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너 사용법

미친 너 사용법 _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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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너 사용법









52화









다음 날 눈을 떴는데 몸이 일어나지질 않았다.
온몸이 뜨거웠다. 이불에 살짝만 스쳐도 스친 곳이 아렸다.
몸도 마음도 열병에 걸려 거의 정신을 잃고 하루종일 앓아누워있었다.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김태형만 생각하면 눈에서 
눈물이 났다. 근데 김태형 생각을 하루종일 했다.
말 그대로 하루종일 울었다.




그래서 난 진짜 부엌까지 거의 기다시피 해가서 냉장고 문을 열어 물을 마시고 식어빠진 빵 쪼가리도 억지로 입에 집어 넣고 
삼켰다. 왜나면 나 내일 김태형 공연 메이크업 해주러 가야해서. 쓰러지지 않으려면 뭐라도 속에 넣어둬야 할 것 같아서 그랬다. 아까 석진오빠한테서 톡이 왔다.




[이여주... 너 도대체 왜 그러냐...]
[지영이 며칠 부모님 댁 가있겠다잖아]


다행이었다.
지금 내 상태를 언니가 봐버린다면 내일 김태형 공연 메이크업
도 하러 갈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진짜 미안해 오빠...)
(나 진짜 언니한테 가서 빌고 용서 구할게)
(조금만 기다려주라...)



[...누구세요]
[이여주 아닌 것 같은데]



(...)
(나 맞아... 진짜 그럴테니까 오빠 걱정하지마)
(글구 나 내일 오빠들 메이크업 해주기로 했잖아)



[ㅇㅇ]
[해주게?]
[너 태형이랑도 싸웠잖아]
[아 진짜 이여주 무슨]
[쌈닭도 아니고 ㅡㅡ]



(ㅠㅜ)
(그것도 미안해)
(오빠한테 사과할게)
(그니까 나 내일 가도 되지?)



[난 상관없는데]
[근데 태형이가 너한테 안받지 않을까...]



(그럼 내가 지금 오빠한테 사과하구)
(괜찮다고 하면 갈게)



[그래]
[근데 진짜 누구세요...?]



이까지만 하고 난 다시 부엌으로 기어갔다.
그리고 난 지금 차가운 물수건을 한쪽 볼 위에 올리고
옆으로 누워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김태형한테 보낼 톡을 쳤다.





(오빠..)
(내가 다 잘못했어)
(진짜 잘못했어)
(나 맘대로 안하고 반말도 안하고 질리게도 안할게)
(오빠)
(...)




[...]
[왜 이래]



(진짜 미안해 잘못했어)
(내가 내일 메이크업 해줄게)
(응?)
(그래도 되지?)



[맘대로 해]



(ㅇ응 그러ㅁ 내일 보ㅏ 오빻)
(고마오ㅓ!!)



잃어가는 정신줄을 붙잡고 오빠랑 톡을 끝낸 나는 바로 기절했다.




그리고 다시 깼을땐 짜증나게도 하나도 달라진게 없었다.
똑같이 온몸이 아리고 뜨거웠다.
그래서 혼자 밤새 식은땀을 흘리며 생각했다.
내가 그 날 오빠한테 그렇게 막말만 하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지금 내 옆엔 오빠가 있어줬을까.
너무 후회가 됐다.
오빠한테 뭘 바래서가 아니라,
오빠 마음을 돌려보려고가 아니라 그냥 난 단지
오빠가 보고싶을 뿐이었다.
너무 보고싶어서 안보면 죽을 것만 같아서,
볼 기회를 절대로 놓칠 수가 없었다. 오빠를 못봐서 이렇게
아픈 것 같았다. 오빠를 보면 이 열병이 다 나을 것만 같았다.
빨리 보고 싶어서 이 밤이 너무 길었다.
그래서 너무 아팠다.





잠을 잔 건지 꿈을 꾼 건지 오빠 생각을 하느라 밤을 샌 건지
알 수가 없을 만큼 혼미한 정신으로 혼자 끙끙 앓다보니
날이 밝아있었다.
머리가 깨질 것 처럼 아프고 온 몸이 뜨거웠지만 곧 김태형이
내 눈 앞에 있을거란 일념 하나만으로 버텼다.
샤워하다 어지럽고 갑자기 앞이 안보여서 몇 번이나 주저앉고
손이 떨려서 아이라인을 몇 번을 다시 그렸는지 모르겠지만
괜찮아 보이고 싶어서 그래 보일 만큼 화장으로 아픈 날 가렸다. 메이크업 박스를 들고 있을 힘이 없어서 택시를 탔는데
안나던 멀미까지 나서 식은땀이 줄줄 나고 좀 힘겨웠다.
먹은 게 없어서인지 헛구역질을 했다.
오빠 얼굴을 보면 나을거니까 그래도 괜찮았다.





도착해서 화장실로 향해 짜증나게 이마에서 계속 삐질삐질
나는 식은 땀을 닦고 화장도 다시 고쳤다.
자꾸 땀이 나고 더워서 아예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서 팔에
들고있고 안에 입은 니트의 소매를 팔꿈치까지 올려버렸다.
이제 좀 땀이 식는 것 같아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대기실 문을 열었다.





오빠들이 보였다.
김태형도 보였다.
분명 이틀 전에 봤었는데 이상하고 처음 보는 것처럼 설레기
까지 했다. 오빠가 남자로 보였다.
이미 늦었지만.




"여주 왔어~?"


기영오빠가 날 반기며 다가왔다.



"웅 오빠 오랜만이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아프지 않은 척 밝을 척을 하고 말았다.



"너는 볼때마다 왜 이렇게 점점 작아지냐... 너 그러다
소멸하겠다. 너 밥 못 먹고 다녀?"

"아. 뭐래... 그런 거 아니야."

"아 그건 그렇고 너 이리 와봐."

"... 응?"



오빠가 내 손에 들린 메이크업 박스를 뺏어들더니 내 팔을
잡고 끌었다.



"야, 너 팔이 왜이렇게 뜨거워?"


오빠가 대기실 한 구석에 마련되어 있는 소파 앞에서 끌던 내
팔을 놓으며 말했다. 이씨... 김태형이 소파에 앉아서
보고 있는데...




"아 더워서 그래. 급하게 온다고. 더워서 나 옷두 벗고 왔잖아.
근데 왜~"


내가 소파 끝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솔직히 서있기도 좀 힘들었다.
최대한 김태형과 멀리 떨어져 앉았다.



"너 박지영이랑 별거 중이라매~?"

"... 오늘 별거 끝낼거야. 걱정 마."

"하핳. 걱정은 안했는데? 왜 싸웠어?"

"..."



누가 이 오빠한테 말 안해줬어.. ?
하 눈치 없는거 왜 이렇게 여전한데...
내가 석진오빠한테 여러 의미를 내포한 눈빛을 열심히 쏘아댔지만, 석진오빠가 입을 삐죽이며 어깨를 한 번 들었다 내렸다.
알아서 하란 뜻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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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때문에."


근데 태형오빠가 말했다.



"너? 너 왜?"

"내가 여주 좋아하는거 박지영한테 말 안해줘서."

"어...? 헐, 뭐...?"




아... 이거 진짜 어떡하지.
눈치 보여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 그래도 별 수 있나 그냥 조용히 앉아있었다.



"이거 진짜 뭔 소리냐... 넌 다영이랑 사귄다매~
넌 정국이랑 좋아한다매~!!"



기영오빠가 태형오빠랑 날 차례로 가리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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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움직이는 거니까 형."


석진오빠가 말했다.


"사랑은 돌아오는 거 아니고...?"


그 뒤를 이은 기영오빠가 말했다.
돌아오는거라... 그랬으면 좋겠네...





"오빠... 메이크업 하러 가자... 지금 해주면 되는거지.."


내가 팔을 뻗어 기영오빠 옷자락을 잡아 당기며 말했다.


"어. 아 뭐야 진짜 니네~!! 그럼 이미 쫑난 거야 니네 둘은??
그래서 너 다영이랑 사귀는거고?"

기영오빠가 소파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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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

한글잔데... 딱 어 한글자인건데...
김태형의 입에서 나온 단 한 글자가 총알이 돼서 내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