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에 빙의한 내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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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도용 ×






















날 포함해서 12명이 이 단합 여행에 참여했다. 많다면 많고, 적으면 적은 인원. 친한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선 내가 편할 수는 없다는 걸 알지만 이여주 덕분에 더욱더 불편하다.




"수지야~ 우리 이거 같이 할래?"




짝을 지어서 게임을 하라고 하는 선생님에 짜증이 났다. 그냥 조용히 빠지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나를 감시하는 아빠 쪽 사람들 때문에 딴짓을 할 수가 없었다.



"니 물고기들이랑 해. 짜증나게 하지 말고."

"아니... 나는 여자인 친구랑 하고 싶어서..."

"다른 애랑 해, 그럼. 나만 여자냐고."

"응... 너만 여자야."

"어?"



주위를 둘러보니 어째 죄다 남자들 밖에 보이지 않았다. 미친 학교. 학생회를 어떻게 뽑으면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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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야, 왜 얘랑 있어. 나랑 같이 하자."

"아..."

"빨리 데리고 가지?"



날 아니꼽다는 듯이 쳐다보는 김태형에 주먹이라도 인중에 꽂아버리고 싶었다.



"하... 이딴 걸 왜 해야 되는 건지."



단합이고 나발이고 딱 봐도 다 돈 많은 집안 애들 같은데, 뭐 이런 좋은 곳에서 게임이나 하라고 하는 거람? 빨아먹는 돈에 비해 영...



난 최대한 얘네랑 떨어지고 싶어서 구석으로 향했다. 음료 한 잔을 손에 들고 뭔 짓거리를 하며 노나 구경이나 하기로 했다.



"...집이나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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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집 타령이냐."

"거액을 들이고 이 지랄하는 게 맞는 거라고 보냐, 너는?"

"한두 번인가."

"어... 그래;"




아무래도 내가 한수지 몸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런 지랄이 많았었던 것 같다. 고인물은 킹정이지... 닥치고 있어야겠다.



"이렇게 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도 해."

"신경 꺼."

"맨날 신경 끄래."

"양심 뒤졌냐? 너네가···"

"우리가 먼저 너보고 꺼지라고 했다고?"

"알면서 지랄이지, 너?"

"매번 네가 하는 소리니까 그렇지."



수지는 정호석을 한 번 노려보곤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옮겼다. 이상하게 정호석한테 수지가 말리는 거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착각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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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시간이라 식당으로 모여야 한다. 하지만 나는 가지 않았다. 딱히 배가 고프지도 않았고, 혼자서 먹을 게 뻔한 내 자신이 싫어서다.



물론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한수지겠지만, 한수지가 캐릭터 인물이라면 소개 글에 '콧대 높은'이라는 말이 빠지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수지가 아닌 나는 그러하지 않다는 걸 알기에 흉내 낼 수가 없다.



나는 혼자가 무서웠고, 그 무서움으로 인해 혼자가 됐으니까.



방에서 시계를 조용히 바라보며 멍 때리고 있었을까, 갑자기 울리는 노크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안에 있냐?"

"누구···"



문을 열자 바로 보이는 민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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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짜증 난다는 표정은 넣지."

"뭐냐."

"쌤이 너 가져다주라고 시켜서."



민윤기가 건네주는 건 샌드위치와 딸기 우유였다. 이걸 어디서 구한 걸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라 좋기는 한데... 마치 알고 있다는 듯이 주신 거 같다.



"받지? 팔 떨어지겠네."

"엄살은."



수지는 민윤기가 건넨 걸 받았다. 그런데 가지 않고 가만히 서있는 민윤기에 당황스러웠다.



"...뭐, 왜."

"먹는 거 보고 가려고."

"뭐?"

"쌤이 먹는 거 보고 오래."

"그런 미친 소리를 했다고?"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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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시킨 건가... 그래도 내가 왜 얘랑."

"다 들려. 작게 말해도."

"어쩌라고."




수지는 탁자가 있는 곳으로 향해 자리에 앉았다. 민윤기를 내보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아빠가 이렇게 만든 거라면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다. 내 목숨을 생각해서라도.




"왜 이렇게 깨작깨작 먹냐."

"....."

"미간 펴지? 되게 눈치 주네."




수지가 노려보자 민윤기는 알겠다며 수지의 앞에 조용히 앉았다.




"귀찮을 텐데, 그냥 먹은 거 보고 왔다고 대충 구라 쳐."

"샌드위치 먹는 데 그리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라서."

"그래도 굳이 있을 필요는···"

"신경 쓰지 말고 먹기나 해."



창과 방패도 아니고 이게 뭐람.



"근데 너 입가에 소스 묻은 건 알고 있냐?"

"뭐!?"

"아는 줄."

"바로바로 안 말하면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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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는 줄 알았다니까."

"웃음이 나와 지금;;?"




빽빽 소리 지르는 게 마치 말티즈 같아서 웃음이 나오는 민윤기. 왜인지 민윤기는 한수지를 보곤 전정국을 떠올렸다.



"닮은 거 같기도 하고..."

"뭐라고?"

"아냐. 제대로 닦기나 해."



수지는 윤기를 노려보며 황급히 닦아냈다. 여주에게만 보이던 민윤기의 웃음이 직접 자신을 향해 웃어 보이자 조금은 당황한 수지. 첫인상이 무서웠던 민윤기가 웃을 때는 그 누구보다 무해해 보였다.



"물어 볼 거 있는데."

"뭐."

"며칠 전에 집 가는 길에 김석진을 마주쳤거든."

"근데 왜인지 걔가 울고 있더라고."



수지는 입을 다물었다. 왜인지 짐작이 가서.



"술에 취하기도 했고, 우는 모습은 또 처음 보는 거라 당황스러웠는데... 걔가 네 이름을 그렇게 부르더라."

"....."

"그때 너 만난 거지. 김석진?"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다. 아는 게 없는 내가 무슨 대답을 해야 되는 걸까. 난 그날에 처음으로 파혼 관계인 걸 알았는데...



왜 이렇게 곤란할 때는 멋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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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났으면 어쩔 건데."

"...걜 너무 몰아세우진 마라."

"무슨 뜻이야."

"걔가 얼마나 아픈 애인지 알잖아, 너도."



아프다는 게 어디가 아프다는 걸까. 단지 몸이 아프다는 걸까.



"많이 힘들어하고 있어. 여전히 괴로워하고 있다고."

"...야. 너 내 생각은 좆도 안 하지?"

"아니, 내 말은···"



짜증이 났다. 내가 걔 사정을 어떻게 아는데?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자꾸 걔가 힘드니 뭐니 하는데... 너네는 내가 한수지가 아닌 것도 모르잖아. 진짜 짜증 나, 너네.



한수지가 너희에게 어떤 존재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좋지 않은 사이인 건 알고 있어. 그런데 너네는 무슨 생각으로 이제 와서 자꾸 다가오는 건지 나는 이해를 할 수 없다고.



"내가 아픈 건 모르잖아, 너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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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느끼는 건데, 너넨 내 생각을 좆도 안 해."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지."

"야, 그러는 너는 뭐 잘했는데. 이때까지 우리한테 한 짓, 어떻게 설명할래?"

"이제 그냥 제발.. 각자 알아서 지내자 좀."

"짜증 나. 너네만 보면."



수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렸다. 뒤에서 들려오는 한숨 소리는 무시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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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