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오랜 첫사랑

Ep. 나의 여름은 언제나 너였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았던 긴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마침네 24살이되었다. 최범규를 안본지도 벌써 5년.
완벽하게 잊지는 못하고 가끔 생각나긴 하지만 별 신경 안쓰고 살고있다. 처음 전학 같을 때에는 미치도록
그리웠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차 괜찮아지고 있다.

오늘은 쌓여있던 과제가 일찍 끝나 친구들과 오랬만에
술 마시러 가려고하는 참이다. 스트레스도 풀겸 그동안의 이야기도 얘기해보려고한다. 미리 먼저 술집으로가서 자리를 맡아놓고 기다리고있는 중이다. 이 시간에 술마시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 시끌벅적였다. 얘네는 뭐하느라 안오는거야 ..


딸랑 -


문이 열리고 여주의 친구들이 웃으며 여주가 있는
자리에 자연스레 앉았다. 오랬만에 봐서 그런지 더욱
반가웠다.



" 이야 ~ 이게 얼마만이야? "



" ㅋㅋ 다들 잘 지넸어? "



" 에휴, 말해뭐해 ~ 교수새끼가 과제 내준것 밖에 더 
있겠냐 .. "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이것저것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웃고 떠들며 한창 이야기에 집중할 때 목이 말라 물을마시려고 컵을 잡았지만, 미끄러워 컵이 떨어지면서 옷에 물이 쏟아졌다. 다행이 유리컵이 아니어서 깨지거나 다치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옷에 젖은 물 때문에 찝찝하여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말하고는 빠르게 그 자리를 떴다.

화장실 안에서 휴지로 옷에 젖은 물을 닦아내려고 힘껏 문질렀지만, 물은 그대로였다.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옷도 얇고 거기다가 찝찝하니 이대로 나가기 좀 그럴 것 같았지만 그래도 오랬만에 모인 자린데, 이런거 하나 때문에 가는 건 너무 아쉬울거 같아서 물은 그냥
있으면 마르겠지 하는 마음으로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화장실에서 나오고도 옷이 젖은게 영 신경쓰여서 손으로 문지르고 있는데 끝 테이블에 앉아있는 남자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검은 머리에 키도 크고 거기다가 잘생기기까지. 남자와는 생각보다 눈맞춤이 몇초간 길게 이어졌다. 그 긴 눈맞춤에 여주는 정신을 차리고 먼저 눈을 돌렸다. .. 최범규랑 닮았네. 

정말 그 남자는 최범규와 닮은 점이 많았고, 그 이유 때문에 먼저 눈을 돌린 여주다. 잠깐 마주친거라 생각하고 다시 친구들 자리로 돌아가려고 하던 참에 아까 눈마주친 남자가 여주의 손목을 살며시 잡았왔다. 갑작스러운 손길에 놀란 여주는 뒤를 돌았고, 뒤를 돌자 낮익은 얼굴이 여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 최범규 ..? "



" 오랬만이야. 서여주 "





최범규였다. 오랬만에 보는 최범규는 뭔가 많이 달라져있었다. 뭐랄까, 학창시절 그 밝았던 분위기와 상반되게 특유의 어두운 느낌이랄까? 키는 조금더 커진거 같았고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렸고, 얼굴은 그때도 잘생겼었지만 더 잘생겨진 느낌? 

그런 범규가 여주를 불렀다. 많이 달라진 분위기에 잠시 움찔한 여주지만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 .. 오랬만이야. 최범규 "




" 잘 지넸어? "




" 나야 뭐 괜찮게 지넸지, 너는?  "




" 난 잘 못지넸어. "




" 어? "



이게 도데채 무슨 소린지. 너가 왜 잘 못지넸다는거지?
오히려 잘 못지네야 할 쪽은 나 아니었나. 이상한 마음에 고개를 갸웃둥 거렸지만, 그보다 더 이상한건 최범규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는거였다.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미세하게 목소리가 떨리는게 들렸다.

뭔가 할 말이 있는지 입을 달싹 거리는 최범규에 나는
그를 대리고 밖으로 나왔다. 물론, 친구들에게는 오늘은 같이 못 마시겠다고하며.

밖으로 나온 최범규와 여주는 서로 아무말 없이 밤 거리를 걸었다. 여름의 그 특유의 냄새가 났다. 한여름밤의 추억. 그때의 기억이 스멀스멀 떠올려지기 시작했다. 한 참을 걷고 있을때 여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세상 참 좁다 ~ 어떻게 여기서 만나냐 "



" .. 그러게, 진짜 좁네 "



그리곤 잠시 주저거리다가 자연스레 최범규가 입을 열었다. 네가 하는 말이 그때의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그냥 여기는 무슨 일이냐 그정도로만 물어봤으면 좋겠는데 했지만 역시나 예상은 빛나가지 않았다.



" .. 너 아직도 나 좋아해? "



" .. 아니, 지금은 내가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어. "



" .. 그래 "




범규는 얼굴에 씁쓸한 웃음을 띄고 하늘을 조용히 올려다보었다. 서먹하고, 또 오묘한 분위기. 어색하더라도 왠지 편하게 느껴졌다. 여주야, 나 지금도 너 좋아해.너한테 그렇게 상처를 주고서 이런 마음 가지면 안돼는데 포기하려 해도 포기가 안돼, 나 어떡해 여주야.
그냥 마음이 없더라도 너에게 다가갈 기회라도 주면 안될까? 진짜 너 없이는 못 살거 같아. 

눈가의 눈물이 핑- 돌았다. 널 뒤로한채 지나갔던 나를
바라보는 너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너한테 했던 모든나의 행동들과 말들, 여름의 기억들을 후회해.




" .. 잘 웃고 놀더라. 보기 좋긴한데, 한편으로 마음도 아프고 .. 뭐 그렇다고 "




" .. 이제 좀 괜찮아졌어. .. 나라고 항상 아파할 필요는
없잖아. 내가 아파하면 신경도 안 쓰더니 관심없어지니까 옛 정 들먹이면서 상처주려고? "



" .. 너 왜 말을 그렇게 해? "



" 맨날 좋아한다고 나 좀 봐달라고하는 애가 이러니까
당황스러워 죽겠지. 사랑에 미쳐서 나도 못 보고 너만본 내가 존나 병신 같아서 그래. "



" .. 그땐 미안해, 많이 후회하고 있어. "





갑작이 감정이 북받쳐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내뱉고 있는 지도 모르고 막말을 했다. 그때의 내가 너무 싫고 분해서.너는 내 고백에 답하지 않았지만, 그마저도 너와?함께한 여름이 너무 좋았어서. 다 지난 일을 아무잘못
없는 범규한테 화풀이를 한 샘이였다. 하지만, 그 마저도 미안하다고 후회하고 있다고 말하는 너를 보고 원망했던 마음이 모두 사라진거 같았다. 너도 나도 참 .. 여전하구나.




" .. 아깐 미안해. 순간 감정이 북받혀서 "



" 괜찮아 나였어도 그랬었을거야. "



" 어? "



" 나도 그때의 나를 원망해, 아주 많이. "




하늘에 깔린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져내릴거 같은 이 밤.마음속엔 몽글몽글한 알수없는 감정이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했다.어쩌면 알 수 없는 감정이 아니라 이미 아는 감정일지도.




" 있잖아, 예전에 버스 끊겨서 우리 좀 걸었잖아. 무슨
미술관 근처 공원이였는데. 그때 내가 잠깐 네 손 잡았던거 기억해? "



" 그랬나? "



" 넌 정말 알았던거야, 알았던 척을 한거야? 그걸 기억못한다니. 아니, 지금도 기억 안 나는 척 하는건가? "



" 그게 왜? "




"그때 내가 만일 네 손을 안놓았다면 우린 예전보다 더 나았을까? "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웃으면서 밝게 지금처럼만 지넸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만큼 아픔도 많이 뒤 따른
다는 걸 네가 알았으면 좋겠어. 행복은 쉽지 않다는걸,네가 알기를 바래.

그리고 네가 그걸 다 깨닫고 한층 성장해 성숙해진다면 그 때 다시 만나자. 이건 내 욕심이지만 이번만큼만 눈 감아 줘. 그 때는 우리 서로 행복할 때 만나자. 그러니까 그 때가 된다면 너에게 향했던 내 사랑을 들여다봐줘.정말 얼마나 너를 사랑하고 그리워했는지 몰라. 그 짙은 마음은 나도 헤아려볼 수 없어.

사랑했어, 그리고 사랑할게. 보고싶을거야. 그리고, 내가 감히 너의 행복도 빌어볼게. 내 사랑은 너에게도 나에게도 독이네. 정말 슬프다. 신은 참 못됐어. 사랑해,
다시 한 번 속삭여 볼게. 미안.



그래도 나의 여름은 언제나 너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