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 전쟁 : 초능력 고등학교

시즌2 4화

04. 저주.




유난히도 맑은 날이었다나는 학교 옥상 위에서 오랜만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희망 호르몬을 가진 초이스로서 어떠한 제재로 받지 않는 존재였다초이스들은 이해할 수 없는 논초이스의 세계에는 수능이라는 중요한 시험이 있는 것 같았다그리고 그 다음날 쯤소녀 하나를 만났다소녀는 학교 옥상의 난간에 위태롭게 서있었다나는 그 소녀를 난간 위에서 내려오게 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그 소녀에게로 다가가 소녀의 팔을 붙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그런데... 분명히 붙잡으려고 그랬는데....소녀는 이미 난간 밑으로 떨어져버렸다너무 놀란 나머지 옥상 난간 밑을 내려다본 순간 내 눈 앞에는 온몸이 피범벅이 된 소녀가 벽 난간에 매달린 채 피눈물을 흘리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너 때문에.. 내가 죽은 거야.. 네 호르몬 때문에.. 너의 그 저주받은 호르몬 때문에!'

 

'.. 아니야....아니야.. 나 때문이 아니야..'

'사람을 죽인 살인자 주제에 행복하게 지내길 바랐어..?용서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냐고...!'

난간 위에 매달려 있던 그 소녀의 창백한 손이 나의 팔을 잡는다나의 몸의 무게중심은 그 소녀의 손에 의해서 앞쪽으로 쏠린다아찔한 학교 건물 밑의 바닥이 내 시야에 가득 찬다용서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버렸나보다.. 나도 모르게... 밝은 곳에서 지내는 동안.. 이 모든 기억을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을까 하고.. 자연스럽게 치유되지 않을까하고.. 그렇게.. 막연하게 생

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어놓고 용서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해버렸어.. 나란 놈은 끝까지 추악하고 쓰레기 같은 놈이지..?'

'네가 어떻게!!나를 죽인 네가 어떻게!!!!!!!그렇게 웃으면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어...?'

피 눈물을 흘리는 그 소녀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그래.. 난 어둠속에서.. 영원히 용서받지 못하고.. 살아야할 사람이야.. 나는 왜.. 그 어둠 속에서 밖으로 나오려고 했을까...

 

'데려가.. 나를...'




소녀의 몸의 무게를 죽을 힘을 다해 버티고 있었던 내 몸에 힘이 빠져나간다내가 너를 외롭게.. 슬프게.. 홀로 그 험한 길을 걷게 만들어버렸는데.. 네 인생을 망쳐버렸는데 혼자 살아있는 건 너무 불공평하잖아.. 그러니까..

'네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

내 말을 듣고 있던 피범벅인 소녀의 입가에 살벌한 미소가 그려진다.

 

'그래...?'



내가 그 말을 내 뱉은 순간 소녀의 두 손이 강한 힘으로 내 몸을 난간 밑으로 끌어당긴다이제.. 나도 죽는 구나 생각하고 눈을 감으려는 순간.



'호석오빠는 악마가 아니에요... 엄청 천사 같은 분이란 말이에요.'

'우어어엉호석오빠는 절대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아니란 말이에요..'

누군가의 아주 익숙하고 기분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잠깐만.. .. 여기서 죽으면 안될것 같은데.. 내가 죽으면... 엄청 슬퍼할 것 같은 사람이 있어.. 그게.. 누구였더라..?

'호석이 오빠얼른 일어나야 해요.'

'얼른 일어나서.. 다시 웃어줘야 되요.'

어둠 속에 갇혀있던 나에게 빛이 있다는 걸 알려준 사람.. 나를 위해 흘려주는 그 눈물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던 사람..

 

'그래그래알아난 착한 사람이야난 천사야그러니까 울지 마ㅇㅇ.'

ㅇㅇㅇ...?그래.. ㅇㅇ... 옥상 난간에서 떨어지기 직전나는 다시 죽을힘을 다해 소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애썼다.

 

'나와 같이 가기로 했잖아... 왜 마음이 변한거지..?'

 

​피 눈물이 흐르는 채로 나를 원망하는 눈빛으로 보는 그 소녀의 눈을 마주봤다.

'내가 너한테 한 짓은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평생 용서받지 못 할 거야난 그 때의 너를 구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두 번 다시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을 거야내 희망 호르몬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너와 같은 위기에 처해있는 사람들을 구해낼게약속해.. 그러니까 이제 부터 날 지켜봐줘.'

내 말에 나를 붙잡고 있던 소녀의 창백한 손에서 힘이 빠져나간다그런 소녀의 손 위에 내 손을

올리며 말했다.

'난 이만 가봐야겠다내가 없으면 바보 같이 울고만 있을 울보가 하나있어서.'



나의 어깨 위를 잡고 있던 소녀의 손이 사라진다더 이상 눈앞에 피투성이 소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이제.. 돌아가야겠다그 녀석 분명히 나를 걱정하고 있을게 분명하니까.

 

"호석이 오빠.. 빨리 일어나셔야 돼요빨리 일어나셔서 다시 웃어주셔야 해요.."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너무나 편안한 모습으로 잠들어있는 호석 오빠를 보고 있자니 터져 나오는 눈물을 막아낼 길이 없었다.

"호석이 형 금방 일어날 건데 왜 울고 그래ㅇㅇ울지 말자호석이 형이 슬퍼하면 어떡해"

지민오빠가 나의 등을 토닥이며 나를 달래지만 슬픈 기분은 떠나지를 않는다정말이지 금방이라도 일어나서 울고 있는 나를 놀려줄 것 같은 호석오빠인데.. 그런데..

"것봐ㅇㅇㅇ너 울보 맞잖아"

"그래요.. 나 울보맞..."

내 기억 속에서 나오는 호석의 목소리 인줄 알았다.. 하지만.. 이건 분명히 내 바로 앞에서 나는 목소리인데... 내가 호석오빠의 목소리에 호석오빠가 누워있던 침대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내 눈에 보이는 건..

"호석 오빠…?”

나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호석 오빠.

"미안좀 많이 자버렸지..?"

뭐야..그게.....나를 보며 서글서글한 웃음을 짓는 호석 오빠의 얼굴이 너무 반가워서.. 다시 일어나준 호석 오빠가 너무 고마워서

"흐어엉오빠아-"

그대로 침대 위에 있는 호석 오빠에게로 달려들어 호석 오빠를 덥석안아버렸다그런 나의 행동에 처음에는 두 눈이 동그래지던 호석 오빠는

"오빠가 미안해그러니까 울지마울보야"

라며 나를 감싸 안아 준다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지민오빠는 다소 떨떠름한 얼굴이지만 그래도 호석 오빠가 깨어났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얌전히 미소를 지으며 앉아있...

"아이고호석이 형나도 좀 안아 보자아~"

얌전히 있을 리가 없지.. 그 짧은 순간 호석과 ㅇㅇ의 상봉을 참지 못하고 호석에게서 ㅇㅇ을 떼어놓고는 자신이 덥석 호석을 안아버리는 지민.

"야야박지민 징그러!떨어져-"

호석과 지민이 투닥거리는 동안'드르륵-'보건실 문이 열리고 택운이 보건실 안으로 들어온다그리고는 어느새 깨어나 있는 호석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왜 혼자 들어와?태형이 형은 어쩌고"

호석이 있는 침대 맞은 편 침대에 누워있던 정국이 때마침 보건실로 들어오는 택운을 향해 묻는다그렇지만 택운은 정국의 질문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눈치다.

"김태형을 왜 나한테서 찾아"



"태형이 형이.. 택운 쌤한테 할 말 있다고..."

"김태형이 무슨 소리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오늘 김태형을 만난 적이 없어"

택운의 말에 정국의 표정이 불안함에 굳어간다.

"제길..."

정국이 빠른 걸음으로 보건실 문을 열고 빠져나간다.


  

한편학교 복도 한 편에서는 자신의 손에 들려진 유리병을 유심히 보며 걷고 있는 태형의 모습이 보인다.

"흐음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그냥 평범한 유리병일 수도 있는데"

태형이 유리병을 처음 발견한 복도에서서 주변을 꼼꼼히 살펴보지만 딱히 의심가는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헛다린가?"

태형이 더 이상 복도를 둘러보기를 포기한 듯 유리병을 교복 주머니에 넣고 뒤돌아서서 걸어가는 순간 태형의 귀로 또 다른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뒤돌아서 있는 태형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그려진다태형은 계속해서 앞으로 몇 걸음 걸어 나간다태형의 뒤를 따르는 발걸음도 그런 태형의 움직임에 맞춰서 움직인다.

"왜 나를 따라오는 거지?"

"흐헣-"

 

​태형이 갑작스럽게 뒤를 돌아보자 처음 보는 얼굴의 남학생이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 친다.

"그게.."

 

​자신의 뒤를 쫓아오던 인물이 호석의 사건과 관련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태형의 눈앞에는 의외로 순둥한 인상의 남학생이 서있다전혀 계획적으로도 전혀 예리해보이지도 않았다역시 잘못 짚었나태형이 처음 보는 얼굴의 남학생을 향해 힘 빠진다는 목소리로 묻는다.

"무슨 일인데?"

"네가 방금 전에 이걸 떨어뜨리고 가기에"

 

​그 남학생의 손에는 방금 전 태형이 손에 들고 있던 유리병이 들려있었다.

"내가 떨어뜨렸나..?"

태형이 남학생에게서 유리병을 받아들기 위해 남학생에게 가까이 다가선다그리고 남학생의 손에 들린 유리병에 손을 대려다가 말고 자신의 주머니에 들어있던 유리병을 꺼내어 들어 그 남학생 눈앞에 가져다대며 남학생을 향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내 껀 여기 있는데-?"

 

​태형의 말에 남학생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태형을 본다.

"나는 그냥 바닥에 이게 떨어져 있기에.. 네 껀 줄 알았는데"

"그럼 하나만 더 묻자"

남학생을 향한 태형의 눈빛이 한층 더 날카롭게 빛난다그렇지만 그와 반대로 웃고 있는 입이 남학생에게는 더욱더 공포스럽게 다가가는 듯 했다.

"너한테는 왜 내 호르몬이 먹히지 않지?나는 아직 호르몬 주사를 맞기 전인데 말이야"

태형의 말에 순식간에 표정이 굳어진 남학생이 빠른 속도로 자신이 들고 있는 유리병을 태형의 몸에 부딪친다.

"이게 무슨 짓..."

태형이 그 남학생을 향해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태형의 몸에서 불빛과 같은 것이 나와 유리병에 핑크빛 물약이 채워진다.

"이미 너무 늦었어하핳"

남학생의 얼굴에 낙천적인 미소가 그려지고 태형의 시야가 흐려진다.

"...가만....."

태형이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심하게 휘청이는 태형이며 바닥에 쓰러지고 마는 태형그런 태형의 몸에서 나온 핑크빛 물약을 담은 유리병을 마개로 닫으며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의문의 남학생.

"이제 하나 남았나?"

남학생의 손에 들린 유리병에 담긴 핑크빛 물약이 매력적인 빛깔로 빛난다.

   

"태형이 형!!"



정국이 복도에 쓰러져있는 태형을 발견해내고 태형에게로 달려가 태형의 상태를 살핀다호석과 똑같은 증상태형도 분명 똑같은 일을 당한 게 분명하다다급하게 태형을 등에 업고 가려던 정국의 눈에 유리병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정국이 태형을 업은 채로 유리병을 주워든다유리병을 손에 쥔 채로 복도를 달려 나가는 정국의 발걸음이 바빠 보인다.

"흐응조금만 늦었으면 곤란해 질 뻔 했네타이밍이 베리베리 굿~"

복도의 한쪽 구석에 몸을 숨기고 있던 남학생이 정국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