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2박 3일의 수학여행이 끝나고 우린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전처럼 그 아이는 늘 날 따라다녔다.
달라진 점이 한 가지 있다면, 더 이상 그 아이를 내가 밀어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밀어내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난 그날이 올 것이란 것을 나도 모르게 느끼고 있었던 것 아닐까
“ 여주야~! 급식 먹으러 가자 ”
“ .. 그래 ”

“ 근데 요즘엔 너 나 안 밀어내는 것 같다? ”
“ 뭐.. 다시 밀어내줘? ”
“ 아니?! 그건 안돼~! 여주랑 붙어있을거야 ”
“ 아 좀..!! “
“ ㅎㅎ 얼른 가자~ ”
처음으로 내게 생긴 상승 곡선을 제대로 타보고 싶었다. 자유롭게, 더 높이 올라가도록 그 흐름을 느끼고 싶었다.
아, 사실 변한 것이 하나 더 있었다.
“ 여주야 너도 이거 먹을래? “
"..?"
” 그.. 막 악의적으로 접근하는 거 아니고.. 그냥 “
“ … ”
“ 여주~ 너 이거 안 받으면 내가 받는다? ”
“ 그건 안되..ㅈ ”
“ 받아주는 거야?! ”
“ .. 그래 ”
나랑 친해지려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물론 이런적이 처음이라 대게 내가 차갑게 거절했지만..
그럴 때마다 그 아이는 나의 거절을 거절시켰다.
어쩌면 나의 상승 곡선을 높혀주려 노력했던 것은 이 아이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신이란 참 공평했다. 내가 상승곡선을 타고 올라갈 수록 그 아이는 하향곡선을 타고 저 아래까지 내려가고 있었다.
“ .. 너 얼굴이 왜 그래? ”
“ 어..? 아 그.. ”
“ .. 됐어, 말 안해도 알 것 같네 “
” .. 고마워. “
” 고맙기는.. 내가 뭐 안 맞게 도와줬나 “

” 그냥, 넌 왠지 모르게 다 고마워 “
” … “
곡선이라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했다. 내려간 곳이 있으면 올라가는 곳도 있어야하는 것 아닌가
어째서 그 아이의 선은 하염없이 바닥을 향해 갔었는지, 신도 참 매정했다.
그러다, 결국 그날이 찾아왔다.
“ 자~ 반장은 오늘 결석이랬고 ”
“ 결석..? ”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니가 결석을 했던 날이었다. 이전부터 개근상은 무조건 받았다며 이번에도 받을거라 장담했던 니가 처음으로 결석을 냈다.
혹여나 무슨 큰일이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을 사람 같아서
결국 난 교무실을 찾아갔다.
“ 저.. 선생님 ”
“ 어.. 그 여주야 왜? 무슨 일 있니? ”
“ .. 그게 ”
“ 학폭위는 아마 별 성과가 없..ㅇ ”
나를 보자 학폭위부터 말하는 선생님을 보며 좀 기가 막혔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내 일보다 그 아이가 더 중요했다.
“ 학폭위 말고요. 그.. 최범규 오늘 왜 결석했어요? ”
“ 범규..? 아 사실은 그게.. “
"..?"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는 내 머릿 속을 파고들어 깊은 곳을 탁 때렸다.
난 바로 그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은 얼마 안 가 끊겼고 곧이어 그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 .. 여보세요? “
” 너.. 진짜야? “
” .. 들었구나, 몰랐으면 했는데 “
” 몰랐으면 해?! 너 진짜..!! “
” .. 미안해 ”
“ 됐고, 이따가 니네 집 앞으로 갈테니까 주소 보내 ”
“ 그건 안돼.. 엄마가 어떻게 할지 몰라.. ”
“ 하.. 그럼 나 일 하는 편의점으로 와. 그건 되지? ”
“ .. 응 ”
전화가 끊기고 난 그대로 주저 앉아 울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초리는 생각도 못하고 그냥 울었다.
그렇게 학교가 끝나고 난 바로 편의점으로 갔다.
있는 힘껏 죽도록 달렸다.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 싶어서, 더 빨리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편의점에 도착하니 니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서 있었다.

“ 안녕. ”
“ … ”
난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 아이에게 가 덥썩 안았다.
그리고, 말했다.
” 흐.. 가지마.. 제발 “
” ㅎ.. 이건 내가 예상한 반응이 아닌데 “
” 제발.. 가지마.. ”
” .. 여주야. “
아까 전,
” 사실은 그게.. “
” … “
” 범규가 유학을 가게 됐어. 그래서 오늘은 정리한다고 못 오는거고 아마 내일 인사하러 올거야 “
"..!! "
” 범규가 여주 잘 챙겨주고 그랬는데 간다니까 아쉽기야 하겠다 “
다시 현재,
“ 여주야. 나 봐 ”
“ … ”
“ 갑자기 결정난거라 미리 말 못해서 미안해. ”
“ … ”
“ 나 없어도 꼭 운동 열심히 다니고 ”
“ … ”
“ 알바도 열심히 하고.. 지금처럼 ”
“ … ”
꼭 이별하는 것 같았다. 다시는 보지 못할 사람처럼 말했다. 정말 다시는 만나지 못할 인연처럼
그때,
툭,
내 손 위로 물방울 하나가 떨어졌다.
” .. 너 ”
” 나도.. 가기 싫은데.. “
” … “
” 나 계속 너랑 놀고 싶어.. 진짜로 ”
“ … “
” 나.. 가기 싫어, 여주야 ”
정말 신은 왜 그리도 무심하고 차가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아이와 나의 곡선은 그렇게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다음날,
“ 자 다들 놀라겠지만, 우리 반 반장 범규가 내일 유학을 가게 되었어요 ”
“ 네?! ”
“ … ”
반 아이들 모두가 놀랐다. 하긴 하루 아침에 유학을 간다니, 그것도 반장이
미리 안 나도 놀랐는데 반 애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 다들 범규가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고 하니까 들어보자 “
” .. 다들 갑자기 들어서 놀랐을거야. “
” … “
” 비록 지금 이렇게 헤어지지만 언젠간 다시 만날테니까 다들 너무 아쉬워하고 슬퍼하지 말고 “
” … “
” 무엇보다, 나중에 만날 땐.. “
스윽,
"..?"

“ .. 지금보다 행복한 모습이었으면 좋겠어, 기왕이면 웃는 얼굴로 “
“..!!”
반 아이들에게 말하는 듯 했지만 마지막 말은 마치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내 착각이라고 해도 좋았다.
정말 그 아이의 말처럼 그때의 난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그 아이는 교실을 나갔다. 선생님 말로는 바로 공항으로 이동한다고 했다.
고민하던 난 결국 일어나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다행히 차를 타기 전에 잡을 수 있었다.
“ 저기..! ”
“ 어..? ”
“ 이거.. 갖고 가 ”
스윽,
“ .. 이건 ”
내가 건넨 것은 어릴 적부터 아끼던 곰돌이 키링이었다. 예전에 그 동물원에 갔을 때 아빠께서 사주신 거였다.
“ 내가 아끼는 곰돌이 키링이야 ”
“ … ”
“ 나도 니 말대로 행복해져 있을테니까.. ”
“..?”
“ 너도 그 곰처럼 나중에 나 또 지켜주는거야 ”
“..!!”
“ 알았지? 약속이야 “
“ .. 그래. ”
” .. 정말 고마웠어, 최범규 “
” ㅎ 니가 내 이름 불러준 거 처음이야.. “
” .. 그런가 ”
“ 덕분에 좀 괜찮은 마음으로 갈 수 있겠어 ”
“ … ”

“ .. 나중에도 꼭 만나자, 내가 그때처럼 또 먼저 올테니까 “
” … “
” 너도 그때처럼 한 발짝만 다가와주면 돼. 알지? “
“ .. 약속이야. 너 ”
꼬옥,
마지막 포옹을 끝으로 그 아이는 완전히 날 떠났다. 그 아이의 차가 떠나감과 동시에 내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애써 그 아이가 좋아하는 웃는 얼굴로 보내주고 싶어 입술을 깨물어가며 참았더니 입술이 터진 듯 피 맛도 났다.
거짓말처럼 그날 이후로 그 아이와의 연락이 끊겼다. 전화번호를 바꾼 것인지 이전 번호로 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날 이후로 며칠을 혼자 울다 잠든 것인지 모르겠다.
달이 저버린 밤은 그 언제보다도 깜깜했고 차가웠다.
환상 속에서 나와 맞이한 현실은 전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