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일 때문에 난 지금 엄청 멘붕상태이다. 쌤은 어제 치킨먹은게 기억도 안나는지, 청소하고 그냥 갔냐고 오늘 사주겠다고 하신다. 내가 됬다고 먹었다고 계속 말해도 쌤은 아니라면서 내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다니신다.
"으...미치겠다..."
"뭐야, 또 짝사랑이야?"
"아니거든?"
"그럼 뭐야. 이젠 호감이 안 가?"
"닥쳐라...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니까,"
권순영이 또 내게 시비를턴다. 내가 국쌤 좋아하는걸 제일 먼저 알아버린 놈이다. 상대가 누군진 말 안해도 이놈의 입이 방정이지, 진작에 내가 틀어막았어야 한다. 첫인사도 끝인사도 전부 '잘해~' 다. 뭘 잘해, 너처럼 대쉬하다간 강전 당할걸.
"왜 욕해 석민아..."
"그 얘기 좀 그만하면 안되냐?"
"어? 얼굴이 왜 붉어. 잘 익었네 아주."
"ㄴ,농으로 하지마라."
"농 아닌데, 진짜 개 붉어. 시뻘건...명란젓 같애."
왜 빨개지는거냐, 이석민. 얼굴이 뜨거워 지는 게 다 느껴진다. 세상 까칠하지만 세상 다정한 국쌤하고...키스를 했다고? 내 말이, 나도 국쌤이 고2면 좋겠다니까. 그럼 바로 딱! 사귈수 있는데 말이야.
***
"아...미치겠다..우윽..."
드르륵,
"..어디 아파요?"
"아...아픈건 아니고,"
옆자리에서 일하는 지훈쌤이 물었다. 고개만 빼꼼 내밀곤 세상 귀찮고 피곤한 표정으로 말이다.
"머리가 좀 아파서요."
"그럼 아픈거 맞네."
"네?"
"안아프다면서요."
"아...그냥 약간의 두통. 술 마신 기억도 없는데 술먹고 해장 안해서 머리 아픈 느낌..?"
"아,..."
"그냥 기억이 없나보죠, 일 마저 하세요. 오늘 애들 음악 수행평가땜에 바쁜 것 같은데."
지훈쌤이 그 유명한 요정쌤이다. 보니까 은근 인기는 많다. 여자애들은 뭐가 좋은지 음악시간만 되면 난리를 치고, 평가 볼 땐 수줍어하듯 개미 목소리처럼 작은 소리로 부른다고 한다. 뭘 어쩌겠다고, 너희보다 10살이나 많은 쌤이야.
요정? 생각보다 까칠하고 자기 취향 확고한 사람이라 다루기 어려워서 요정이라 하기 뭐하지만, 확실히 키가 164cm라서 귀엽긴하다. 나보다도...작다. 일한지 3년정도 됬지만, 이 쌤 키를 물어보는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첫날 날 불러세우더니 자기 키를 말해주곤 가버렸다. 쿨하게. 놀리지말라고 냅다 한마디 던지곤...
***
"으으으응- 시험은 잘보고 그런 말 하나봐--?"
"겁나 잘 봤으니까 대답 해줘요, 저 어때요?"
"응, 석민이 엄청 착해서 여자애들이 다 뻑갈 것 같아. 잘생겼고 말 닮았고, 그래."
"근데 쌤은 왜 뻑 안와요?"
"그거야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니까?"
"뭔 상관인지, 물어봐도 되요?"
"나보고 이 학교에서 퇴직당하라고? 나 자존심 센거 몰라? 나가도 내 발로 나가겠다는 의지가 있단다."
"그럼 나랑 사귀고 나가요!"
"너가 전기세, 생활비 내줄거 아니면 그런 말 꺼내지 마."
"나빴네요 정말."
"아니거든- 무슨 드라마도 아니고 말이야.."
"쌤! 같이 가요!"
"뭐야?"
"뭐긴요, 쌤 끝날때까지 기다렸죠."
"왜 기다려, 날."
"말 했잖아요. 난 진심이라고. 처음부터 끝까지."
너가 그렇게 말 해도 난 호감 안가거든?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심각하게 말하는 이석민이다. 날 그런 눈으로 보면, 상당히 부담스러운데. 18살이 26이랑 연애라니, 조금...아니 많이 드라마같잖아. 이건 그냥 로맨스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스토리라고. 괜히 날 소설속으로 끌어들이지 않았음 좋겠는데.
이러다가 진짜로 좋아질 것 같으니까.
"쌤,"
"어?"
가로등이 비춘 이석민의 갈색빛 머리카락이 예뻐보였다. 갈색이 이리 잘 어울리는 사람은...처음 봤다고 할 정도로.
"선생이랑 학생의 사랑은, 드라마에요?"
"음..어. 완전 그건 멜로영화나 소설작 아닌가?"
"그래요? 그럼 우리 소설 한 편 씁시다."
"뭐?"
알아들을 수 없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이석민이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 난 당황스러워서 어떡해야할지 몰랐고, 이석민은 손으로 내 얼굴을 감쌌다. 이렇겐 안된다 싶어서 이석민의 어깨를 밀었다. 근데, 안밀려진다. 이 새끼 이럴려고 체육 열심히 했냐. 숨이 조금씩 막혀와서 이석민의 어깨를 세번정도 팡팡 쳤다. 그제서야 입을 떼는 이석민이다.
"파아...하...미쳤냐?!"
"난 개진지한데."
"뭐 하는건데, 지금,..!"
"내가 말했잖아요 쌤, 소설 한 편 쓰자고."
"뭐..?"
"그냥, 드라마틱하게 가자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