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
내 나이는 사람들에게 하이틴이라고 불렸다. 고등학교의 문턱을 밟은 17살의 청춘, 하지만 사전상으로 하이틴은 10대 후반의 나이라고만 나와 있다. 그 말인즉슨 ‘어떤’ 하이틴인지 모른다는 말이었다. 행복한 하이틴, 슬픈 하이틴, 화나는 하이틴···. 여러 수식어가 앞에 붙겠지만 나의 하이틴은 그닥 좋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설레는 웹드라마와 달리 하루하루가 지겹기 그지없었으니까.
문 앞에 발을 멈춰 세웠다. 드르륵거리며 열리는 문 너머로 반 아이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평소와 다른 점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무슨 이유인지 다들 기대에 찬 얼굴로 지나가는 말마따나 ‘전학생’이라는 단어를 불러댔다. 궁금한 마음에 무리의 대화 내용을 들으려고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여러 목소리들이 섞이는 바람에 웅웅 울리기만 했다. 결국 자리로 걸어가 가방을 책상 고리에 걸었다. 짝꿍이면서 내 5년 지기 친구인 김태형이 흥분한 억양으로 말했다.

“야! 왜 이제 왔어!!”
“나 지각 안 했는데···?”
“그 말이 아니야! 지금 교실 뒤집힌 거 안 보여?”
“아, 다들 전학생인가 뭔가 얘기하고 있는 거?”
“그래! 교무실에서 본 애들 말에 따르면 완전 잘생겼대!!”
“응응···. 그렇구나.”
시원치 않은 내 반응에 김태형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다른 애들처럼 반응할 거라고 생각한 듯싶었다. 그러나 부득이하게도 난 이성에 관심이 없었다. 더 정확히는 연애에 관심이 없었다. 왜 다들 잘난 남자만 보면 그렇게 상상 연애를 해대는지 나로선 알 수 없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연애를 할 시기도 아니었다. 아, 1학기 때 받은 처참한 성적 때문에 연애라면 더욱 치를 떨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당장 눈앞에 놓인 공부를 하기도 벅찬데 뭘 사귀어, 사귀긴.
이렇듯 연애에 대해 다시 되새김했다. 그러는 사이 김태형의 말 또한 이어졌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은 덤이었다.
“아니, 넌 기대도 안 돼? 배우 뺨치게 생겼다니까?”
“태형아.”
“왜?”
“너 9월 모고*는 준비하고 있어?”
(모의고사)*

“···됐다. 말을 말아야지.”
할 말이 없어진 김태형의 패배였다. 맥이 빠진 모습이 퍽 귀여워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곧이어 앞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담임 선생님의 옆으로 한 낯선 남자애가 뒤따라왔다. 화제의 전학생이었다. 아직 교복을 받지 못한 것인지 사복 차림을 한 채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은색. 김태형의 말대로 저 잘생긴 얼굴이 패션의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벌써부터 수군거리는 반 애들의 말에 흠집이 없을 리가 없었다.
“이미 다 알고 있겠지만 새로 온 전학생이다. 미국에서 와서 한국말이 서투니까 다들 잘 도와주도록.”
미국? 이건 좀 의외였다. 내 또래 남자애들보다 더 성숙해 보이고 몸집이 큰 건 유전자 때문이었구나 싶었다. 왠지 모르게 공감대가 생겨났다. 비록 잠깐이지만 나도 외국에서 살다 왔기 때문일까. 담임 선생님은 전학생에게 자기소개를 하라는 듯 손짓했다. 그러자 그 의미를 알아들은 전학생이 입을 뻥끗였다. 꽤나 낯을 가리는 모양이었다.

“···.”
뭐지? 지금 눈 마주친 건가?

“···안, 녕. 난 제이야. 만나서··· 반가워.”
전학생은 끝까지 나와 눈을 마주했다. 나 또한 전학생의 시선을 피하지 않아서인지 나에게만 말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뒤 교실이 떠내려갈 것 같은 환호가 이어졌다. 누구는 박수를 쳤고 또 누구는 휘파람을 부르거나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난 아무런 제스처를 취할 수 없었다. 마치 전학생의 눈동자에 홀린 듯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반 애들의 소리가 줄어갈 때쯤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럼 이제 자리 배정을 해야겠지. 어디 보자···. 누가 좋을까.”
담임 선생님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곧장 눈을 돌렸다. 이게 무슨 기분이지? 방금 되게 이상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은데. 머리 위에 물음표를 매달며 혼란스러운 생각을 정리하려고 애썼다. 김여름? 문득 들려오는 내 이름에 고개를 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향해 있었다. 몇몇 실망한 얼굴들을 보면 전학생의 옆자리로 날 점 찍으신 듯했다.
“무슨 생각 하길래 몇 번을 얘기해도 못 들어? 아무튼 여름이도 외국에서 살다 왔으니까 그나마 전학생이랑 잘 맞을 것 같은데.”
“하지만 선생님···. 전 김태형이 짝꿍인데요.”
“흠, 그렇지.”
내 변명거리에 담임 선생님은 잠시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김태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태형아, 자리 좀 바꿔줘라. 그 대신 네가 원하던 앞자리로 바꿔줄 테니까.”
“옛썰!”
김태형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긍정의 반응을 보였다. 오늘따라 눈치도 빠른 애가 왜 이러나 싶어 쳐다봤다. 그러면 김태형은 웃음을 꾹 눌러 참느라 일그러진 입가로 따봉을 날렸다. 잘해보라는 의미였다. 젠장. 다시 한번 반 전체의 눈길이 나에게로 모였다. 여기서 또 버벅거린다면 전학생과 짝꿍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게 들통나고 말 것이다. 그러니 최대한 자연스럽게 거절해야 한다. 고민이 지속되자 보다 못한 담임 선생님이 내게 말을 걸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저···. 죄송하지만 저는,”

“난 하고 싶은데. 너랑.”
?
중저음의 목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졌다. 난 나도 모르게 입을 떡 벌리고 전학생을 쳐다봤다. 아까처럼 말조차 안 더듬은 전학생이 담임 선생님의 팔을 들어준 꼴이었다. 그야말로 내 완패였다. 담임 선생님은 전학생의 말에 힘입어 교탁에 놓인 자리 배치표에 줄을 찍 그었다. 분명 ‘김여름 – 전정국’이라고 고쳐 썼을 게 뻔했다. 2학기에는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길 바랐는데. 역시 신은 없는 것이 분명했다.
전학생이 천천히 발걸음을 뗐다. 걸어오는 짧은 순간까지도 모두의 눈길이 닿았다. 그리고 그 시선은 전학생이 가방을 내려놓을 때까지 지속됐다. 의자를 끌어 자리에 앉는 전학생의 얼굴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하지만 난 반대로 가시방석에 앉은 것 마냥 눈을 가만두지 못했다. 이윽고 먼저 눈을 맞춰오는 전학생이었다.

"···안녕."
어쩐지 익숙한 비누 향이 맡아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