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늑대"와 친구로 지내는 법 [犬友情法]

04.

 

정식 무녀 품계를 받은 지 얼마 안되었을 때 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인간들이 수인족들의 영토를 침범하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안개 속에, 그리고 결계 속에 수인족들의 마을은 잘 숨겨져 있었지만, 인간들은 그들의 영토를 탐내며 차지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일을 무녀들이 도와주길 바랬다. 최고 무녀님은 인간의 이익을 우선시했기에 그들을 돕고자했다.

 

나는 최고 무녀의 눈에 띄여 신력을 인정받아 빠르게 품계가 올라갔지만, 현장에 나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앓아 눕고, 몸이 아픈 행색을 하며 나가지 못했다. 수인족을 침범하는 인간들이 너무도 미웠다. 야만적이고 잔인한 방법으로 그들을 몰아내고 영토를 차지하려는 나의 종족이 혐오스러웠다.

 

그리고 결국 인간은 전쟁이 일으켰다.

 

무녀들은 앞장서서 수인족들의 하나 둘 결계를 찾아 깨뜨렸다. 늑대 족의 선대 족장이었던 결의 아버지는 결계를 지키는 과정에서 전사한 것 같았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늑대족의 마을은 다른 수인족의 마을보다 오히려 더 오랫동안 결계를 유지하며 저항했다. 결이 다웠다. 자신의 백성들이 모두 안전하게 피난할 때까지 끝까지 맞서 싸웠던 것이다. 나는 다친 사람들을 치료하며 되도록 신전에 머물며 지냈다. 결이의 결계가 깨지지 않길 마음 속으로 빌었다. 늑대족 마을과 싸우는 일은 그 어떤 수인족보다도 가장 많은 시간과 인명이 다쳤다. 하지만 그 누구도 목숨을 잃지는 않았다. 그 역시 결이다웠다.

 

인간진영은 북쪽의 거대한 소나무 숲을 끼고 있던 늑대족의 결계가 워낙 거대하고 강력했기 때문에 전쟁의 성과도 없이 물자도 떨어져가고 백성들도 지쳐갔다. 인간들은 잔인하고 광기어린 행동을 하며 스스로를 위안하기 시작했는데, 스스로의 탐욕에 의해 시작된 이 전쟁을 마치 자신들의 숙원사업 혹은 반드시 이뤄야하는 운명적인 전쟁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나이 든 어른들은 수인들을 악마같은 종족이라고 몰아세우고 젊은 사람들은 그 논리에 동요하여 스스로 전쟁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여론이 이렇게 잡히며 최고 무녀의 권위가 올라가자 그녀는 흡족해 했다. 그리고 결국 나도 참전을 위해 불려가게 되었다. 그를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노심초사하며 그와 거닐던 들판을, 이제는 더이상 꽃은 없고 불에 타오르고 남은 재만 남은 그 들판으로 가야만 했다. 전선의 맨 끝에서 나는 커다란 칼을 가볍게 휘두르며 더이상 인간들이 진격하지 못하게 막는 결이의 모습을 멀리서 볼 수 있었다.

 

 

첫번째 전투는 수인들의 승리였다. 그들의 도력은 강했고,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굳건했다. 하지만 그들의 부족함이 있다면 잔인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평화주의로 무장한 휴전을 요구하며 포로들을 모두 풀어주었지만, 당연히도 인간들은 수인들의 요구를 무시했다. 풀어난 포로들은 다시 군대에 합류했고, 인간들의 대열은 다시 복원되었다.

 

두번째 전투에서는 인간들은 포로로 잡힌 수인들을 보란 듯이 처형했다. 처형을 피해 민가로 숨어든 수인들도 있었지만, 도력이 약한 수인들은 자신의 혼현을 완전히 감출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색출 되었다. 수인들로부터 풀려나 본 적이 있는 인간들이 웃으며 수인들을 처형하는 모습은 헛구역질이 나도록 역겨웠다. 인간들은 처형한 수인들의 시체를 잘 보이는 곳에 전시해두며 그들을 두고두고 욕보였다.

 

세번째 전투에서는 더이상 결이가 보이지 않았다. 전쟁터에 남은 수인들이 인간을 헤치기 시작하면서 전투는 치열해졌다. 수인들이 인간들을 해치기 시작하자 그들의 전투력은 엄청나졌다. 하지만 인간 진영에서는 더 많은 젊은이들이 앞다투어 참전하면서 숫자가 늘어났다. 족장이 사라진 그들은 진인해지기 시작했고, 인간진영도 큰 타격을 입었다. 불안해진 나는 대열에서 이탈해 버렸다.

 

전쟁터에 남아있는 수인들은 더이상 용맹하고 정의로웠던 수인 전사들이 아니었다. 미쳐있는 광인들이었다. 그가 사라졌다. 기억을 더듬어 표적을 이용해 계단을 올랐다. 이상하리 만큼 계단은 온전했다. 마을에 닿았을 때에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마을이 텅 비어있었다. 세번째 전투 전에 이미 그들은 떠난 것이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큰 기왓집을 찾아갔다. 나를 압도하던 큰 지왓집의 지붕은 그대로 남아있었지만 그 아래 따듯했던 방들은 모두 비어있었다. 처마 끝에 풍경만이 뮈태롭게 매달려 쉴새없이 울려대고 있었다.

 

 

기왓집을 벗어나 숲으로 달려 갔다. 이곳은 원래 늑대들의 결계가 있어서 외부와 단절되어 있었던 곳이었다. 결계를 만들었던 선대 족장도, 결계를 물려받은 결이도 없는 지금은 그 결계가 사라져서 나는 숲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숲으로 발을 내딛는 그 순간, 나는 결이의 푸른 두루마리 자락을 얼핏 본 것 같아 뒤를 쫒았다.

 

그리고 한참을 쫒아가서 도착한 동굴.

 

쉿!

 

누군가 나의 목에 칼을 대고는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나를 잡아당겼다.

 

"너를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네..."

 

동굴 속 그림자에서 두 눈빛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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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부터 BGM, 삽화 모두 한번씩 손봤습니다.

옮겨오면서 빠뜨린 것들도 있고 업데이트 한 것들도 있습니다.

 

너무 예전에 올렸던 것들이라.. 기억도 떠올릴 겸 한번 보시고 와주세요~

 

이 슬픈 이야기를 끝마칠까 말까 엄청 고민되었는데, 여튼 힘내서 이 달 안으로 마쳐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