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예쁜 눈, 높은 콧대, 앵두같은 입술. 그녀는 '신랑찾기'라는 소설속의 주인공이다. 답답하게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고, 매일 다쳐서 오고, 착해서 악역한테 가만히 폭언이나 듣는 그런 여주인공.
마음에 안 드는 인물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인물은 여주를 괴롭히는 악역. 악역이지만 사실은 사랑 받고 싶어하는 악역이다. 나는 학교 폭력이 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괴롭히다.'라는 것이 잘못된 일이니까. 하지만 악역은 여주를 괴롭히지 않았다. 악역의 주위인물들이 악역 몰래 괴롭히는 것 뿐. 단순한 오해이다.
나, 황아윤은 이런 오늘날 빙의가 됐다.
푹신푹신한 이불과 포근한 이불, 그리고 부드러운 잠옷. 나의 몸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곳은 나의 집이 아니란 것을.
"아가씨, 일어나실 시간이에요!"
한참동안을 생각에 빠져있다가 어떤 여자 목소리가 났다. 아가씨? 나를 말하는 걸까.
"아가씨!? 일어나실 시간이라니까요?"
노크도 하지 않은 채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호칭만 아가씨지 나를 만만하게 쳐다보고 있다.

"뭐, 뭐야...?"
나를 무시하는 여자를 따라가 보니 커다란 거울이 있었다. 그 거울에 비치는 나는 내 모습이 아니었다.
크고 예쁜 눈에 높은 콧대, 마지막으로 앵두같은 입술까지.
하나부터 열까지가 내가 즐겨보던 소설 속 여주인공의 설명과 같았다.
나는 의심이 생겨 여자에게 물었다.
"저기, 너 내 이름 알지."
"내 이름 좀 말해줄래?"
내 이름을 물어보자 이상한 듯 쳐다보는 여자,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않고 내가 원하던 대답이 들려왔다.
"이세아 님이시잖아요."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이 맞다.
이세아...이름이 예뻐서 기억이 났다. 주인공이었던 것이 영향이 더 컸겠지만.

여주? 개나 줘버려
#에이
어떨껼에 준비를 다 했다. 집 앞을 나서니 멈추는 검은 차 한 대. 검은 차의 뒷자석 문이 열리더니 교복을 입은 남자 한 명이 차에서 내려 내게 손을 내밀었다.

"데리러 왔어. 오늘은 쟤가 뭐라고 안 했어?"
내 뒤에 있던 여자를 째려보며 나에게 말했다. 일어났을 때부터 엄청나게 화를 냈었지만 사실대로 말한다면 뭔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별 일 없었다고 말했다.
이 애는 소설 두번째 페이지부터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 후보들 중 한 명이다. 이름은 김태형. 시람을 홀리게 만드는 것과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특징이 있다고 자세하게 나와있었다.
"정말 뭔 일 없었던 거 맞아?"
"생각을 너무 깊게 하는 것 같은데."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곰곰이 생각을 하던 나에게 얼굴을 빼꼼 내밀고는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참, 얼굴은 소설대로 잘생겨서 말이지.
"딱히."
다시 말하자면, 이 소설의 여주인공인 이세아는 성격이 착해 빠졌다. 하지만 나는 착하지도 않고, 착한 척도 하고 싶지 않았기에 소설 속에 들어오기 전 말투로 말했다.
김태형은 깜짝 놀란 듯 하였다. 하긴, 원래 같았다면 정말 아무일도 없었다고, 걱정해줘서 고맙다고 말을 했을 이세아였으니까.
"다...왔어."
벙 찐 얼굴로 다 왔다며 먼저 차에서 내리고는 내 좌석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 잘난 김태형이 여자 애의 문을 대신 열어주니 주변에 등교하던 학생들이 전부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세아는 대기업도 아닌 그저그런 중소기업이니까.
"이제 이렇게 안 해줘도 돼."
나는 단칼에 거절했다. 이런 시선은 바라지 않거든.
반에 들어서니 아까와는 다른 시선들. 뭔가 내가 잘못을 한 듯이 쳐다봤다. 내가 자리에 앉으니 조용했던 분위기는 없어지고 소란스러워졌다. 이러니 내가 왕따를 당하는 것 같잖아.

"이야~"
"얼굴 한 번 뵙기 힘든 이세아 님."
"오랜만이에요?"
반 문이 열리더니 은근슬쩍 내 옆자리에 앉았다. 비꼬는 말투 같은 건 기분탓이다. 소설에서 그 누구보다 이세아를 좋아했으니까.
"보고싶었잖아."
"왜이리 얼굴 보기 힘들어?"
턱을 괴곤 나를 빤히 쳐다보는 애는 박지민. 악역 다음으로 제일 찌통캐이다. 그 누구보다 이세아를 사랑했었지만 우정도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했던 그는 결국 짝사랑을 포기하게 된다.
"너 여기 반이야?"
"우리 반은 다른 반 학생이 못 들어오는데."
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 싶지 않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일지라도.
"뭐 잘못먹었어?"
"못 본 사이에 변한 거야?"
이상한 걸 먹은 건 아니다. 못 본 사이에 변한건...맞겠지. 사람의 영혼이 바뀌었으니까.
박지민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보건실에 가자면서 나의 손목을 잡았다. 내가 싫다고 소리치자 박지민은 걱정과 당황스러움이 담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정말 뭔 일이 있던거야?"
"아니면 걔가 또..."

"걔가 누구야? 혹시...나?"
"지민이 입에 내 이름이 나오다니, 영광인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