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 같던 첫사랑을 다시 만났다

♥︎
둘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둘이 고등학생이었을 시절이었다. 열아홉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공부에만 목숨을 걸고 항상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고 다니는 학생이 바로 김여주였고, 어느 학교에나 한 명씩은 있을 법한 학교도 잘 안 나오고 나와도 퍼질러 잠이나 자는 한 마디로 좀 날티나는 학생이 바로 전정국이었다.
“여주야, 나 이것 좀 가르쳐주라.”
“아, 이리 줘봐.”
열아홉의 김여주는 스물아홉의 김여주와 묘하게 달랐다. 그때도 지금도 착하긴 했지만 고딩 시절에는 뭔가 가시가 돋은 듯한 느낌? 약간 차가운 느낌의 사람이었다. 김여주는 반 애들과 고루고루 친하게 지냈지만 진정한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시절 김여주에게는 친구 따위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으니까.
“다음 수업이.. 국어…?”
공부에 있어서는 똑부러지던 김여주가 처음으로 교과서를 헷갈려 집에 두고 온 날이 있었다. 바로 그날이 김여주와 전정국의 본격적인 첫 만남 되시겠다. 김여주는 다음 시간 책이 없다는 걸 알고 초조한 듯 발을 동동 구르다가 빌릴 사람이 없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 김여주한테 친구가 어디 있겠는가. 김여주는 망했다는 생각과 동시에 두 눈을 굴려 반을 쓱 훑었다.
“… 그래. 교과서를 위해서!”
교실을 훑던 김여주의 눈에 들어온 건 바로 다름아닌 맨 뒷자리에서 엎어져 자고 있는 전정국이었고 같은 반이었지만 맨날 잠이나 자 단 한 번도 말을 섞어보지 않은 친구였다. 물론 엮이면 좋을 거 없다는 김여주의 판단도 있었지만. 김여주는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 내쉰 뒤, 전정국한테 다가가 전정국의 책상을 손으로 똑똑- 두드렸다.
노크만으로는 곤히 잠든 전정국을 깨울 수 없었고 쉬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초조해진 김여주는 두 눈을 꼭 감고 전정국의 어깨에 손을 올려 두어번 흔들었다. 저기…! 김여주의 손길에 미간을 찡그리며 몸을 일으킨 전정국은 자기를 깨운 겁도 없는 사람이 누군가 싶었겠지.
“시발… 한참 잘 자고 있었는데 왜 깨우고 지랄이야.”
“깨워서 미안. 나 교과서 한 번만 빌려주라.”
한 번도 말도 해본 적 없고 친하지도 않은 사이에 다짜고짜 욕지거리를 뱉는 전정국이 김여주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교과서를 위해 억지로 웃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답은 싫은데? 이거였다. 그런 전정국의 말에 김여주 역시 호락호락하게 나오지 않았다.
“너 어차피 수업시간에 잘 거라 교과서 필요 없잖아.”
전정국은 당돌한 김여주에 어이가 없었다. 이 학교에서 자신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것도 쌤들이 아닌 이상 아무도 없었고, 거기다 이렇게 당당하게 자신에게 뭔가 요구하는 사람은 김여주가 처음이었기에. 전정국은 피식- 헛웃음을 한 번 짓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김여주 귀에 자신의 입을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빌려주면, 넌 나한테 뭐 해줄 건데?”
귀를 간질이는 숨소리에 김여주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고 뭘 해줄 거냐는 전정국의 질문에 곰곰이 생각하는 김여주였다. 전정국은 과연 김여주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까 궁금해 고개를 옆으로 까딱이며 김여주를 쳐다봤고 그때, 딩동댕동-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쳤다.
“원하는 거 들어줄게. 그러니까 빨리 교과서 좀.”
종이 치고 두 눈이 땡그래진 김여주는 급한 마음에 어쩔 수 없이 전정국에게 원하는 걸 들어주겠다는 대답과 함께 전정국의 국어책을 받아 자신의 자리로 홱 가버렸다. 김여주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뒤, 자신의 자리에 털썩 앉은 전정국은 자꾸만 김여주한테 시선이 가기 시작했다.
도대체 지 까짓게 뭐길래 자신의 앞에서 저렇게 당돌하게 굴 수 있는 건지. 다른 애들은 자신이 무서워 말 한 마지 걸지 못하는데 김여주는 꼬박꼬박 대답해가며 자신의 책을 가져갔으니 궁금해질 만도 하겠지. 전정국은 한 교시 동안 계속 김여주만 뚫어져라 쳐다봤고 그 국어시간은 전정국이 유일하게 학교에서 자지 않은 시간이었다.

국어시간이 끝나고 김여주는 교과서를 보고 노트에 필기해 정리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교과서를 들고 전정국에게 향했다. 전정국은 김여주가 자신에게 오는 걸 알았지만 모르는 척 시선을 창가로 돌렸고 김여주는 그런 전정국의 책상 위에 빌린 교과서를 툭 올려놨다.
“잘 빌렸어, 고마워.”
전정국은 그런 김여주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다. 전정국의 입장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김여주였기에. 물건을 빌릴 때도 자신이 불리하게 빌려갔으면서 돌려줄 때는 기분 나쁜 티 하나 안 내고 오히려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김여주는 전정국이 자신을 빤히 보자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는 손에 쥐고 있던 뭉툭한 것을 전정국 책상에 올려놓고는 금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김여주가 갔는데도 계속 김여주 쪽을 바라보던 전정국은 이내 시선을 거뒀고 김여주가 자신의 책상에 두고 간 게 뭔지 확인했다. 자신의 책상 끝쪽에 조그마한 초콜릿 한 개가 놓여있는 걸 확인한 전정국은 재밌다는 듯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꽤 귀엽네.”
그렇게 웃고 있던 전정국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모두의 예상을 다 깨버리는 말이었다. 전정국의 입에서 시발, 뭣 같네, 개새끼야 등등 뭐 이런 상스러운 말들이 자주 나오는 건 봤어도 저런 오글거리는 말이 나오는 건 처음이었다. 전정국 역시 자신이 내뱉고도 깜짝 놀란 건지 두 눈을 크게 떴고 고개를 한두 번 젓더니 김여주가 저 먹으라고 주고 간 초콜릿을 까 입에 쏙 넣었다.
“존나 달아.”
평소 단 것을 좋아하지 않던 전정국에게 김여주가 주고 간 초콜릿은 무지 달았다. 처음 입에 넣었을 때 쫙 퍼지는 단맛에 미간을 구긴 전정국이었지만 이내 입을 오물거리며 김여주 쪽을 다시 한 번 쳐다봤다. 아마 이때였나 보다, 전정국이 김여주한테 관심이 생긴 건.

그날 이후, 전정국은 김여주에게 흥미? 관심? 비슷한 것들이 생겼다. 김여주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이주일에 한 번 나오던 학교를 매일 나오기 시작했고 학교에 나와도 잠만 자던 전정국이 수업시간에도 깨어있었다. 그게 하루, 이틀 계속되자 선생들과 학생들 사이에 전정국이 드디어 미친 거냐며 소문이 쫙 돌았다.
물론 김여주는 전정국이 그러든 말든 상관이 없었다. 대한민국 고등학교 3학년인 김여주한테 중요한 건 오직 성적, 내신, 생기부 뿐이었다. 김여주는 전정국에게 교과서를 빌린 그때 빼고는 절대 엮일 일이 없을 거라 확신했고 그 확신은 불과 며칠 만에 깨졌다.
“자, 같은 숫자 뽑은 사람들끼리 한 조로 다음 시간까지 프린트 완성해 오도록.”
김여주는 번호를 뽑고 자신과 짝이 될 사람을 찾고 있었고 전정국 역시 번호를 뽑아 확인했다. 서로의 짝을 찾느라 시끌벅적한 애들 사이에서 김여주와 전정국은 딱 눈이 맞았고 김여주는 손가락으로 쪽지를 가리키며 입모양으로 몇 번이냐고 물었다.
“7번.”
김여주의 확신은 7이 적힌 쪽지와 함께 찌익 찢겨졌고 전정국과 같은 조라는 걸 알게 된 김여주는 한숨을 한 번 푹 내쉬고서 전정국의 책상으로 다가갔다. 전정국은 김여주에게 흥미가 있던 상황이었기에 김여주와 짝이라 내심 기뻤을 거다.
“하필 너랑 짝이네.”
“왜, 싫어?”
“응, 너 영어 못 하잖아. 나 혼자 이거 다 작성해야 될 거 생각하니까 끔찍해.”
김여주는 여전히 당돌했다. 자신과 짝이 된 게 대놓고 싫다며 끔찍하다는 김여주에 전정국은 또 한 번 피식- 웃음을 보였다. 김여주는 그렇게 전정국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열심히 영어 프린트를 작성하기 시작했고 전정국은 책상에 턱을 괴고 그런 김여주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쌍커풀이 진 큰 눈에 낮지 않은 코, 화장을 하지 않아 깨끗하고 하얀 피부, 은은한 색이 도는 입술까지. 김여주는 제법 괜찮게 생긴 사람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는데 김여주의 머리숱 때문인지, 팽팽하게 꽉 조여 묶은 탓인지 김여주의 머리끈이 툭 끊겼고 김여주의 긴 머리칼이 스르륵 흘러내려 김여주의 뺨을 스쳤다.
“아, 뭐야. 머리끈 더 없는데…”
김여주는 신경질을 내며 흘러내리는 머리카락들을 몇 번이고 쓸어 넘겼다. 대충 머리카락을 정리해 귀 뒤로 꽂은 김여주는 다시 또 영어 프린트에 전념했지만 전정국은 그럴 수 없었다. 전정국은 두 눈이 몇 번을 깜빡일 때까지 얼음이 된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 김여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또, 전정국의 머릿속에는 머리카락이 스르륵 흘러내리는 김여주의 모습으로 가득찼다.

“… 미친.”
“뭘 중얼거려. 빨리 내 거 옮겨 적기라도 해.”
김여주는 그런 전정국의 상태도 모르고 빨리 옮겨 적으라며 전정국을 닦달했지만 전정국은 그 상태에서 몸을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까 그 장면이 자꾸만 떠올라서, 자꾸만 김여주가 예뻐 보여서. 전정국은 현재 미칠 지경이었다. 다들 아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전정국의 귀는 토마토보다 새빨갰다.
♥︎
댓글, 구독, 응원, 평점 부탁드려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청춘 로맨스 느낌 좔좔… 열심히 쓸 테니까 다들 짧은 댓글이라도 한 번씩 부탁드려요🙌🏻
손팅 없으면 다음 편도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