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여행 마지막 저녁. 방에서 나오지를 않는 수지를 데리러 간 정국은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문에 곤란했다. 기척이 하나도 안 느껴지는 거 보니 자는 건가 싶다가도 뭔가 찝찝했다.
"한수지!!"
아무리 두들겨도 열리지 않는 문. 자는 게 아니라 방 안에 없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에? 아무도 수지를 발견한 사람이 없었다. 외진 곳이라 갈 곳이 있지도 않다.
"어디 간 거지..."
"거기서 뭐해."
정국은 잠시 눈치 보더니 수지 얘기를 꺼냈다. 석진의 미간이 좁히는가 싶었지만 석진은 정국에게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걸 수도 모르니 찾아보자고 한다.
정국과 석진은 서로 반대로 찢어져 수지를 찾아보기 시작했을까. 갈만한 곳은 다 찾아봤지만 수지를 봤다는 사람조차도 찾을 수 없었다. 넓어 봐야 얼마나 넓다고 한 명도 수지를 못 볼 수가 있는 거지?
"아무리 찾아도 없는데..."

"후... 안 찾아가 본 곳이 없어, 이제."
"설마 밖으로 나갔나?"
이 큰 저택을 벗어나 봐야 보이는 건 숲뿐이다. 그리고 계곡. 위험하니 나가지 말라는 경고가 있었을 텐데, 설마...
"한수지가 경고를 곱게 들을 리가 없지."
석진은 밖으로 나가 보려고 했을까. 정국은 조금 걱정됐다. 말도 없이 나가도 되는 걸지. 저녁이라 어두우니 앞이 잘 안 보이는 건 기본이라 안 위험할 수가 없다.
"안 죽어."
석진은 휴대폰 손전등을 켜고는 조용히 정문을 빠져났다. 그리곤 정국도 별일 있겠나 싶어서 석진을 따라 나갔다.
음산한 분위기는 물론, 폰이 아니었다면 한치의 앞도 보이지 않았을 숲. 정말 수지가 나간 게 맞다면 정말 위험한 상황 일지도 모른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선생님들한테 얘기를 해야 하나 싶을 때,
"저기 봐."
사람이 살고 있기 힘들어 보이는 낡은 집 한 채가 보였다. 설마 저런 곳에 있겠나 싶었는데, 집 옆에 보이는 차량에 누군가 있긴 하구나 싶어서 가보기로 했다. 혹시 모르니 아주 조용히, 기척을 숨겨서.
"잘 안 보이는데."
차량은 있지만 창문으로 통해 안을 봐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불은 다 꺼져 있으니 잘 보이지도 않았지. 김석진은 별일 있겠나 싶어서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리저리 빛을 비추니 아무래도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닌 건 확실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여기에도 없는 거 같은데."
계속 주위를 둘러봤을까. 아무리 돌아다녀도 뭐 하나 보이는 게 없었다. 이제 정말 포기를 해야 하나 싶을 때, 작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숨을 죽였다.
"아래다."
지하가 있는 건지 바닥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한 사람은 아닌 거 같고... 몇 명 있는 거 같은데...
"야, 김석진 여기!"
바닥에 보이는 문고리. 아무래도 지하로 가는 통로임이 분명하다. 정국은 곧바로 문고리를 잡아당겨 문을 열었다. 문을 열어 보니 계단이 보였고, 조금은 망설임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혹시나 정말 한수지가 여기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둘은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내려가니 복도가 보였다. 복도를 따라 조용히 걸어 들어가니 또 하나 보이는 문. 문은 살짝 열려 있었기에 아주 조심히 다가가 열린 틈으로 안을 살폈다.
"말을 왜 이렇게 안 들을까. 어?"
익숙한 남성의 뒷모습과 함께 의자에 묶인 채로 엉망이 되어 있는 한수지가 보였다. 순간 뛰쳐갈 뻔했지만,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기에 꾹 참았다.
"그냥 죽이지 그래? 그 좆같은 향초로 천천히 죽여가지 말고, 옷 안에 숨겨둔 칼로 내 목을 베라고!!"
뭔갈 알고 있는 거 같은 박지민을 어떻게 해야 될까 고민에 빠져 있느라 잊고 있었다. 내가 어딜 가든, 뭘 하든 날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는걸. 그리고 모든 정보가 그 사람의 귀에 들어갈 거라는걸.
갑자기 끌고 가길래 찝찝했는데, 이 사람이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다. 내 행동들이 아주 많이 거슬렸나 봐?
"넌 죽고 싶어도 못 죽어. 인형인 너를 주인인 내가 아직 안 버렸잖아? 그러니 넌 쉽게 못 죽어."

"최소한 동생은 제 곁에 뒀어야죠. 최소한!! 걔는... 걔는 건들지 말았어야지. 걔마저 없는데, 내가 왜 굴러?"
"그야 너는 오직 나만을 위한 인형이니까."
목에 핏대가 세워질 정도로 화가 난 한수지. 이번에도 진짜 한수지가 잠시 나타나기라도 한 듯 동생에 대해 말하는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역겨울 정도로 기분 나쁜 감정. 마치 내 감정과 한수지의 감정이 섞여 복잡해져 괴로워졌다.
꼴에 인형이라고 얼굴은 안 건드는 이 남자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고 싶다. 그런데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게 허탈하다. 나는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도 똑같다는 게... 참... 비참해.
"지 어미와 똑 닮은 얼굴을 가지고 있는 걸 감사해야 될 거다. 안 그랬다면 그 애가 아니라 네가 죽었을 거거든."
"아, 시간을 너무 끌었군. 말 안 듣는 인형은 벌을 좀 받고 있으렴."
야, 숨어. 그 남자가 방에서 나가려자 석진은 정국을 데리고 구석으로 가 숨었다. 그리곤 수지가 혼자 남이 있을 때를 기다렸다가 수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한수지...! 정신 차려!"
"뭐야... 너네가 왜..."
"저 개새끼... 감히 널...!"
"전정국 진정해. 일단 수지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게 먼저야."
석진은 차분하게 묶인 수지를 풀어주었고, 곧장 수지를 안아 든 정국은 조심히 그 장소를 벗어났다. 허술해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둘도 위험했을 거다.
감시자들을 피해 저택으로 돌아온 셋. 선생님을 포함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들어오느라 고생 좀 했다. 석진의 방으로 모인 셋은 다친 여주를 먼저 치료해 주었고, 마치 정말 인형이라도 된 듯 가만히 무표정으로 앉아 있는 수지가 왜 이리도 아파 보이는지... 석진은 조용히 수지의 손을 잡았다.

"대답만 해. 그 새끼 죽여줘?"
"전정국...!"
"그건 짐승만도 못한 새끼야. 살려둘 필요 없어."
"필요 없어."
수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에 힘이 없어 휘청거렸고, 붙잡아주는 정국의 손을 떼어내곤 다시는 본인 일에 개입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방에서 나갔다.
"한수ㅈ...!"
"정국아, 따라가지 마."
"하지만!"
"지금 따라가 봐야 수지의 심기를 건드는 것뿐이야. 일단... 일단 지금은 냅둬."
정국은 물론 석진도 표정이 좋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수지의 모습이 불안하고, 수지가 이렇게 되도록 만든 존재를 수지가 받은 고통보다 더 괴로운 고통으로 돌려주고 싶다.
하지만 본인들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우리에게는 몰라도, 수지에겐 우리가 아무 존재도 아니거든. 그러니 우리가 끼어드는 것만으로도 수지는 달갑게 느끼지 못할 거다.
"....."

"아직 우린 수지가 세워둔 벽을 넘을 수 없는 존재야."
언제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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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플이 죽었다는 소문이........ 들리던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