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파일 써왔어요?"
"아니요."
"네?!"
"양식은 가져왔어요."
"아니... 써왔어야죠!"
"지금 쓰면 되죠."
당당하게 깨끗한 사건 파일들을 내밀며 말하는 형사에 실소가 터져나왔다. 이따구로 일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실적이 그리 좋게 나온다는 건지.
"장난 합니까?"
"당신 그거 쓰고 있을 동안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구경만 하란 소리네?"
"해커님이 쓰실래?"
"내가 이걸 어떻게 써요..."
"그럼 가만히 있으시던가~"
"...줘봐요, 어떻게 쓰는건데 그거."
"그럴 줄 알았다니까~"
웃으며 자기 옆자리를 툭툭 치는 형사에 어이가 없어서 욕이라도 할 뻔했다. 사건 파일도 안 써온 주제에 뭐가 이리도 당당한 건지 싶었다.
이미 사망 되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아이들의 상처 부위를 표시 해야 한다면서 커터칼을 꺼내 아이들 사진에 긋는 형사. 아니 근데 학창시절 때 미술 못하셨나, 커터칼 잡는 게 영 불안...
"아...!"
".....!!!! 괜찮아요?!"
"아, 네... 괜찮아요."
"커터칼 잡는 거 불안하다 했다, 손 줘봐요."
"괜찮다니ㄲ,"
"내가 안 괜찮아요."
박 형사의 다친 손의 손목을 잡고 구급상자를 꺼내들었다. 피가 이렇게 철철 나는데 센 척은... 다행히 많이 안 베인 거 같아서 지혈 하니까 곧바로 피가 멈추기는 했다. 데이밴드를 붙일 때 쯤 무전이 왔다.
_ "김 해커, H그룹 외동아들 실종사건 범인 해킹 및 검거 48시간 카운팅 시작 됐으니까 서둘러."
"...하."
"왜요, 나 치료해주는 게 못마땅 하기라도 한건가?"
"그런 거 아니에요."
"카운팅 시작 됐대요, 이쪽 손 많이 쓰지 말고요_"
"걱정도 많으셔라."
노트북 전원을 키고 해킹용 모니터까지 켰다. 총 3년간 32명의 아이들이 실종 되고 살해 될 때 동안 못 잡은 거 보면 골치 아픈 놈인 게 분명 했기 때문에 눈앞이 아찔해졌다. 벌써부터 피곤이 물 밀듯이 밀려왔다.
"사건파일 쓸 수 있어요? 손 괜찮아요?"
"괜찮으니까 얼른 준비나 하세요_"
"걱정을 해줘도..."
재수 없는 형사님을 뒤로 하고 타이핑을 하면서 일단 실종 사건부터 훑어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확인 된 아이는 32명이고 사망 아이는 13명, 턱 밑까지 드리워진 죽음이 무서워서 목숨 걸고 도망쳐 나온 아이는 고작 7명...
그리고 이번에 새로 추가된 아이, 해킹건을 의뢰 받은 아이, H그룹의 외동 아들이 새로 실종이 되면서 H그룹은 물론 우리나라도 발칵 뒤집혔다. H그룹 회장은 눈이 뒤집혀져서 나와 형사의 합동수사를 의뢰 했다고 한다.
평소에 아들을 얼마나 아끼면 성공 시 보상금 5억,... 하지만 48시간 내에 해결 해야지만 받는 금액. 어떻게든 잡아야 했다.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 위해.
띠리링_ 띠리링_
"...모르는 번호인데."
이 정도의 모르는 핸드폰 번호는 금방 해킹 해서 알아낼 수 있다. 한 5초 걸린다. 왜냐고? 모르면 외워, 천재 해커가 바로 김남준 나라는 걸.
"...정 대표?"
H그룹의 대표, 정호석이 왜 나한테 전화를 했을까... 뻔할 뻔 자지. 정 대표의 아들이 지금 실종 된 H그룹의 외동아들이거든. 의뢰를 한 것도 이 사람이고.

- "찾았어?"
- "방금 카운팅 시작 했어요~ 급하시네 우리 대표님."
- "안 닥쳐?!"
- "조금 시간이 걸리긴 할텐데 48시간 내에 잘 끝마칠게요."
- "약속한 5억 잊지 마세요~?"
- "빨리 찾기나 해, 48시간 내에 못 잡으면 그땐 알아서 하고."
뚝_
"성격 드러우시네요."
"자기 아들이 실종 됐다잖아요. 당연 한 거죠."
"사건파일 다 썼어요?"
"네, 브리핑 할까요?"
"그럴 시간이 있어요?"
"네, 있어요."
"...아."

"어디 한 번 해보시던가."
"해커님 취향에 맞춰서 해드릴까?"
"내 취향이 뭔 줄 알고_ㅎ"
"사건 브리핑 할게요."
"무시하는 건 형사님 특기인가?"
"사건 브리핑, 강남 발발 32명 아동 실종 및 살인 사건."
"용의자 무, 지문과 족적 무, 3년간 잡히지 않음."
"시체 부검 결과. 주로 얼굴 집중 강타, 목 졸림 있음."
"특징, 목 부근에 고래 타투가 있음."
"...고래 타투? 목에는 잘 안하는데..."
"네, 타투는 자신이 의미를 부여하기 마련이지만..."
"사람들은 이 타투의 의미를 욕망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욕망이라... 이유는?"
"깊은 심해에 사는 고래처럼 욕망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게 아닌가 해요."
"특히 그 아프다는 목에 타투를 새긴 걸 보면."
"글쎄... 억지 아닌가."
"있는 증거는 이게 다예요."
"그ㄹ, 아...!"
"...해커님...?"

"다음에 또 봅시다, 잘생긴 해커님~"
"아윽....!!!!"
"해커님...? 해커님...!"
"하아, 하... 약...약 좀..."
"약이요...?"
"빨리...! 아...!!!!"
"해커 양반, 바쁘신가봐? 나 잡느라."
"ㅇ, 여기요...!!"
"윽, 하아... 아..."
쾅_!!!
"김남준!!!!! 괜찮아?!!!!"
"민 해커님..., 또... 또 기억이 막..."
"괜찮아, 괜찮아..."
"약 먹었지?"
"네, 방금..."
"한동안 괜찮다가 왜 이런데... 아무튼, 좀 자둬."
"하아, 하, 아... 하..."
"...후_"
"...어, 안녕하세요..."
"...잠깐 저랑 얘기 좀 하실까요."
김 해커님 목에 주사를 놓고 해커님이 잠들 때 쯤 나를 컨테이너 밖으로 불러내는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 처음 소개 받을 때 이 해커팀의 대가리라고 들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따라나갔다.
따라온 곳은 다른 컨테이너, 하지만 더 넓은 컨테이너였다. 그 사람이 지내는 곳 같았다. 소파도 있었고 각 컨테이너에 설치 되어 있는 CCTV들 화면이 보이기도 했다.
"앉으세요."
"아, 네."
"마실 거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예상보다, 더 까칠하시네요."
"초면인 사람이 베푸는 호의에 달갑지 않아서요."
"아무튼, 아까 일은... 얘기를 못 드렸네요."
"김 해커가 3년 전 현장출동을 하면서 해킹건 처리하다가,"
"그 범인이 휘두른 칼에 찔렸는데 하필 그때 혼자 떨어져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때와 비슷한 걸 보거나 들으면..."
"숨이 가빠지면서 희미한 기억이 괴롭게 떠오르고 환청이 들린대요."
"정신과 소견으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해서 약을 처방 해줬긴 한데... 제일 중요한 건 자신이 이겨내는 거. 그게 이 병을 낫게 하는 거래요."
"근데 이번 사건이 3년 전 그 사건의 범인과 동일한 범인으로 추정 되어서 남준이가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 할거예요."
"그 약도 많이 필요 할테니까 48시간 동안만이라도 챙겨줘요."
"...네, 그럴게요."
"이제 남준이 깼겠네요, 이만 가보세요."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고마워요."
그래도 아예 재수 없는 사람이라고는 생각 안 들었다.
***
주황색 컨테이너 0912번으로 들어가자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해커님이 보였다. 내가 들어오자마자 시선이 내 쪽으로 왔다.
"...어디 갔다 왔어요?"
"아,... 잠깐 민 해커님께 갔다왔어요."
"내가 너무 많은 걸 형사님께 들켜버렸네요."
"48시간 뒤면 안 볼 사이인데."
"48시간이 짧은 시간은 아니잖아요."
"무슨 일인지는, 대충 알았어요."
"내가 그래도 사람 지키는 형사니까, 약도 챙겨드릴게요."
"...고마워요."
"빨리 합시다 이제, 벌써 30분이나 지났네."
"...형사님."
"네?"

"밥... 드시고 할래요?"
감정도 없어보이는 이 형사에게 정이라도 붙여버린 건지 모르겠다. 내가 말했지 않았나, 형사는 지겨울 정도로 싫다고. 하지만 이 형사는 무언가 달랐다.
그렇게 차가울 정도로 단호하게 일을 해결하던 내가
감히 정을 붙여도 될만큼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