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지금은 왜 나한테 말한 거야?”
“그건…!”
“뭐냐고.”
“니가 자꾸… 자꾸 눈에 밟혀서.”
“눈에 밟혀서…? 그.. 그게 무슨 말이야....?”
"ㄴ... 니가 자꾸!! 자꾸만... 곁으로 다가오니까...."
"아니, 그럼 너는 친구도 못.. 사귀는 거야..?"
“내가 항상 같은 시간에 학교에 오고, 같은 자리만 앉는 이유가 뭔지 알아?”
"...뭔데?"
“나는 아버지가 붙인 감시조가 짜놓은 루틴대로 살아. 누군가 내 행동을 감시하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과 친해질 생각을 안 해봤어."
그리고 상혁은 속으로 생각했다.
'네가 위험해질까 봐...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반항이 되겠지'
"ㄱ..그래서 이대로 포기할꺼야? 아버지가 아무리 무서..운 분이시라지만, 이건 진짜 너무하다... 너 어떻게 그렇게 사냐?!"
"ㅎ.... 그러게"
상혁은 잠시 풀숲 사이로 고개를 숙인 채 숨을 고르며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햇살이 그의 얼굴에 스쳐 지나가지만, 표정에는 그늘이 가득했다.
"그럼 너 이제 어떻게 할건데"
"이미 오늘 일은 내 아버지에게 이미 다 보고됐고, 너도 조사 대상에 들어갔을 거야. 그건… 내 잘못이지.”
해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지금 듣고 있는 게 현실인거야…? 21세기에 어떻게 이런 일이...’
"해나야, 우리 연극 하나할까? 그 사람들이 오기 전에 판을 바꿔야 해."
"연극?"
“응. 너랑 나, 단순히 학교 친구 사이에서 일어난 해프닝처럼 연기하는 거야.”
'그게 너를 지킬 수 있는... 지금의 유일한 방법이니까'
"어떻게 할껀데?"
“너는 나를 따라다니는 스토커인거지. 나는 지극히 짜증나는 학생 역할인...거지?”
해나는 순간 분노가 치밀었다.
“... 우이씨!! 뒤질래? 왜 내가 니 스토커냐고!! 읍!!”
"ㅈ.. 조용히 해!! 지금 우리 숨어있는 거라니깐?"
"그니까안...;; 이런 짜치는 연극을 꼭 해야만 하냐그....;;;"
상혁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게 최선이야. 단순히 학교 친구 사이에서 일어난 해프닝처럼 보여야 해. 그래야 너도 안전하고, 나도… 아무 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어.”
해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알겠어. 이번 한 번만 봐주는 거다?”
"너가 하나.. 둘.. 하면, 내가 소리지르면서 이제 나 그만 따라다니라고 할 테니까, 넌 그 말 듣고 실망하는 척 집에 가면 돼 알겠지?
"알겠어.."
하나... 둘....
"야, 강해나!!! 너 이제 나 그만 따라다녀, 이제 진짜.. 진짜 질린다."
"ㅁ... 뭐 질려? ㄱ.. 그래!! 니가 질리면 뭐 어쩔건데"
".... 그만해 .... 진짜 마지막 부탁이야"
"... 하 참내, 그래 오늘만 내...내가 가주마, 운 좋은 줄 알아라 이상혁!!"
그날부터 둘은 학교 안에서 계속해서 ‘연극’을 이어나갔다.
해나는 일부러 상혁에게 다가가거나 말 거는 척하며, 스토커 역할을 연기했다.
상혁은 일부러 짜증 섞인 눈빛과 말투를 연기하며, 해나를 멀리하려 애썼다.
쉬는 시간에도 해나는 일부러 멀리 떨어져 있었고, 점심시간에도 상혁과 마주치면 일부러 얼굴을 돌렸다. 상혁은 여전히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창밖만 바라보았다. 그의 행동은 다시금 철저히 루틴에 맞춰져 있었다.
해나는 솔직히 이 연극은 언제까지 이어나가야하는 지 의문이었다.
'그럼... 다시 너랑 언제쯤 이야기할 수 있는 건데, 이상혁.....'
해나는 가슴이 묘하게 흔들렸지만, 상혁을 위한 연극이므로 말없이 참았다.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수상한 남자가 다시 학교 근처에 나타났다.
그는 교실 창문을 살짝 엿보며 해나와 상혁의 모습을 확인하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휴대폰을 꺼내, 낮고 기계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타깃 A… 루틴 이상 없음. 보고 완료.”
.
.
.
그리고 다음 날, 상혁은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
.
.
.
.
.
.
다음 화에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