은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본능적으로 잘 찾게 돼 “
“ … ”
“ 말했잖아, 난 너랑 함께 있는게 좋다고 ”
“ … “
내가 놀러와서 잠깐 정신이 풀린 건지 왜 저 말이 진심처럼 들리는 걸까, 아니 설령 진심이라고 해도 저 말을 들은 내가 지금 왜 기분이 좋은거지?
애써 난 내 감정을 숨기기 위해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이렇게 말해도 늘 니가 안 믿어주잖아, 나 그거 꽤 서운해 “
” .. 뭐래 “
” 물론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절대 아니야 “
” … “
” 날 구해준 사람은 니가 유일하니까 “
대체 이 아이는 내가 자신을 구해준 것이 얼마나 고마운걸까 오히려 지금 어둠 속에서 날 구해주고 있는 것은 본인인데
그때,
“ 범규야 선생님이 부르셔 “
” 알았어. 금방 갈게 “
부반장인 여자얘가 그 아이를 불렀다. 사실 이전에 그 아이를 좋아했다고 들었다. 뭐 나보다는 저 둘이 훨씬 잘 어울리네
무엇보다 그 여자얘는 내가 봐도 참 예쁘고 순했다. 딱 남자들이 좋아할 상인데 작년에 그 아이는 여자얘를 찼다고 들었다.
근데 나를 좋아한다고? 참 여러모로 이해가 안 간다..
” 아니 지금 오라고 하시는데 “
” ..? 그래? “
” 얼른 가봐, 반장이잖아 “
” 치.. 보내는 건 또 엄청 쉽게 보내줘요 “
” .. 헛소리하지 마라 “
” 금방 올테니까 또 숨지 말고 여기 있어 “
” .. 고민 해볼게 “
그렇게 그 아이는 선생님께 갔고 난 다시 혼자가 되었다. 혼자서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무언가 착착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내 머릿 속을 무겁고 강하게 짓누르던 것들이 하나 둘 씩 가라앉아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잠시 후,
“ 뭐야.. 금방 온다면서 또 안 오냐 ”
생각보다 그 아이는 더 늦게 오는 듯 싶었고 심심해진 난 혼자서 눈을 감고 양을 세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
” 진짜? 엄청 신기하다~ “
” 시간 되면 같이 보러 가자 “
” 아 그게 사실은 •• ”
” 그럼 영화는 어때? “
” 영화? 좋지! “
“ .. 허 “
저 멀리서 부반장과 함께 걸어오는 그 아이가 보였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입꼬리가 아주 귀에 걸릴 기세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난 왠지 모르게 화가 났다.
그땐 그 감정이 ‘질투’인지도 모르고 그저 화가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 많이 기다렸어? “
” .. 아니 “
” 뭐야, 왜 또 표정이 뚱 해? “
” 내가 뭘.. “
” 아 맞다. 내가 아까 부반장한테 들었는데.. “
” 안 궁금해. 안 들을거야 “
” 진짜? 너 엄청 좋아할 것 같았는데 “
“ … “
” 아니 너 동물 좋아하잖아. 토끼랑 곰 “
"..?"
” 이따가 가는 동물원에서 특별히 곰 쇼 한다고 하더라고 “
” 진짜..?! “
” 뭐야.. 되게 흥미 없어할 것 처럼 말해놓고? “
” .. 뭐, 어차피 넌 그거 부반장이랑 보러 가기로 한거 아니야? “
“ 아~ 설마.. ”
“..?”
“ 우리 여주 지금 질투하는거야~? ㅎㅎ ”
퍽,
“ 아..!! 또 왜..! ”
“ 까불지 말랬지.. ”
“ 씨.. 너랑 보겠다고 영화 약속도 추가로 잡았거든?! “
“ 뭐? ”
” 같이 보러가자고 했는데 난 너랑 보고 싶어서 그거 거절하고 나중에 따로 영화 보러 가기로 했다고! “
"..?! "
” 치.. 내 마음은 알려고도 안 하고 아주 자기 멋대로야..! “
” … “
“ 나 가뜩이나 주말에 시간 없는거 알잖아.. ”
“ 그럼 그냥 걔랑 보면 되잖..ㅇ ”

“ 아 진짜! 내가 같이 보고 싶은 건 걔가 아니라 너라니까?! “
"..!! "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다. 처음 느껴보는, 하지만 싫지 않은 기분이었다.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 했고 내 몸이 하늘 위로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냥 새로운 곳에 와서 느끼는 그런 감정이라 생각했다. 낮설어서 그래서 이런 감정이 수시로 드는 거라고
절대 이 감정이 내가 생각하는 그런 마음은 아닐거라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