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 (滿月)

[9화] 달이 지나간 자리

그 아이가 나를 떠나고 또 다시 어둠은 날 삼키려 내게 살며시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난 확실히 변해있었다. 더 이상 아래로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아이의 말처럼 나중에 만날 땐 나도 내가 행복하기를 바랐다. 행복해지는 방법은 그 아이가 알려준 것 밖에 모르지만

이것들이라도 열심히 하면 지금의 나보다는 더 행복해지겠지 싶었다.


“ 네~ 4800원입니다 ”

“ 좋은 일 있나봐~ 요샌 자주 웃네 ”

“ 아..ㅎ ”


스윽,


” 어..! 안 주셔도 되는데.. “

” 에이.. 학생 수고하는 거 모르는 사람 있어? “

” .. 감사합니다 “


달이 지나간 자리가 마냥 어둡지는 않았다. 오히려 달이 알려준 길을 따라 더 확실히 갈 수 있었다.

내가 가본 길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길과 그 아이가 알려준 이 길 밖에 없으니까

난 더 힘차게 달을 향해 걸어갈 수 있었다.


“ 관장님 저 왔어요 ”

“ 그래~ 태현이는 옷 갈아입으러 갔어 ”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아이가 가기 전 관장님께 부탁한 것이 있었다. 바로 나 혼자서 운동하게 놔두지 말고 무조건 다른 사람과 함께 운동하게 해달라는 것.

그래서 관장님은 내 시간과 태현이 시간을 합치셨다.


그때,

드르륵,


” 아 그래서 진짜 뭐라고 고백하냐..ㄱ “

” 누구한테? “

” ㅇ..어? 누나 언제 왔어..? “

” 방금 “

” 하여튼.. 남자답지 못한 자식.. “

” 아니! 삼촌!! “

” 쓰읍 - 체육관에선 관장님이지 임마 “

” 치.. “

“ ㅎ.. 얼른 운동이나 하자 ”


이런 것들이 자연스러워진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제는 내 일상에 아주 큰 부분이 되어 없어선 안될 시간들이 되었다.


” 가자. 누나 “

” 근데 태현이 넌 왜 매일 데려다 줘? ”

“ 범규 형이 부탁하고 갔거든 ”

“..?”

“ 운동 끝나면 무조건 누나 데려다 달라고 ”

“ .. 그랬구나 ”


넌 혹여나 내가 다시 길을 잃을까 자국을 내고 갔었다. 자신이 머물렀던 그곳에 자신만의 표식을 남겼던 것이다.


“ 범규형이랑은 연락 안되지? “

” 뭐.. 그렇지 ”

“ 저.. 누나 내일 혹시 시간 돼? “

” 내일? 왜? “

” 그 나 아는 분이 동물원 티켓이 생기셨는데 못 가신다고 하셔서 “

” .. 동물원? “

” 전에 들어보니까 누나 동물 엄청 좋아하는 것 같길래 “

” 좋아하지. 엄청 “

” 그럼 나랑 같이 보러 가자 “

” .. 그래. 특별히 알바 하루 빼볼게 “


오랜만에 다시 가보고 싶었다. 그때의 그 동물원은 아니지만.. 이제 내게 동물원이라는 단어는 너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난 다음날 태현이와 함께 동물원으로 향했다.


“ 동물원 진짜 오랜만에 가본다 ”

” 나는 수학여행 때 갔었는데 “

” 그때 진짜 부러웠다니까? “


쓰담,


” ㅎ.. 너도 내년에 가잖아 “

“ 뭐.. 그렇지..// “


동물원에 도착하자 눈에 띄었던 것은 머리띠였다. 그때도 했었나? 그 아이는 곰돌이 머리띠가 참 잘 어울렸을 것 같다. 태현이는.. 음


“ 고양이 잘 어울리겠다 ”

“ 응? 아 머리띠? ”

“ 하나씩 할까? ”

“ 좋아 ”


우리는 서로의 머리띠를 골라주기로 했고 난 리본이 달린 하얀 고양이 머리띠를 골랐다.

태현이는 내게 햄스터 머리띠를 골라주었다. 보통 햄스터 머리띠는 없던데 여기는 또 어떻게 있대


“ 귀여운 거 골라줬네 ”

“ .. 고양이는 좋은데 리본은.. ”

“ 왜~ 귀엽기만 한데 ”

“ .. 그래? ”

“ 이제 얼른 동물 보러 가자! ”


그렇게 우린 사파리 안으로 들어갔다.


“ 와.. 곰 엄청 크다 ”

“ .. 그러게 ”


곰을 보자 역시나 그 아이가 생각났다. 그날의 너와 함께 있는 난 정말 든든했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참 추억이란 말이 어울리는 기억들이었다.

그렇게 태현이와 함께 여러 동물들을 구경했다. 토끼 밥도 줘보고 미어캣도 보았다. 그때 동물원보다 종류가 많아 보는 재미가 꽤나 있었다.

밤이 되어 우린 동물원을 나왔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 오늘 즐거웠어. 내일 봐 ”

“ .. 저 누나 ”

“ 응? ”

” 좋아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좋아했어 “

"... "

” 사실 오늘 이렇게 고백하려고 했는데.. “

” … “

” 아까 동물원에서 누나 표정을 보고 알았어 “

” .. 태현아 ”

“ 범규형.. 기다리고 있는거지? ”

“ … “

“ 뭐.. 어쨌든 의미는 다르지만 고백은 했으니까 “

” … “

” 난 후회 안 해 “


나를 좋아하고 있단 사실은 어느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으나 역시 고백을 들으니 매우 놀랐다. 무엇보다 꽤나 어른스러운 태현이의 말에 감탄했다.

나보다도 더 어른스러운 아이 같아서


” 조심히 가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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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 봐 누나 ”

“ ㅎ 그래 ”


그렇게 난 뒤돌아 집으로 향했다. 달이 지나간 자리는 내게 꽤나 큰 구멍이 되었다. 무엇으로도 메꿀 수 없는 그런 구멍이 되고 말았다.


“ 흐.. 흐흑 ”


어쩌면 그 구멍 하나만으로도 벅차서 꽤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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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야 이거 봐봐! ”

“ .. 미친거야? ”

“ 왜~ 귀엽잖아~ ”


스윽,


“ 하 진짜.. ”


눈을 감아도, 감지 않아도 네 얼굴이 보였고 잠에 들어도,잠에 들지 않아도 네 목소리가 들렸다.

달이 지나간 자리는 내게 아주 작은 자국처럼 남았다.

아무리 뭘 해도 지울 수도, 잊을 수도 없는 그런 자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