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은 창작으로부터 나온 허위 사실임을 알립니다. *
쉬는 시간에는 다행히 선배가 찾아오지 않아서 그런가 하교 시간에는 우리 반 앞에 떡하니 서서 핸드폰을 하고 있는 승철 선배가 보였다. 그 옆에는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어있는 김민규가 보였고 나를 보자마자 나에게로 달려왔다.
" 쟤 진짜 뭐냐? "
" 내가 어떻게 알겠니.. "
" 어, 여주야! "
해맑게 손을 흔드는 승철 선배를 한번 쳐다보고 그대로 뒤를 돌아 학교를 빠져나왔다. 등교를 할 때처럼 내 양옆에 서있는 그들에 머리가 지끈거렸고 설마 이 짓을 내일도 해야 하는 건 아닌가 싶다.
집 앞에 도착하고 곧바로 집 안으로 가려고 하자 당연하게 김민규는 내 옆으로 따라왔다. 나는 워낙 익숙하여 그러려니 하였지만 뒤에서 승철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김민규는 왜 들어가? "
" .. 저랑 할 일이 있어서. "
" ... 알겠어. 연락하면 답장해 줘, 기다릴게. "
선배는 김민규의 팔목을 잡았고 내가 그 모습을 내려다보자 어정쩡하게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나는 대답을 생략한 뒤 집으로 들어왔고 가방을 대충 내팽개치고서 소파에 드러누웠다.
" 야, 최승철 꽤 진심이네. "
" 너까지 그러지 마라- "
" .. 좀 설레냐? "
"지랄하네. 됐고 집에나 가. "
" 왜, 나랑 할 일이 있다며. "
" .. 그건 그냥 한 말이지. 아 됐고 나가! "
나는 현관에 서있는 김민규에게 쿠션을 던지며 소리치자 곧 투덜거리더니 현관문 소리가 나며 집을 나갔다. 나는 한순간 고요해진 집안에 한숨을 내쉬었고 머리가 지끈거려 눈을 감았다.
그 상태로 바로 잠에 들었는지 눈을 떴을 땐 모두가 자고 있는 새벽이었고 핸드폰엔 부모님과 김민규에게서 연락이 와있었다.
엄마
- 오늘 아빠랑 집에 못 들어가니까 민규랑 있어~
김민규
- 야. 가?
- 자냐?
나는 차마 못 본 문자에 답을 하였고 김민규에겐 됐다고 문자를 남긴 뒤 옷을 갈아입었다. 화장실로 가 샤워도 하니 잠이 다 깨버린 것 같았고 곧 해도 뜰 시각인데 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다.
차피 지금 자도 늦지 않을까 싶었지만 침대에 누우니 바로 곯아떨어지는 나였다.
" 미친, "
밝은 새소리와 뜨거운 햇빛에 눈을 떠 시간을 봤을 땐 이미 등교를 하고도 한참이 지난 시간이었다.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지만 엄마의 문자를 보고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침대에 드러누웠다.
엄마
- 딸, 어디 아파? 학교 안 가고.
- 방금 민규한테 들었는데 아프다며. 선생님한테 말 해놓았으니까 쉬어.
김민규, 웬일로 이렇게 이쁜 짓을 했을까.
덕분에 오늘 하루 뒹굴뒹굴하자는 생각으로 일단 부족한 수면을 더 채웠다.
눈을 뜨니 햇빛이 가장 쨍쨍한 정오였고 슬슬 배가 고파 냉장고를 뒤적거렸다. 아무리 찾아도 마땅히 먹을 게 없어 모자를 눌러쓴 뒤 집 앞 마트로 향했다. 라면과 이것저것 먹을 것을 골라 계산한 뒤 집으로 돌아왔을 땐 눈을 의심할 수가 없었다.
" ... 선배? "
" 여주야! 아프다며, 괜찮아? "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안절부절한 뒷모습을 보고선 나는 그가 누군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승철 선배는 나에게 달려왔고 목소리가 아무리 울려도 상관없다는 듯 내 어깨를 붙잡으며 시도 때도 없이 말을 하였다.
" 일단 집에 들어가서 얘기해요. 시끄러워서, "
" 아.. 그래. "
집으로 들어오니 선배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발을 들였고 일단 소파에 앉아있으라고 한 뒤 마트에서 사 온 물건을 정리하였다. 물을 한 컵 떠 선배 앞에 놓아준 뒤 우리는 마주 보고 앉았다.
" 아프다며. 괜찮은 거 맞아? "
" 저 안 아파요. 늦잠 잔 건데 그냥 둘러댄 거예요. "
" 아... 다행이다. 난 또 많이 아픈 줄 알고, "
" 저 아픈 건 어떻게 알았어요? "
" 너네 반 갔는데 없길래 수아한테 물어봤지.. "
아 나 이수아 진짜 죽여버릴라...
나는 입이 가벼워도 워낙 가벼운 수아를 속으로 곱씹었다.
" 지금 학교 째고 온 거 아니에요? 저 괜찮으니까 이제 가세요. "
" 어차피 나한테 뭐라고 할 사람 없어, 괜찮아. "
" ... 그럼 오늘은 기회 하나로 치는 거예요? "
" 지, 지금? 이건 정식이 아니잖,! "
" 학교 말고 외부에서, 그것도 제 집에서 단둘이 보고 있잖아요. "
생각해 보니 지금이 그 기회 3번 중 한 번이 아닐까 싶어 말을 하니 선배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을 저었다. 하지만 내 말에 잠시 입을 삐쭉이더니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은근 귀엽ㄴ, 미친. 임여주 지금 뭐라니. 정신 차려 여주야.
" 그럼 우리 밖에 나갈까? "
" .. 기다려요. 금방 준비하고 나올게요. "
선배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나가자고 하였고 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그와 나의 첫 번째 데이트였다.
" 여주야! 저거는 어때? "
" 이거는? "
" 이것도 괜찮다! "
데이트는 이렇게 끌려다니는 걸까.
옷 가게라든지 어느 가게에나 모두 한 번씩 들어가서 괜찮은 것을 손으로 고르고 있었다. 나에게 보여주며 자랑을 하기도 하였고 산 것들을 죄다 나에게 주기도 하였다.
" 선배.. 이건 좀 많은데요. "
" 음... 좀 많은가..? 하하. "
" ... 그럼 이건 선배도 가져요, 두 개니까. "
아까 원 플러스 원으로 산 키링을 하나 선배에게 주었다. 색깔만 다르지 모양이나 무늬는 같아 누가 봐도 커플 템으로 보였고 선배는 고맙다며 웃음을 지었다.
선배는 꽤나 좋은 사람이다. 아마 내가 승철 선배에 대하여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이것저것 많이 하다 보니 시간은 금세 흘러 저녁이 다 되었다. 우리 집에 온 것인지 김민규에게서 연락이 오기도 하여 이제 가야겠다며 발걸음을 돌렸다.
집 앞까지 나를 데려다준 승철 선배는 들어가기 전 나를 불러 세웠다.
" 여주야. "
" 네? "
" 오늘.. 어땠어? "
" ... 생각보다 좋았어요, 편했고. "
" 다행이다 ㅎㅎ. 난 네가 싫어할 줄 알고. "
질문을 하고 대답을 기다리는 선배의 표정은 누가 봐도 불안해 보였다. 내 말에 해맑게 웃는 선배의 표정은 누구보다도 환했고 고맙다며 이제 들어가라고 하였다.
뒤를 돌아 자신의 집으로 가는 선배의 뒷모습을 한참을 빤히 쳐다보다가 마음을 먹고 선배에게 달려갔다. 그대로 선배를 껴안은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말을 내뱉었다.
" 어쩌면 저도 선배가 좋아질 수 있어요. 오늘 고마웠어요 선배. "
나도 사랑이란 걸 한번 해보려 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