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결이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집 근처 냇가에 푸른 도포를 입고 걷고 있는 그의 모습이 그림 같았다. 조금이라도 그의 모습을 눈에 담고 싶었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했다.
"설아, 아까 의원 나리를 만났어. 그런데 그자가 범상치 않은 자인 것 같아."
"알아, 그가 네가 도력을 지닌 자라는 것을 느낀 것 같아. 이제 이 곳은 너에게 위험해."
나의 말에 결이의 얼굴에 긴장감이 어렸다. 나는 그에게 다른 소식도 바로 알려야했다.
"그리고 북서쪽 끝에서 회색 아기 늑대 두 마리가 흰색 여우 무리와 함께 있는 것을 보았어. 아이들이 지금은 혼현의 모습으로 다니는 것이 더 편해서 늑대의 모습으로 다니는 것 같아. 네 아이들이 아니었을까 싶어."
"정말이야..?"
결이의 눈빛이 일렁였다.
"결아, 네가 떠냐야 할 때가 왔어."
나는 결이의 두 손을 붙잡았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것 같았지만, 결이가 흔들리는 것이 싫어 꾹 참아야만 했다.
"바로 북서쪽 숲으로 떠나. 나는 신전에 들렸다가 바로 뒷따라 갈께. 난 말이야, 신전을 언젠간 떠나고 싶었어. 인간들의 삶도 이젠 버리고 싶어. 더이상 이 곳에 살고 싶지 않아."
"설아..."
나의 손을 맞잡은 결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너와 했던 약속은 언제나 유효해. 비록 나의 마을은 없어졌지만, 네가 갈 곳이 없어진다면 나는 언제든 너를 받아들일께. 늑대의 맹세는 절대 없어지지 않아."
나는 결(潔)이와 다시 만날 것을 물가에서 약속했다.
...
냇가에서 결이가 떠나는 것을 본 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신전으로 갈 채비를 했다. 붉은 당의, 즉 무녀들의 옷을 입었다. 나는 신력을 타고난 내가 싫었다. 그래서 무녀와 관련된 붉은색 당의며 당주와 같은 예복들을 갖춰 입는 것도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오늘이라도 최고 무녀를 만나뵈라는 말이 있었으니 가서 만나 뵙고 와야할 것 같았다. 그리고 저녁 때 떠나면 될 것 같았다. 가면 당장 복귀하라고 하겠지만, 정식으로 신전으로 복귀하는 날을 내일로 하면 된다.
그동안 신력을 숨기기 위해 많은 공부를 해왔다. 금서들에 손을 대고 많은 것들을 습득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궁금증도 일렀다. 신력은 집안 내력과 같은 것이어서 누군가가 물려받아 계속 타고 내려오는 것이었다. 보통 모계를 따라 많이 내려온다하는데 나는 아버지께 나의 어머니에 대해 들은 것이 없었다. 내가 아기 때 어머니를 잃었다는 것 밖에는 몰랐다.
무녀들이 결혼하는 것은 금지되어있으니까, 보통 신력은 직접적인 모녀관계가 아닌 조카와 같은 사이에 물려받아진다. 예를 들어 이모와 조카 사이 말이다. 그런데 금서를 보다가 알게 된 것은, 무녀가 아이를 낳을 경우 그 힘이 아이에게 모두 내려가서 무녀였던 사람이 시름시름 앓다 일찍 생을 마감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런 경우 아이의 신력은 어머나보다 몇 백로 강해질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혹시 나의 어머니는 무녀 출신은 아니었을까..? 어머니가 신전에서 쫒겨난 무녀였다면... 그렇다면 어릴 때의 가난도, 어머니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태도도 전부 말이 된다. 하지만 확인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다 잃은 마당에 누가 확인해주랴. 또한 그것을 분명히 안다 한들, 무녀로서의 자질 따위 내가 원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나의 신력 뒤에 어미의 희생 따위가 있었다는 것은 모르는 편이 나을 듯 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옷을 입는데 인기척이 들렸다. 이상했다. 아직 시종들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결이도 떠나보냈는데, 누가 왔단 말인가...
나는 문을 열어 밖을 툇마루 너머를 내다보았다.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기우인가. 나는 나의 품계를 뜻하는 보라색 허리띠를 마저 묶은 뒤 신전으로의 채비를 마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