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추운 겨울이 지나 푸릇푸릇 한 나무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여름이 온다는 신호였다. 여름이 온다는 것에 딱히 반갑지는 않았다. 반겨주고 싶지도 않았다. 사실 예전의 나는 여름을 무척 좋아했다. 따스함을 넘어 따가운 햇살이 내 얼굴을 비추는 그 기분마저 좋았다. 온 세상이 푸른색으로 물들여져, 가는 길마다 주변 구경하기에 바빴다. 여름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나는 이제 변해버렸다. 너로 인해.
"야 최수비인~~!!""
학교가 끝난 후 집으로 가는 수빈이를 부른 주린이였다. 둘은 10여 년 함께 지내온 사이였으며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부모님끼리도 친해지셨다.
-"뭐야? 오늘 청소라고 먼저 가라며”
"3분컷 하고와찌!"
주안이가 뿌듯한 표정을 하며 팔짱을 끼고 수빈이를 올려다보았다. 같은 아파트에 살아서 둘은 매일 등하교를 같이 하는데 주린이가 수빈이에게 먼저 가라는 연락을 남기자 수빈이는 시무룩해 있었다. 주린이는 그걸 눈치챈 것인지 빠르게 달려왔다.
-"근데 너 안 덥냐, 하복 입어도 이렇게 더운데 어떻게 춘추복을.. 으.."
수빈이가 몸서리를 치며 주린이를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더워 죽는 줄 알았지.. 내일부터는 하복 입으려고"
“넌 좋겠다? 이제 여름 시작이여서~~"
-"당연하지"
주린이는 어깨로 수빈이를 툭 치며 말했다. 그러자 수빈이는 여름 시작이라는 말을 듣고 얼굴에 미소가 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린이는 여름을 좋아하는 수빈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여름이 뭐가 좋냐.. 덥고 찝찝하기만 하지.."
-"저기 봐라 얼마나 이쁜데"
-"자 여기 보세요!! 하나 둘"
찰칵
수빈이가 갑작스럽게 셀카 모드로 카메라를 켰다. 카메라의 셔터 소리와 함게 플레시가 터져 나왔다.
"또 찍냐.. 어휴.."
"잘 나왔다. 남는 건 사진이야. 자주 찍어야지"
수빈이는 방금 찍은 사진을 확인하며 말했다. 수빈이는 최근에 사진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 그러지 않았던 애라 주린이는 그런 수빈가 신경 쓰이고 의심스러웠다. 전에는 주린이가 늘 먼저 사진 찍자고 해도 거절했던 수빈이라 걱정도 약간씩 되긴 했다. 주린이가 물어보곤 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다 추억이야. 안 찍어두면 나중에 후회할걸?” 이라는 말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냥 놔 두기로했다.
-"잘 가"
"응 너도"
그렇게 수다를 떨며 각자의 집에 도착했다. 수빈이는 아까 주인이와 찍은 사진을 인쇄해 방 벽에 붙였다. 수빈이의 방 벽 한구석에는 주인이와 함께 찍은 사진으로 빼곡했다. 그리고 선반에는 필름 카메라, 폴라로이드 카메라, 디지털 카메라 등 종류별로 카메라가 전시되어 있었다.
"이 여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수빈이는 주린이를 짝사랑한지 3년이 되어가고 있다. 주린이는 눈치가 없는 탓에 그걸 모르고 있는거 같았다. 물론 수빈이가 어떻게 해서든 티를 안 내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백.. 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건 아니다. 경우의 수를 나열해 가며 수천 번 넘게 고민을 해왔다. 자신의 유일하고 아끼는 친구여서 잃을 수도 있다는 경우를 제외하니 남은 것은 그저 숨기는 것 밖에 없었다.
수빈의 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부모님이 출장 가셔서 같이 저녁을 먹자는 주린이의 연락이었다.
띵동
"수비나아ㅏ~"
실실 웃으며 수빈이의 방으로 가는 주린이였다. 주린이는 자연스럽게 수빈이의 방에 들어왔고 침대에 앉아있는 수빈이의 다리를 베고 누웠다. 주린이는 누워서 수빈이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우리 밥 뭐 먹을깡?“
주린이 특유의 그 둥글둥글한 말투에 수빈이는 절로 나오는 미소를 혀 깨물며 겨우 참았다. 한두 번 있던 일이 아니므로 이건 어렵지 않은 일이였다.
-”뭐 먹고싶은거 있어?“
”음 난 아무거나“
주인이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고민없이 수빈이는 배달 어플을켜서 음식을 시켰다. 그러자 약 20분이 넘어가자
띵동
배달 음식이 도착했다.
”배고프다 뭐 시켰어??“
주린이는 들뜬 마음으로 현관문을 향해 달려갔다. 인사도 꼬박꼬박 하며 배달음식을 받고 비닐을 열어 음식을 확인했다.
”헐 뭐야? 허니O보 시켰네? 너 이거 안좋아하잖아“
-”그냥 갑자기 땡겨서 시켰어 안먹을거야?“
”에이 무슨소리~~“
수빈이는 휴대폰에서 시선을 고정한채 관심 없는듯 답했다. 허니O보는 주린이가 좋아하는 치킨이였다. 물론 수빈이는 좋아하지 않았다. 주린이는 수빈이가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메뉴를 시킨 수빈이에게 의문이 생겼지만 자신을 생각해서 시켜준 것에 감동했다.
그렇게 둘은 마주앉아 치킨을 먹고 있었다. 수빈이는 확실히 자신의 입맛이 아니였는지 두 조각 먹고 내려놓았다.
-”난 그만먹을래“
”왜? 더 먹지 내가 라면이라도 끓여줄까?“
-”괜찮아ㅋㅋ 너 더 먹어 나 숙제좀“
그렇게 수빈이는 방으로 들어갔다. 주린은 그런 수빈이가 신경 쓰였는지 수빈이가 들어가자 조용히 라면 하나를 끓이기 시작했다.
”에휴.. 그냥 다른거 시키지..“
수빈이는 침대에 앉아 고민이 있는듯 무언갈 열심히 찾아보다가 한숨을 쉬는 것을 반복했다.
”앗뜨…!“
그러자 밖에서 주린이의 작은 비명 소리가 들렸다. 수빈이는 곧장 주방으로 향했다.
-”너 뭐하는거야?”
“라면 끓이려다가 실수로 손잡이를 맨손으로 잡아서..”
-“라면을 왜 끓이는데”
“너 배고플까봐..“
주린이는 자신이 데인 손을 다른손으로 감싸며 답했다.
-“하.. 여주린 진짜 제발 거슬리게 좀 하지마”
수빈이는 이 말과 함께 한숨을 내쉬며 밖으로 향했다. 처음 보는 수빈이의 모습과 말투에 주린이는 놀라고 당황하여 벙쪄 있었다. 그리고는 수빈이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평소의 수빈이라면 자신을 걱정해 줬을 텐데 갑자기 변한 모습을 보니 아무말도 나오지 않았다. 분명 아까 전까지 자신을 위해 싫어하는 치킨까지 시켜준 수빈이 였기에 더욱 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였다. 주린은 찬 물에 데인 곳을 가져다 대며 곰곰이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할 수 없었고 주린이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내려왔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
수빈이는 밖으로 나와 주린이와 함께 종종 앉아있곤했던 벤치에 앉았다. 저녁이 되니 뜨겁던 햇살도 저물고 선선한 바람이 수빈이의 얼굴을 스쳤다. 수빈이는 한숨을 내쉬며 마른 세수를 했다. 분명 걱정이 있어보였다.
-“이 여름이 영원하지 않는다면.. 난 어떻게 해야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