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아!'
투둑,툭...툭,
"아이 진짜...창고를 참...정리해야되는데, 왜이리 귀찮은거냐."
며칠째 미루는 중이다. 창고에 딱히...없다. 작년에 샀던 의자가 다리가 부러져서 냅둔거랑, 오래써서 그런지 조금씩 파인 책상 하나. 그리고 다른건 박스들이다.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도 까먹었다 이젠. 목이 늘어났거나 밑단이 조금 찢어져서 버릴 옷들을 담아둔 박스도 있던 것 같다. 근데, 이놈의 창고는 치우려고 들어오면 왜 나가고싶단 생각이 먼저 드는지...정말, 보기만 해도 귀찮아서 얼른 소파에 눕고싶은 심정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으읏...챠! 이젠 A4용지 여기두면 안되겠다. 쌓아둔게 자꾸만 떨어지네. 이러다 박스에 깔려 죽겠구만."
그럼...여긴 언제 치우고? 싸게 팔아서 1박스만 주문했는데 나중에 보니 10단위로 계산되던거라...그래서 아직도 8박스나 남아있다. 두박스는 어쨌냐고? 한박스는 친구한테 싸게 팔아넘겼고, 하나는 쓰는중이지. 아, 창고정리 하려고 고무장갑 낀건데...이미 내 손은 벗는중이네.
"하...그나저나 조해령, 연애는 언제 하냐. 벌써 스물여섯인데?"
연애는 무슨, 그렇지. 난 결혼을 빨리 하고싶었단 말이야. 이 넓은 세상에 내 운명의 상대도 없겠어, 싶었는데...진짜 없나보다. 어떻게 고2때 연애해보고 몇년째 남친이 없냐. 뭐...그래도 모솔만 아니라면 됬다. 안그래도 슬픈데 말이야. 내 나이 스물여섯은 그래도 결혼을 꿈꿀 나이라고. 적어도 나한테는 꽃피는 시절은 지났어. 서른이 넘을때까지 이 모양이면 꽃은 이미 꺾인거지 뭐. 허리도 굽었겠다, 할미꽃이라 해야하냐.
***
"어, 해령쌤."
"? 오..."
"왜 오...에요?"
"승관쌤 오늘 좀 일찍 나왔네요.."
"좀이라뇨, 원래 이시간에 나오는데 학교 벤치에서 자고 오는거에요."
"...거짓말, 맨날 넥타이도 손에 들고 허겁지겁 오시면서도 그런 말이 나오세요?"
"아...뭘, 넥타이 까먹어서 집에 갔다가온거에요."
"안졸려요? 고등학교 빡세니까...애들도 예민하고."
"흠..적어도 아직 팔팔한 고2는 빼고요?"
"그것들 또 뛰고있겠죠, 어제도 윗층에서 땅이 부서질듯이 뛰는 것 같던데."
"에이, 애들이 나이가 몇인데..."
"제 자리에서 일해보세요, 그런 소리가 나오나. 한시간 지나자마자 저 찾아오실걸요, 바꿔달라고."
현재 세봉고에서 2,3학년 국어담당으로 근무중이다. 승관쌤은 역사 담당...애들이 어찌나 승관쌤을 좋아하던지. 내 담당인 2학년 4반도 나보가 승관쌤을 더 환호한다. 예능부심이 좀 있는 쌤이긴 하다. 그래도 너희반 담임은 난데..?
***
"자- 그래. 종쳤네. 배고프지, 밥먹으러가라, 빨리 빨리 안가면 늦게먹는거 알지?"
아이들은 종이 치자마자 나한테 '수고하셨습니다.' 이렇게 한마디 하곤, 서롤 밀치면서도 밀쳐지면서도 밥을 먹으러가기 바빴다. 저 나이때는 한참 배고플 나이니까.
"쌤,"
"아!"
"놀랐어요?"
"하...이 장신, 쌤 심장 약한거 몰라?"
"금시초문."
"그나저나, 넌 밥 안먹으러 가?"
"쌤이랑 같이 먹으면 안되요?"
"쌤은 아싸야, 그러니까 석민이 넌 친구들한테나 가. 쟤네 안보여? 문밖에서 너 기다리는거?"
"야! 먼저 가!"
"야, 먼저 가, 그게 뭐냐?"
녀석들, 배가 고팠던건지 안나오는 이석민이 짜증났던건지...이석민이 한마디를 내뱉은 순간 빛처럼 빠른 속도로 급식실을 향래 달려간다. 얜...서운하지도 않나보다.
"아...괜찮아요, 전 쌤이랑 먹으면 되니까요."
"난 너랑 같이 못먹거든? 학교를 1년이나 거 다녔으면 그것쯤은 알아야지."
"내가 2학년인게 죄에요?"
"그러게, 선생님인게 죄야?"
"쌤 직장이 여긴걸 내가 어떻게해요."
"내 말이, 너가 고2인걸 내가 어떡하라고."
"아...딱히 할 말이 없네. 안녕히 계세요."
"뭐야...여태 나 잡아놓고..나는 밥 먹지말라고..?"
***
또로롱-또로롱동동-또롱동-
학교가 끝났음을 알리는 학교 종이 울리고 아이들은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뭐 도착지는 또 PC방이겠지만. 나도 퇴근하고 없는 힘 다쓰면서 겨우 터덜터덜 걸어가는곳이 집인데. 그만큼 쉴틈없이 일해야한다는거다.
"하...나도 기댈곳이 필요한데 말이야..."
그러게, 그런데 남자든 여자든 널리고 깔린 이 세상에 왜 내 님은 보이지 않는걸까. 마치 전부다 짜고치는 것 처럼.
푹-,
"헤엑?!"
"어, 놀랐어요?"
뒤를 돌아보니 이석민이다.
"야 이...너 집에 안가?"
"음..쌤이랑 같이 갈래요."
"어우 별일이냐. 다른애들은 역사나 수학 한다던데. 국어에 흥미가 없나봐."
"왜요?"
"그야 모르지? 근데 넌 국어가 좋나봐? 나 엄청 좋아하네."
"그야 쌤이 좋으니까요."
"으응- 그래 석민아, 그 마음 변하지 않았으면 한다. 애들이 한두명씩 문학계를 빠져나가는거 너도 알잖아."
"쌤이 좋아서 그러는건데."
"알아."
"진짜로. 여자로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