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하라, 증오하리

1.



♪BGM : 래드윔프스 - 과호흡♪















몇 년이란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마주한 너는.

다시 마주한 나를.

모순적인 다정함으로 심장을 찌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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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부정. 다음은 분노. 마지막은 허탈.

사람이 미치는 데에 방법은 수없이 많았고, 나에게 있어 그중 하나는 너라는 이유였다. 쪽지 하나 남겨두고 행적을 감춘 널. 그런 너에게 드는 한순간의 감정을 그 어떠한 단어로도 정의하지 못했을 만큼 속이 울렁였다.

"...."

그래. 내가 미워서 떠났겠지. 미우니, 원망하니 떠났겠지. 근데, 윤기야. 그럼 마지막까지 날 미워했어야지. 원망했어야지.


[ 사랑해. ]


이기적인 감정으로 날 붙잡으면 어떡해.

잔인한 감정으로 날 과거에 묶어 두려 하면 어떡해.

윤기야. 민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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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기적인 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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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오늘 과 회식 올 거죠? 아니. 아 선배~
김태형의 앙탈에도 필기하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곧 시험이야. 저 말을 들은 김태형은 잠시 움찔했다. 잠시였다. 정말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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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아직이잖아요."
"들켰다."
"아 진짜!!!"

필기하는 반대 손을 잡고 징징거리기 시작한 그의 머리 깊은 곳에서부터 윙윙거리기 시작했다. 이걸 골이 울린다고 하던가. 그래도 절대 안 된다. 과 회식 장소. 거기엔 또 다른 기억들이 얼마나 많이, 진득이 남아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가면 정말 제어기능을 상실할 거 같아서.


"에라잇... 그럼 됐어요."
"응."
"아 맞다. 선배 지금 졸업반이죠?"
"... 나 놀려?"
"아니요. 진짜 궁금한 거."
"뭔데."


민윤기라고 알아요? 3년 전에 그만둔 선배. 끽. 몸이 굳었다. 아니, 몸을 넘어 뇌까지 얼어버렸다. 이것 봐. 난 니 이름 하나로 온몸이 덜덜 떨리는데. 내가 어떻게 그곳을 어떻게 마주해.

침묵으로 물었다. 눈빛으로 물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리고 온갖 생각들이 날 지배해갔다. 설마 너의 지인이야? 친한 형이야? 윤기 근처엔 너 같은 친한 동생이 있다곤 듣지 못했는데. 내가 모르는 건가. 아니야. 알고 있으면 윤기 어디 있는지 알아?


"그 선배 돌아왔대요."
"... 뭐?"
"이번 과 회식 때 온다고 해서, 그냥 알고 계시나 해서 물어봤어요."
"...."


그리움은 익숙함을 상기 기키고. 익숙함은 그리움을 불러온다.


"... 오늘 나도 갈게."
"네?"
"과 회식 나도 간다고."


그 감정들을 해소하기 위해선, 감정들의 근원지를 찾아야 했고. 그곳이.

너여서.

너.

너라고 윤기야.

김태형 얼굴이 활짝 폈다. 선배 저 오고 첫 과 회식이나 거 알아요? 알아. 알지. 너무 잘 알고 있지. 내가 유일하게 피할 수 있는 곳이었으니까. 그와 함께한 곳이라면 계속, 매번 맴도는 내가 유일하게 회피할 수 있는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부딪쳐야겠다.

"무리하지 마. 너 힘들잖아."

그곳에 새로운 과거를 묻히면.

그 과거가 잊힐까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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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그락. 한 손에 쥘 수 있는 소주잔을 채우고 비우길만 20분이 지나갔다. 초조함에 두 송곳니로 입안 여린 살을 씹어 알코올과 동시에 피 맛이 입안을 맴돌았다. 오지 않는 걸까. 그저 소문에 불과했을까.

"천천히 마셔. 너 술 약하잖아."

"까분다."

"머리 아프지. 일어나. 나 술 안 마셨어."

익숙한 대화들이 상기되며 가슴 깊은 곳. 일렁이며 올라온 감정의 파도가 찬찬히 날 잠겨누르기 시작했다. 곧이어 눈이 핑 돌며 아릿한 고통을 안겨온다.


"맞다! 여주 선배 오늘 오랜만에 과 회식.. 선배?"
"...."
"선배 울어요?"
"!!!!"


아. 그제야 자각했다. 내 볼을 타고 흐르는 게 절망에서부터 흘러내린 눈물이란걸. 소매로 벅벅 닦아내도 멈추지 않았다. 제발. 제발. 제발. 수많은 눈동자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힌다. 보지 마. 제발.


"나, 나 바람 좀."


자리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재촉했다. 투명한 유리문을 통해 몇 초라도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시선을 피하고 싶었다.


"너 나 없으면 어쩔래 이제."


지독하리 따라오는 기억들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그 기억들 때문에 더부룩해진 속을 게워내고 싶었다. 손잡이를 향해 뻗은 손. 그리고 닿기도 전 한 박자 빨리 열린 문. 그곳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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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
"오랜만이야. 여주야."


네가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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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 보니까... 음."

그저 반가워. 오랜만이잖아. 우리. 더더욱 진득하게 꽂힌 시선들. 우리라는 명칭 덕에 그들이 나를 보는 건지, 너를 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뭣들의 시선보다, 지금 내 눈앞에 서있는 네가 더 중요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보고 싶었어. 원망스러웠어


 왜 그 한마디로 떠났어?

왜?

왜 나에게 그랬어?


"... 다 설명해야 할 거야. 아니면,"
"아 설마 너 아직도 나 못 잊었어?"
"야."
"미안. 아직도 네가 과거에 묶여사는지 몰랐지."


...야 민윤기.

... 풉.

아하하하... 미안.

거짓말 티 났어?


"...."
"난 보고 싶었는데. 넌 나 보고 싶었어?"


응? 여주야.

우리 그래도 좋았잖아.


서로,

사랑이라는 걸 해봤잖아.

배웠잖아.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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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렸잖아.



"보고 싶었어."
"...."
"널 버리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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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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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접 찾아왔어."



"왜 울 표정이야...."


널 무너뜨릴 수 있는 명분이 있다는 거 같잖아.

아아. 미안 여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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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웃어야 하는데. 미안.


헛구역질이 입 끝까지 차올라 끝내 견디지 못하고 그를 밀쳐 미친 듯이 달렸다. 방금 전 말들이 윙윙거리며 울린다. 날 괴롭힌다. 눈물도 어딘가 망가진 듯 얼굴에 범벅이 되어갔다. 쿵. 어두운 골목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 벽을 짚고 모든 것을 게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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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오랜만이라고 하던 너의 모습이 이기적이면서도 그리워서. 모진 말을 내뱉은 너 자체가 갈증 나서. 그래서 내가 원망스러우면서도 불쌍해서. 멈출 줄 모르는 액체가 계속 바닥을 향해 추락하는 것이, 볼품없어서.


"괜찮아?"
"...."
"울지 마 여주야."
"... 으흑."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이러면 어떡해."


그러니까 아직은 울지 마.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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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이란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마주한 너는.

다시 마주한 나를.

모순적인 다정함으로 심장을 찌르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