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악연의 그늘
by。빨강망토
역이지 말았어야 했다.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와. 온 몸을 감싸던 불길한 직감은 빗나가질 않는다.
그와 마주한 순간 내내 나를 감싼 그 공기는 마치 빠져나올 수 없는 깊고 질은 검은색 웅덩이 같았다.
늪이라기엔 매혹적이지만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호수. 아주 새까만 물로 가득 찬 호수를 난 제 발로 걸어들어간 셈이었다.
내가 하는 말이 좀 재수 없어 보일지 모르겠지만 난 무용계에서 꽤나 촉망받는 인재였다.
현대무용을 하면서 여러 콩쿠르에서 입상했고, 엄청나게 공부를 잘한 건 아니었지만 성적 또한 늘 상위권을 유지했기 때문에 준수한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누구나 선망하는 예술고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입학식을 시작하기 전에 마주친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의 첫인상은 딱히 좋지 않았다. 왜냐하면 교복은 방금이라도 싸우고 온 것같이 다 풀어헤쳐져 있었으며, 입술 한 쪽에서는 피가 고여 굳어버린 자국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얼떨결에 눈이 마주친 그에게 내가 건넨 첫 마디는 최악이었다.
"괜찮으세요...?"
"네. 퍽- 괜찮은 것 같네요."
사실 선배인 것 같아서 그냥 목례만 할 생각이었는데 머릿속의 말을 입 밖으로 꺼내버린 것이었다.
누가 봐도 얼굴에 '나 싸우고 옴. 건들면 뒤짐'이라고 적혀있는데 냅다 그런 말을 해버린 것이다.
"어...! 죄송합니다."
난 다급히 그에게 사과했지만 그는 내 사과를 무시한 채 나를 그대로 지나쳐갔다.
"(중얼) 이딴 게 나랑 같은 수준이라니. 뭣 같네, 진짜."
그는 짜증 난다는 듯 대놓고 중얼거렸다. 물론 난 그 말까지 다 들었지만 너무 당황해서 따라갈 생각조차 못 했다.
"아 진짜, 이게 다 그놈의 얼굴 때문이야."
짜증 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뭣 같은 상황에서도 그놈의 얼굴은 인간의 범주에 있는 카탈로그가 아니었으니까.
그가 짜증 나고 혐오스러운 그 더러운 말들을 입으로 뱉어내는 그 순간에도 그 얼굴 때문에 무슨 말인지 분간이 어렵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정말 다행스럽게도 난 그 애에게 첫눈에 반한 것은 아니었다. 왜 사람이란 누구나 한 번쯤 그런 직감이 있지 않은가. 진짜 이 길로 가다간 함몰할 선박을 타는 일과 같다는걸.
그는 내게 그런 느낌을 주는 사람이였다. 눈빛은 독사처럼 서서히 목을 조여오는 듯한 느낌을 주었으며, 손은 온갖 가시로 가득한 넝쿨을, 그 애의 입술은 겉만 반지르르한 금단의 열매와 같았다.
그런 수많은 위험신호들이 그를 감싸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의 주변은 늘 사람들로 가득해 보였다.
나의 직감이 틀렸을 리는 없다. 온몸이 말하고 있다. 그는 위험한 사람이라고. 다른 사람들도 이를 알까?
다른 사람들이 그의 진실을 발견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이 많은 불안감을 덮는 그의 매혹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저 단순히 얼굴만이 아니다. 그가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는
그래, 그 누구라도 그를 사랑하게 되었을거다. 그에게 자신의 모든 걸을 바칠 수밖에 없었을 거다.
비유하자면 그의 분위기 마치 환생한 *이사도라 던컨의 몸짓과 같았다.
정신을 차린 후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자리를 떠나고 나 혼자 덩그러니 서 있었다.
"아 큰일났다! 5분 남았잖아..!"
급하게 강당으로 이동하려는 데 무언가 발에 걸려 고개를 숙여보니 명찰이 떨어져 있었다. 그가 자리를 떠나고 난 뒤 바닥에 떨어진 것인 듯했다.
"...현대무용학부, 유...강민?"
그의 이름이었다.
*이사도라 던컨: 현대 무용의 창시자이며 최고의 무용수라 평가받는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