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얼굴이… 이게 뭐야?”
그 순간이었다.
상혁이 화들짝 놀라며 해나의 손을 탁 밀쳤다.
생각보다 강하게.
“만지지 마.”

목소리는 단호했고, 눈빛엔 뭔가 닫혀 있었다.
해나는 한 걸음 물러섰다. 순간적으로 당황했고,
괜히 민망했고, 그래서 더 짜증났다.
“…뭐래. 걱정 좀 해줬더니...! 죽을래??”
해나는 괜히 더 크게 소리쳤다.
팔짱을 끼고 서 있었지만 손끝이 약간 떨렸다.
밀려난 것도 쪽팔린데, 걱정한 자기 자신한테도 짜증 났다.
“됐어. 너랑 아침부터 말 섞은 내가 바보지.”
툭 던지듯 말한 해나는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초코우유 빨대를 너무 세게 빨아댄 탓에, 종이빨대가 쭈글쭈글해졌다.
창가 쪽의 상혁은 아무 말도 없었다.
그저 책을 펼쳐 들고, 여느 때처럼 창밖을 바라볼 뿐.
하지만 해나는 느꼈다.
상혁이의 어깨가 전과 다르게 살짝 굳어있고,
무슨 생각인지 평소 넘기던 책장을 쉽게 넘기지 못하고 있다는 걸.
**
"자자~ 다들 자리에 앉아라. 수업 시작한다"
첫 교시가 시작되었고,
해나는 그날 하루 종일 상혁을 쳐다보느라 집중을 못 했다.
'왜 저렇게 다쳐서 온거야.. 그리고 걱정해줘도 지랄이야? 참나;'
속으로 생각은 험하게 하면서도 수업시간마다 시선은 자꾸 옆줄 끝 창가 쪽으로 향했다.
해나가 상혁을 지켜본 결과, 상혁은 하루 종일 말이 없었다.

쉬는 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그저 늘 그렇듯, 묵묵하게 같은 자리에만 있었다.
다른 애들은 전혀 관심 없는 눈치였다.
해나는 짝궁에게 물었다.
"야, 너 이상혁.. 뭐 아는 거 없냐?"
“이상혁? 아 그 조용한 애? 걔 공부만 열심히 하는 애잖어"
"그거 말고 아는 거 없어?"
"니는 있간디?"
"없지.."
"뭐래, 니 이상혁한테 관심있냐?ㅋㅋ"
"아 뭐래!! 미쳤냐? ㅈ.. 종치겠다. 가서 앉아야겠다.."
'…진짜 왜 아무도 몰라. 존재감 겁나 없네…'
***
그날 하교 시간, 해나는 일부러 좀 늦게 나갔다.
사실 상혁이 언제 나가는 지 궁금해서 기다린 것이었다.
교실엔 상혁만이 남아 있었고, 제일 나중에 나가는 것 같았다.
해나는 무심하게 말을 꺼냈다.
“…어제 왜 안 왔는데... 이 싹퉁바가지야. 지금도 말하기 싫냐?”
상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누구랑 싸운 건.. 아니지?”
조금의 침묵 끝에,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가 뭘 하든, 넌 모르는 게 좋아. 친한 척 하지마”
그 말에, 해나는 한참이나 말이 막혔다.
“…와. 그게 친구한테 할 말이냐?”
그는 고개를 들었고,
이번엔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궁금해 하지 마. 그냥 넌 나한테 관심가지지 말고, 학교 생활만 해.”
해나는 뾰루퉁한 얼굴로 상혁을 바라보다가, 휙 돌아서 교실을 뛰쳐 나갔다.
그 뒷모습을 상혁은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
그날 밤.
해나는 잠들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머릿속에 자꾸 상혁의 그 말이 떠올랐다.
“그냥 넌 나한테 관심가지지 말고, 학교 생활만 해.”
그 말 속에 ‘학교’가 전부가 아닌 느낌이 있었다.
'학교 생활만 하라는 건 또 뭐야. 지는 다른 생활이 있어?
지는 어? 뭐 어디 알바라도 하는거야?'
***
다음 날 아침.
해나는 평소보다 더 일찍 등교하곤, 아예 창가 자리로 가서 앉았다.
원래 상혁이 앉던 그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상혁이 보던 창밖을 자신도 똑같이 바라봤다.
"여기서 맨날 뭘 쳐다보고 있는거야, 이상혁?"
매번 똑같이 따스한 아침 햇살, 텅 빈 운동장,
그리고—
학교 담장 너머 골목 어귀에,
고개를 푹 숙인 검은 후드 창작을 한 누군가 서 있었다.

해나가 유심히 창 밖을 바라보던 순간,
수상한 사람은 고개를 살짝 들어, 정확히 교실 2층 창문을 바라봤다.
해나는 그 자리에 잠시 얼어붙었다가,
자신을 유심히 쳐다보는 낯선 이의 눈빛에
그만 자기도 모르게 창문 아래로 주저앉았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나 방금 뭐 본 거야…? 누구야 저 사람… 왜 나를…’
수백 가지 질문이 동시에 뇌를 스쳐지나갔고,
그 와중에 바보같이 숨은 자신이
더 바보 같다는 걸 인지할 겨를도 없었다.
그때였다.
뒤에서 조용히 열리는 문 소리,
그리고 익숙한, 낮고 단정한 목소리.

“…강해나. 너 거기서 뭐해?”
상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