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눈물을 참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하루라.. 그 하루가 나에게는 남아있는 목숨 같았다. 결이에게 가면, 행여라도 추격자가 붙으면 어떻게 하지? 모든 상황이 저주스러웠다. 어쩌면 나를 감시하는 자가 최고 무녀가 나를 후계로 생각했을 때부터 이미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늘 성실하게 무녀 생활을 해왔으니까, 나에게서 딱히 오점을 찾지는 못 했을 것이다. 전쟁이 일어났던 시기를 제외하면 말이다. 하지만 후계자가 되는 것은 내가 원하던 길이 아니었다.
끝내고 싶었다. 다 없애버리고 싶었다. 집에 가까워지자 결국 나는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지나가버린 세월에 대한 원망이 차올랐다. 나를 버리고 간 아버지에 대한 원망, 누군지도 모르는 어머니에 대한 원망. 사랑으로 감싸주기보다는, 나를 협박하던 최고 무녀에 대한 원망. 내가 좋아하던 늑대족들을 향해 칼을 들이민 백성들에 대한 원망. 전쟁이 일어난 것에 대한 원망.
지금 이 순간 들판에서 뛰어놀던 어린 시절이 너무 그리웠다. 아마도 사라져버린 줄 알았던 들판을 뛰어놀던 소녀의 마음은 아직도 마음 속에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늘 이 곳이 싫으면 늑대족 마을로 가면 된다고 생각해왔었다. 그것이 나에게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곳은 사라졌다. 인간이 망가뜨려버렸다. 게다가 최고 무녀가 결이의 존재를 알고 있는 지금, 만약 나 때문에 결이가 위험해지기라도 한다면? 그런 결말은 나는 절대 원하지 않았다.
...
집에 왔을 때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마당에는 병사들인 듯한 발자국들이 가득했다. 얼마 있지도 않은 세간 살림들이 다 쏟아져 나와 있었다. 집 안을 누군가 샅샅히 뒤진듯 가구들은 엎어져있고, 그 안에 있던 물건들이 쏟아져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거기, 누가 있느냐!!"
소리쳤다. 아무런 대답 없는 적막이 흘렀다. 집안을 뒤진 누군가는 다 가버린 후였나보았다. 시종들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에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안 그래도 엉망이었던 기분이 몹시도 엉망이 되었다. 나의 사가(私家)를 정리하려고 하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정리되는 건가. 헛웃음이 나왔다. 이런 결말을 원한 것은 아니었는데... 기분이 비참했다. 인생이란 원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긴 해도 내 삶에 내가 원한 것이 하나도 없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원망을 넘어서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 화는 어릴 때부터 꾹꾹 참아오던 나의 탄생부터 이어져온 분노였다. 그래서 그만, 주문(呪文)을 읍조리게 되었다.
"저주해."
그러면 안되었는데... 그 주문이 저절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저주한다. 이 땅을..."
이제 혼자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원망의 불씨가, 이제는 엉망 진창이 된 내 집의 모습 때문에 큰 불로 지펴졌다. 나는 금서에서 보았던 저주의 주문이 생각났다. 그것은 극단적인 희생이 필요한 주문. 늑대족들의 숲과 닿아있는 이 곳, 이 곳에 저주의 벽을 세운다면 더이상 나는 이 땅에 속한 사람이 아니겠지. 나의 생각이 극단적으로 흘러갔다. 모든 것을 망가뜨리고 싶었다.
"저주한다. 이 땅을. 나의 온 마음과 사력을 다해서."
저녁이 되어 푸르스름하게 물들어가던 하늘에 검붉은 기운이 치솟기 시작했다.
"네 뭐하는 짓이냐!!!!!"
풀숲에 숨어있던 자들이 소리를 지르며 쏟아져나왔다. 역시 감시자들이 있었다. 검붉은 기운을 본 그들은 당황하여 어영부영하기 시작했고, 그 사이에 의원나리가 보였다.
저 의원 놈이 그 범인이었구나..! 네가 결이를 최고 무녀에게 말하고, 내 집도 엉망으로 뒤졌겠다. 결코 가만 두지 않겠다.
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붉은 기운을 기울여 의원에게 쏘았다. 그는 검붉은 기운에 휘말려 끌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노인은 기운에 끌려들어가지 않으려고 주변 병사들을 붙잡았지만, 역부족이었다. 금기시된 이 주술은 사람의 목숨이 들어갈수록 점점 크고 강력해진다. 나는 이 곳에 있는 감시자들의 목숨을, 혹은 나의 목숨을 다 소진해서라도 저주의 벽을 단단하게 세울 생각이었다.
그 떄였다.
"설아..!!"
나의 눈 앞에 결이가 나타났다. 깜짝 놀란 결이가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검붉은 기운 때문에 일어난 작은 폭풍우에 결이의 푸른 도포 자락이 흩날렸다. 결이가 어떻게 이 곳에...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안돼, 결아! 다가오지마..!!!"
나는 절박하게 소리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