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에 빙의한 내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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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도용 ×



















방에서 나오기 싫었지만 또 뭘 하는 건지 모든 학생이 한자리에 모였다. 따분해 죽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게 내 처지인걸.



"이 상자에서 나오는 숫자와 같은 사람들끼리 짝이 될 거야. 그다음엔 짝과 함께 차례대로 출발하면 돼."



이 밤에 뭘 하나 했더니 대뜸 담력 테스트를 한단다. 내가 본 드라마들은 막 파티를 하면 했지... 부자들이 담력 테스트 따위를 하는 건 보제 못했다.



일단 나에게 제일 큰 문제는 짝지다. 제발 그 8명과는 떨어지길 빌지만... 붙을 확률이 높다는 걸 알아서 짜증 난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희망을 품고 뽑기 통에 손을 집어넣어 본다.



"7번..."



누가 7번 일까. 하나둘씩 짝을 찾은 대로 출발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아직 7번을 뽑은 사람이 없는 거 같아 벤치에 앉아서 멍하니 기다리고 있었을까. 누군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고갤 올려서 보인 얼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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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7번이지."



전 약혼자 김석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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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도 없이 어두운 산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사연 오백만 개는 있어 보이는 김석진 표정에 무슨 말을 꺼낼 분위기도 아니었다. 물론 내가 쟤랑 무슨 대화를 나누겠냐만.



"....."

"....."



그런데... 쟤 왜 점점 걷는 속도가 빨라지냐? 앞에서 긴 기럭지로 성큼성큼 걸어가니 거리가 순식간에 꽤나 멀어졌다. 나는 그냥 천천히 걸었다. 어색해 뒤질 거 같은데, 혼자 가면 오히려 다행이거든.



아, 잠만. 미션 있어서 쟤 먼저 가면 안 되는데?



생각해 보니까 같이 해야 되는 미션도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 속도를 따라 잡기엔 무리인 거 같으니 미션은 포기해야 될 거 같기도... 뭐, 벌칙 받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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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올려다보니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밝혀주는 예쁜 달이 보였다. 나는 밤을 좋아한다. 밤에 혼자 조용히 걷는 게 익숙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밤공기를 마시며 걷는 것을 좋아했다.



물론 나와는 다르게 몸이 약한 수지의 몸으로는 크게 활동적인 것은 금방 지쳐한다. 1분만 뛰어도 힘들어서 주저앉을 정도거든.



힘들어서 이 산속을 못 빠져나가는 일이 없게 천천히 걷던 도중, 이미 가버리고도 남았을 텐데 아직도 가버리지 않고 거리를 유지한 채 걷고 있는 김석진이 눈에 띄었다.



"아..."



길이 잘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아서 그런지 잔가지가 많았다. 반팔을 입던 나는 나뭇가지에 긁혔고, 빛으로 비춰 보니 피가 옅게 나고 있었다. 워낙 새하얀 피부여서 그런지 피가 유독 짙게 보였다.



"다쳤어?"



언제 다가온 건지 김석진을 나를 보고 물었다. 너무 가깝지는 않은... 적당한 거리를 둔 채.



"그냥 살짝 긁힌 거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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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피가 나는데, 뭐가 별게 아니라는 거야."

"나중에 돌아가서 치료하면 돼."



잔뜩 좁혀진 미간이 말해주고 있었다. 



너 정말 한수지 못 잊었구나?



"...조심해서 따라와. 위험하니까."



물어 보고 싶은 게 많다. 이런 사적인 거까지 관여하고 싶진 않았지만... 궁금하다. 도대체 이 둘의 관계가 뭔지.



"너 약혼했더라."

"....."



김석진의 발걸음이 멈췄다. 꽉 말아 쥔 주먹이 보였다. 꺼내지 말아야 할 말을 꺼내버린 걸까.



"그래서? 네가 무슨 상관인데."



잘게 떨리는 네 눈동자가 가소로웠다. 꼴에 수지한테 세게 말하고는 싶었나 봐? 뻔히 보여, 네 생각. 네 표정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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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 같은 건 잊겠네. 다행이다."



불쾌해. 자꾸만 느껴지는 이 이상한 감정이 불쾌하다. 제멋대로 나오는 표정과 말. 그리고 감정까지도. 모든 게 내 것이 아니다. 내 존재를 부정 당하는 것처럼.



"제발... 제발 수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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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해."



...또다. 또 그는 내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뭐가 그렇게 아프니. 뭐가 그렇게 괴로워서 그런 표정을 내게 지어.



"...약혼까지 해놓고 도대체 뭐가 문제야."

"넌 정말 내가 걜 좋아해서 약혼을 했다고 생각해?"

"그럼 뭔데. 날 사랑하고 있다면서 왜···"

"그만해, 한수지. 난 진짜 너랑 같이 마주 보고 있는 것만으로 괴로우니까."



아랫입술을 꽉 깨물던 그는 가버렸다. 한 번의 뒤돌음도 없이. 그리고 수지는 붙잡지 않았다. 한 번도 그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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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지 너도 그만 좀 해."



아려오는 마음을 애써 무시했다. 지금 흘리는 내 눈물도 내 것이 아닌 한수지의 것이니까. 이렇게 마음 아픈 것도 한수지 때문이니까...



나까지 아파할 필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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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