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바네로 옴니버스
제 1 장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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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존경하는 소설가 이도우님의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에서 영감 받았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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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삐 삐!
정오를 알리는 소리가 전파를 타고 나가는
지금은 12시 00분, 인기아이돌이 DJ를 맡고 있는
<정오의 신청곡>이 청취자들을 만날 시간이다.
메인 피디의 큐소리와 함께 DJ의 마이크 볼륨이 올라가고
DJ의 첫 운이 시작됐다.

"네 오늘도 정오의 신청곡과 함께! 저는 DJ 슈가 입니다.
오늘 정말로 봄이 찾아온 모양입니다. 이렇게 제가 있는 이곳까지 평화로운 기운이 느껴지는 걸 보면 말이죠."
평화롭기는 개뿔.
우리의 불쌍한 여주는 자신이 쓴 원고임에도 그 말에
짜증을 느꼈다. 그녀는 <정오의 신청곡>의 메인 작가로서,
진상 청취자와 싸우는 중이었다.
"이보시오. 작가양반. 노래 하나만 틀어주면 된다하지
않았소! <나성에 가면> 딱 한번만 틀어주시오!"
"할아버님 죄송하지만 그 노래는 이번주에만 2번 나갔습니다. 다른 청취자분들 노래도 틀어야해서요.."
"에헤이~ 이 사람.. 한 번이면 되네! 딱 한 ㅂ.."
"죄송합니다."
전화는 끊겼고 수화기를 내려놓음과 동시에 여주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상 청취자는 일주일에 5번 전화를 하고
그 때마다 <나성에 가면>을 신청한 덕에 블랙 리스트
1번으로 올라있었다.
여주는 제 나이에 50이나 더해야 노인의 나이가 될 만큼
지긋하신 분을 때마다 내치는게 마음에 쓰였지만
방송은 방송대로 진행되어야만 한다는 신념을 꺾을 수는
없었다.

"아 벌써 2시가 되었네요. 이제 정오의 신청곡이
물러날 시간입니다.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저 슙디는
내일 찾아뵙겠습니다"
2시간의 방송 러닝타임이 끝나자 비로소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DJ가 다음 스케줄로 이동하고 PD들이
담배를 태우러 나가자 작가들은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눈다.
여주의 입사 동기 최작가가 말을 시작했다.
"이번에 바뀐다는 PD 삼정파라는데 들었어요?"
그러자 맞은 편에 앉은 40대 중년의 김작가가 이어말한다.
"글도 깨나 써서 책도 냈다는데"
여주는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김작가의 말에
놀라 경기를 일으킨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 글 좀 쓴다는 PD들은 작가의 원고를
별 같잖은 이유를 붙여가며 끝없는 수정을 요구한다더라는
풍문이 방송국 안을 점령하고 있었다.
"글 쓰는 PD 놈들 다 꼰대 천지라는데 어떡해요!!"
자리에서 일어나 걱정스런 음성을 뱉는 여주,
그 뒤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

"어떡하긴 살아남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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