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전을 가는 것은 늘 부담스러웠다. 늘 정숙하고 조용히 해야하는 분위기. 어린 시절에야 시종장의 도움으로 들판을 뛰어다니며 놀기라도 했지만, 최고 무녀의 눈에 띈 10대 시절부터는 가벼운 외출도 쉬이 허락되지 않았다. 평범한 10대를 보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나도 누군가처럼 즐거운 시절을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이제는 정숙하고 꺠끗한 모습을 유지해야하는 무녀의 모습에 맞춰져서, 더이상 어린 시절의 호기심많고 생기 넘치던 나의 본 모습은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신전의 대문을 지나, 기이하게 꺾여서 자라난 소나무들이 줄지어 있고, 그 아래로 가지런히 하얀 모래가 깔린 정원을 빠른 종종 걸음으로 지나갔다. 최고 무녀가 있는 신전의 중앙부로 향하는 이 정원은 독특한 향이 피워져있어서, 신전을 찾아오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세계에 들어오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하얀 모래는 잡풀이 자라지 못하도록 깔아둔 것인데, 마치 하얀 종이 위에 나무만 있는 것 같은 모습이어서, 이 곳이 더욱더 고요하고 정갈하게 보이도록 했다. 내가 들어가자 정원의 모래를 정리하던 시종들이 뒷걸음 치며 물러났다. 정원을 지나 신전 중앙부에 들어서니 저 멀리 붉은 휘장이 처진 단상에 반쯤 누워있는 그녀가 보였다.
"내가 왔다고 고해주게."
나는 옷 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문 앞에 있던 시종장에게 청하였다.
"최고 무녀님, 설이 무녀님이 오셨습니다. 들어가시라 이를까요?"
"그리하여라."
쉬어빠진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종관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다시 종종 걸음으로 앞으로 걸어갔다. 이제 노인이 된 최고무녀는 자신의 후계를 정해야하지만, 자신의 권력과 정치놀음을 즐길 뿐 후계를 정하지 않고 있었다. 어쩌려는 것일까 싶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나는 오늘 저녁 때 떠날 것이니까..
"설아, 몸은 좀 괜찮은 것이냐?"
"예, 무녀님."
두 손을 모은 채로 공손히 대답했다. 무녀는 더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을 했다. 나는 단상 위로 올라가, 누워있는 그녀의 바로 옆에 섰다.
"이제 그만 사가를 정리하고 신전에 완전히 들어오너라."
"하오나, 아직 저는 완전히 회복이 덜.."
그녀는 내 손을 붙잡으며 말을 가로막았다.. 주름이 가득한 손의 감촉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나는 너를 나의 후계로 정하려 하네..."
"네? 저는 부족하여 후계가..."
"설아, 나는 이미 알고 있어. 네가 신력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누구보다 강한 신력을 가진 자가 내 후계가 되길 바라."
"저, 저는 바라지 않습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그만 최고 무녀의 손을 뿌리쳤다. 안 된다. 후계라니..!!! 그녀는 내가 손을 뿌리쳤음에도 예상했다는 듯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건가?"
"당치도 않습니다. 다만 저는 그 자리를 원하지 않습니다."
노인은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고는 상위에 있던 찻잔을 들어 입술을 적시더니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사가에 사내가 있다지. 그 자가 문제인가?"
" ..."
"내가 나선다면, 그런 자를 없애는 것 쯤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거 잘 알지 않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누가 말했지? 의원인가.. 전쟁 중이어서 집이 비어있었기에, 결이의 존재를 아는 자는 의원밖에는 없었다.
"나는 자네가 아무데도 갈 곳이 없기에 맘에 들어. 자네에게는 신전 밖에 없질 않은가.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다섯살 난 아이를 여지껏 누가 자네를 먹여주고 키워주었는지 잘 생각해보게. 또 시종으로 빌어먹었어야 할 그 아이를 무녀로 택해서 여기까지 올려준 사람이 누구지?"
"최고 무녀님, 하지만 저는 그 자리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표정은 단호했다.
"하루를 주지. 사가도, 사내도 정리하고 오게."
단상에서 일어선 그녀는 망연자실한 나를 보고는 더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더이상 그 곳에 있을 수가 없어서 나왔다. 일단 사가에 돌아가야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결이는 떠나는 것을 봤으니까 괜찮을 꺼야..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하며 나와야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