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도용 ×
정국은 수지를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갔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손에 구급상자를 들고 있던 지민은 수지에게 다가갔다.
"재수 없는 새끼."
"치료해 주러 온 사람한테 너무한 말 아닌가?"

"나처럼 착한 친구가 어딨다고."
"..역겨워."
꼴도 보기 싫었다. 자꾸만 느껴지는 쎄함이 그를 혐오하게 만들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뭔가 많은 걸 숨기고 있는 거 같은 그를 보자니 절대 가까워지고 싶지는 않았다.
"내게 닿지 마. 죽여버리기 전에."
"다쳤잖아."
많이도 다쳤다. 전정국의 침대는 이미 피로 젖었고, 보다 못한 호석이 여주에게 다가가 치료를 했다. 그나마 제일 가까운 사람이 얘라서 그런 지 거부감이 크지 않았다.
"따가울 거야."
따갑든 말든... 내게는 아무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 분명 아파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죽을까. 죽으면 되지 않을까. 지금이 기회인 게 아닐까. 아프지 않게 죽을 수 있는 기회.
탁자 위에 과일과 함께 놓여 있는 과도. 내가 죽을 때 저런 칼을 이용해 죽었었다. 그땐 정말 아팠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야, 이거 치운다."
수지를 지켜보던 윤기. 과도를 쳐다보는 수지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느낀 윤기는 곧바로 치워버렸다.
"....."
짜증 나.
호석이가 치료를 끝낼 때쯤일까. 나를 데리러 온 건지 그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빠 귀에 들어간 거 같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보여?"
"네?"
죽여버리고 싶다. 죽는 것도 내 마음대로 못할 거 같은 이 삶은 내게 지옥이나 다름없다. 벌이라고 받고 있는 걸까. 내 목숨을 버렸다는 이유로?
같잖아. 저 표정들. 번거롭다는 저 표정이 나를 미치게 만들어.
"꺼져. 내 눈앞에서 사라져."
"모시겠습니다. 병원으로 가시죠."
"제발... 제발 그 입 닥치고 꺼지라고!!"
화가 미친 듯이 치밀어 올랐다. 불쾌한 이 기분. 나를 쳐다보는 그들의 시선. 달싹거리는 그들의 입마저 역겹다. 숨 막혀. 답답해. 죽어버릴 것만 같아...

"나가시죠. 들어오라고 한 적 없었는데."
"아가씨를 모시고 가야 합니다."
"그건 니들 사정이고. 꺼지라잖아, 내가 지금."
더 이상 입을 열 수 없었다. 상대는 전정국이었고, 감히 말싸움을 할 상대가 아님을 알기에 물러서야 했다.
"...무슨 일 생기면 불러주십시오."
그들은 수지를 힐끗 쳐다보다 밖으로 나갔다. 파르르 떨리는 수지의 손을 발견한 정국은 살며시 수지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곤 무슨 일이냐며 달래듯이 물었다.
"왜 날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 거야."
"왜 자꾸 날 미치게 만드냐고."
"무슨 소리야..."
"너네도 똑같아. 내가 싫다고 했잖아. 꺼지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자꾸...!!"
"....."
수지는 애꿎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내가 이렇게 말해도 뭐가 달라지겠어. 늘 제멋대로인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뭘 해보겠냐고.

"...힘들다고."
정국이 방에 있던 이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무너질 대로 무너져버린 거 같은 모습에 놀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알던 수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늘 예쁘게 펴있던 장미가 시든 것 마냥 그녀는 죽어있었다.
도대체 뭐가 그녀를 이렇게 만들어 놨는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고갤 숙이고 있는 수지는 한없이 작아 보인다. 늘 빛나던 너는 어디에 간 거야.
"여기서 자. 네 방은 엉망이라 들어갈 수 없을 거야."
"필요 없어. 내가 왜 여기서 자."
"그 방은 안돼. 그 향냄새도 빠지지 않았을 거라고."
그 향. 수지의 방에 들어갔을 때 머리를 찌르듯 한 기분 나쁜 향. 그 방은 수지가 있을 공간이 아닌 거 같다.
"향..."

"그 향초는 도대체 왜 하고 있는 거야. 머리만 아프던데..."
"나도 싫어."
"...? 네가 켜 놓은 거 아냐?"
"내가 켜놓은 거라면 오늘 이 사달이 나지도 않았을 걸ㅋ"
호석은 진절머리 난다는 수지의 표정에 직감했다. 아무래도 수지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걸. 그리고 그 안 좋은 일이 수지와 가까운 사람 때문에 생기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네도 조심해."
"성공 앞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지 느껴보고 싶지 않으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도 조심하는 게 좋을걸?"
난 너네를 이용해 먹어야 되는 입장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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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더니... 자주 못 오게 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