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글글글
뻐킹 디 아일랜드

NaBx
2023.03.01조회수 53
충동적으로 맺은 관계는 뜻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사전에선 그걸 실수, 혹은 오점이라 불렀다.
나의 부모는 두 번의 실수로 나와 서호진을 출산했다. 안 그래도 벅찬 빚더미를 두 배로 늘리는 짓이었다. 서호진을 먹이고 재우고 관리하는 건 다 나였음에도, 대한민국의 주입식 교육에 세뇌되어 두 남녀에게 좆같은 감정을 싹 틔웠었다. 낳아준 이에 대한 사랑. 엉엉 울며 잠 못 드는 어린 서호진을 재우고 있을 때만 해도 부모란 참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했었다.
11살이었던 나는 처음으로 동반자살이란 걸 목격했다. 다른 이들의 자살도 아닌 부모의 자살을. 비명 지르지도 못했다. 호진이가 깰까 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캑캑거리면서 발버둥 치던 게 지금까지도 생생했다.
아직 어리다고 뇌가 없는 건 아니다. 나는 급히 의자를 밟고 올라갔다. 퍼렇게 질린 얼굴이 눈앞을 꽉 매웠다. 11살의 손으로 밧줄을 풀려 애썼다. 슬프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아직 안 죽었으니까. 아직 니네 빚이 내게로 옮겨진 건 아니니까. 남자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밀쳐냈다. 나는 아무것도 못 한 체 바닥에 떨어졌다. 큰 소음이 났다. 잠에서 깬 호진이 울었다. 분한 눈물이 흘러나왔다. 지랄하지 마... 나는 아직 살아있다고...... 축 처져있는 두 사람을 보며 중얼거렸다.
어마 무시한 양의 빚은 내 명의로 돌아왔다. 혹시나 보험 든 게 있지 않을까 찾아봤지만 이자 내기도 바빠 보험도 안 들인 둘의 사망보험 소식은 내 마지막 희망마저 짓밟았다. 급히 갚아야 할 돈이 있는데 남겨둔 돈은 없으니 금세 쫓기는 신세가 됐다. 호진이의 분유도 얼마 남지 않았었다. 사체들은 예고도 없이 집에 쳐들어왔다. 놀라서 울먹거리는 호진이를 꽉 껴안았다. 사체들은 나를 쭉 훑더니 저들끼리 속닥거렸다. 그중 덩치가 제일 큰 아저씨가 칼을 들이밀며 말하길. ‘아가. 돈 벌러 가야지?’ 어린 호진을 두고 나는 강제적으로 외딴섬에 내팽개쳐졌다. 그리고 겨우 얻는 일자리의 돈벌이 방법은.
“아..!”
“왜 다른 생각 하는 것 같지 호윤아?”
발정난 년놈들 상대하는 짓이다.
“집중 해.”
물론 앞뒤 상관없이 쓸 줄 알아야 했다. 고객들의 취향은 다양하니까.
뻐킹 디 아일랜드
강이채 서호윤
긴 정사가 끝났다. 나는 아직 쾌락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아저씨를 툭툭 쳤다.
“돈.”
“하하. 매정하네. 너도 좋았으니까 조금만 깎으면 안 될까?”
헛웃음이 나왔다. 몇 번 좋은 척 앙앙거리니까 자기가 X스 잘 하는 줄 아나 본데.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남자를 부추겼다. 그리고 최대한 불쌍한 척, 어쩔 수 없는 척 목소리에 힘주어 말했다.
“돈 받았다 말 한들 보는 눈이 있고 듣는 귀가 있지. 난 형이 자주 왔으면 해서......”
“알겠어, 우리 고양이가 그렇게 바라는데 내가 약속 지켜야지.”
두툼한 봉투 두 개가 손에 착 붙었다. 오늘 수입은 좀 많이 짭짤했다. 이건 서비스. 나는 남자의 손을 가져와 짧게 키스했다. 돈 많은 호구 새끼 또 오라는 뜻이었다.
/
쾌락의 섬 특성상 아침 보다 밤에 더 활발하기 때문에 일하는 사람 대부분은 아침에 잠들었다. 나는 피곤에 찌든 몸을 끌어 동이 트는 바다로 향했다. 모래사장에 앉아 푸르게 돌아오는 모습을 지켜봤다.
“밥 먹었냐.”
- 오랜만에 전화해서 하는 첫 말이 무슨... 안부부터 물어야 정상 아니야?
“그래그래. 밥 드셨어?”
- ...... 짜증 나. 어. 먹었어.
오랜만에 듣는 녀석의 목소리가 많이 굵어져 있었다.
“잘 했네. 키 좀 컸나? 실물 궁금하다 야.”
- 그럼 좀 오던가. 아니면 오게 해주던가. 무슨 사진이나 영통으로 생사 확인해. 아이돌도 아니고. 아니, 아이돌보다 더 보기 힘들어.
“어엉. 형 비싸 호진아.”
처음부터 못 오게 막고 거짓말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섬에서 일하는 직장인인 줄 아는 동생에게 굳이 알려주기도 뭐 하고, 알아봤자 좋을 건 없으니까. 내 나름대로의 애정 방식이었다.
- 됐어. 추워 보이는데 집이나 들어가.
“형한테 하는 말뽄세 봐라.”
- 혼내러 좀 와주던가.
서호진은 그러고 툭 끊어버렸다. 새끼 사춘기인가. 까칠하긴. 문제없이 잘 자란 동생을 보니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
방에 들어가자 웬 남자애가 앉아있었다. 이게 뭔 상황이지 싶어 마담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와 달리 금방 받고 목에 힘주어 말하는 걸 보니 일은 아닐 테고. 나는 고개를 까딱였다.
“뭔데요.”
- 어어. 호윤아 당황스럽겠지만, 새로 온 아가 적응하는 거 같은 방 쓰면서 도와주라. 이 언니 소원이란다.”
“제가 왜 그 짓까지 해야 합니까?”
- 돈 더 챙겨줄게. 어차피 너도 빚 다 갚아서 곧 나갈 텐데 간만에 잘생긴 애 두고 썩히긴 좀 그렇잖아. 응?
한숨이 나왔다.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었다. 미간이 구겨졌다. X발 귀찮게... 소파에 앉아있는 남자애를 훑었다. 기존에 있던 애들보단 잘 생긴 건 확실했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 13퍼센트나 더 줄게. 제발 호윤아..”
“...... 쯧. 알겠어요.”
어차피 곧 떠날 텐데 이 정도야. 나는 물 빠진 자몽 색 머리를 쳐다봤다. 싸가지 없게 생겨선...
다 큰 성인 남성 둘이 한 침대에서 누우니 자리가 부족했다. 킹사이즈 침대였기에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누구 하나는 바닥에서 잘뻔했다.
“이름이 뭐예요?”
“왜.”
“이제 같이 다녀야 하잖아요, 이름 정도는 알아야지.”
걔는 대뜸 이름을 물었다. 알아봤자 뭐 좋다고. 하여튼 철 덜 든 애새끼들은 손이 많이 갔다.
“서호윤.”
“... 예쁜 이름이네요.”
“예쁜은 얼어 죽을.”
암막 커튼은 사이즈 미스로 햇빛을 다 가리지 못했다. 뒤척이는 천 소리가 들렸다. 빛 때문에 그러는 건지 섬에서의 첫날밤이라 그런 건지. 더럽게 잠 못 드는 것 같았다.
/
(삭제)
지겨웠던 정사의 흔적이 남은 새하얀 침대 시트를 내려봤다. 이거 원래 회색 아니었나. 웬 조루 새끼가 와서는... 나는 꿍얼거리면서 침대 시트를 벗겨냈다. 보송했던 천이 질척거렸다.
세탁기가 있는 테라스에 도착하자 반갑지 않은 이를 마주쳤다. 나는 없는 사람인 양 무시하고 재빨리 세탁기를 돌렸다.
“호윤이 형, 안녕하세요.”
“......... 어. 그래.”
하이톤 신음을 꾸며내느라 한참 목에 힘을 줬더니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걔는 말없이 돌아가는 세탁기를 바라봤다.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수신자는 마담. 기분이 좆같아졌다. X스 끝난지 얼마나 됐다고 또 손님 받으래.
나는 테라스에 기대 연초 한 개를 꺼냈다. 바닷바람이 불어 불이 잘 안 붙었다.
아 됐다. 날이 아닌가 보지. 테이블에 라이터를 내팽개쳤다. 걔는 내가 던진 라이터를 주어와 말을 걸었다.
“불 붙여드릴까요? 저 불 잘 붙이는데.”
“뭐?”
“아니 그냥... 불 때문에 안 피우시는 것 같아서요.”
나는 다른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요.”
손에 쥐고 있는 연초를 보며 턱짓했다. 아. 나는 다급히 입에 물었다. 걔는 바람이 부는 반대 방향에 섰다. 담배 끝을 손으로 가리곤 탁탁 헛바퀴 돌더니 손쉽게 불을 붙었다. 담뱃잎이 타들었다. 뿌연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래, 이거지. 나는 탁한 연기를 깊숙이 마시고 내뱉었다. 걔는 코를 가리며 뒤로 빠졌다.
오가는 말은 딱히 없었다. 그렇기에 멍하니 지금 상황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 새로운 손님을 맞이하는 배, 지겹도록 듣는 파도치는 소음. 그리고 옆에 잘 생긴 검은 때 덜 탄 애기.
...... 애기? 옆을 돌아봤다. 나를 처다보는 자몽 머리와 눈이 마주쳤다. 저게 무슨 애기야. 나이 지긋하신 분들만 상대하다 보니 좀 돌았나 보다. 하하. 그럴 만도 하지...
“이름 뭐야?”
걔는 옛된 얼굴로 희미하게 웃었다. 목소리도 한층 신난 것 같기도 하고.
“이채요. 강이채.”
“그래, 강이채.”
이름을 불렀음에도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이번엔 뭐든 말해야 될 것 같았다. 터무니없는 말이더라도.
“앞으로 내가 다녀간 룸 침대 시트 좀 빨아라.”
머리 색과 똑닮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강이채는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말했다.
“얼마든지 불러주세요.”
딱히 필요 없는 노동을 시키는 것 같아 양심에 찔렸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애를 두고 자기 합리화했다. 경험 쌓는 일을 준 것이라고.
/
시끄러운 알람 소리가 울렸다. 덜 떠진 눈을 달고 배게 위를 더듬거렸다. 조용해졌다. 뭐가 만져지지도 않았는데 절로 조용해졌다. 강이채가 껐나... 나는 다시 누워 눈을 감았다. 이럴 때는 좀 쓸모 있는 것 같았다.
“5분 뒤에 깨울까요?”
“어어... 10분 뒤에 깨워.”
오랜만에 곁에 누군가 있다는 걸 확실히 느꼈다.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
굵은 밧줄이 주위에 맴돌았다. 어린 호진이의 울음소리가 머리를 물렸다. 날카로운 책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남자와 여자의 축 처진 인영이 허공에 떠다닌다. 씨발. 끝없는 암흑을 달리고 또 달렸다. 밧줄은 가는 길마다 띄워져있고 호진이의 울음소리는 머리에서 떠날 기미조차 안 보였다. 최악이었다. 생각이 제대로 들지 않았다. 눈앞이 하얗게 먹혀갔다. 숨이 턱턱 막혔다. 꿈이잖아. 씨발 꿈이잖아. 좀 깨 개새끼야. 이런 내 아우성을 뇌에서도 인식했는지 시야는 전환되어 교복 입은 호진이로 바뀌었다.
“하아... 호진아.”
숨통이 트인 기분이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껴안으려 했다.
“내가 오라고 했잖아. 못 오면 찾아서라도 간다 했잖아. 보고 싶어. 보고 싶다고 형. 죽지 마. 이러면 그 사람들이랑 형이랑 다를 게 뭐냐고. 가지 마.”
서호진은 자리에 주저앉으며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야, 그게 뭔 소리야. 죽는다니. 누가 죽어. 여기에, 니 앞에 떡하니 네 형이 있는데. 무릎을 꿇어 서호진과 눈높이를 맞췄다. 무슨 일인데. 호진아 형한테 말해봐. 서호진은 그러고 한참 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
....-...! 형.. 형!
“헉. 허억.”
“형. 괜찮아요? 인상 막 찌푸리고 숨 잘 못 쉬길래 급하게 깨웠긴 했는데... 무슨 일 있는 거예요?"
눈 뜨자마자 놀란 강이채의 얼굴이 보였다. 갑작스런 큰 충격의 부작용은 판단 미스이다. 램프 하나만 켜놓은 어두운 방 안에서도 강이채의 자몽 색 머리는 어찌나 눈에 잘 띄던지. 나는 좆같은 기분을 더 개 좆같은 기분으로 덮기 위해 강이채의 뒷덜미를 잡고 무작정 입술을 박았다. 강이채가 당황할 틈도 없게끔, 밀어낼 생각도 못 하게끔. 집요하고도 끈적이게 혀부터 옭아맸다. 몸에 힘을 바짝 주던 애새끼는 이젠 힘을 풀어 내게 맡겼다. 편했다. 인형 같기도 했고. 갈 길을 잃은 이채의 손은 어깨 위로 올렸다.
눈은 질끈 감고 얼굴은 붉은. 슬쩍 뜬 눈으로 확인한 강이채의 표정은 전형적인 사랑에 빠진 사람이었다. 확실히 효과 있는 방법이다. 고객도 아닌 다른 이와 무금으로 하는 키스. 단어만 나열해도 개 좆같았다. 단어만 봐도 뭐 같은데... 엿 같기는커녕 마음이 편안해졌다. 짜증 났다. 나는 찰싹 붙인 얼굴을 뒤로 뺐다.
“갑자기 무슨...!”
강이채는 손으로 입을 막은 체 멀찍이 떨어졌다. 걔를 보면 이상한 감정이 잔잔하게 자리잡았다. 항상 그랬다. 얼마 보지도 않았는데 그랬다. 내가 모르는 감정을 내가 느낀다는 건 용납할 수 없다.
“...... 야. 깨끗한 척하지 마. 닌 앞으로 이것보다 더 한 짓도 해야 돼.”
심술이 났다.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에 뻔뻔히 내 잘못을 정당화했다. 쟤가 거슬려서이다. 재수 없어서이다. 쟤만 보면 기분이 이상해져서이다. 물 빠진 자몽 머리도 잘 어울려서이다.
X발 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에 서있는 강이채에게 다가갔다.
“비켜.”
강이채만 안 보이면 이런 기분을 안 느낄 수 있을 텐데. 걔는 나조차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