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후회가 먹고 싶었다

8년 전, 어느 기억




"... 야."
"뭐."
"너 그, 오늘은 그냥 집에만 있어라."
"갑자기?"
"어. 갑자기."
"뭐야."



그냥, 느낌이 안 좋아서.
닥쳐라, 갑자기 뭔 재수 없는 소리야.


타닥, 탁. 키보드 소리만이 어색하게 방을 매웠다. 분명 싸워도 한 번도 어색하지 않았는데. 야, 전정국. 멍했던 정신이 이름 부름 한 번에 정신이 다시 또렷해졌다.


"어."
"나 편의점."
"그럼 나 사이다."
"응 콜라 살 거야."
"사이다 사와라."
"엿 까."



야! 김태형! 불러 멈춰새우기도 전에 어딘가 다급한 모습으로 집을 나갔다. 뭐야. 오늘따라 어색한 모습만 드러내는 그저 찝찝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고 시선을 컴퓨터로 옮겼다. 손 위치를 제자리로 놓는 동시에 게임 화면이 떠있던 컴퓨터 위로 흐릿한 헛것이 게임 화면을 가렸다. 총을 겨누는 남자. 그리고, 김태형.


김태형?


컴퓨터 모니터를 붙잡았다. 눈을 비비고 화면을 이곳저곳 때려도 흐릿해지긴커녕 야속하게 동영상처럼 계속 이어졌다. 저화질처럼 모든 것이 확실히 보이진 않았지만, 하나는 정말 알 수 있었다.



탕!



무언가,



타당!



크게 잘못되었다는걸.



편의점으로 달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도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경찰과 수많은 사람들만 쌓여있을 뿐. 김태형은 보이지 않았다.


"김태형."


"김태형!"


눈물이 울컥 올라왔다. 어디 갔어. 어디 갔냐고. 경찰차 안에 있을까 다시 달렸지만, 경찰차 창문으로 다시 보이는 헛것에 멈춰 섰다.

어느 여자가 나한테 다가오고, 무언갈 채워준다. 그리고, 그리고..


"...."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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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 아아...."



많은 장면들이 스치며 헛것에 이명이 들려온다. 몸이 뜨거워지고 숨쉬기 힘들어진다. 숨통을 조여오는 헛것들. 누군가 목을 꽉 조이듯이, 허덕이며 허우적거렸다.

진짜 죽겠구나, 생각이 드는 순간. 차가운 냉기가 몸을 감쌌다. 숨이 서서히 트였고 헛것이 점차 걷어졌다.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죽음. 죽음이라는 단어를 이렇게나 생생하게 느껴 공포감이 몰아쳤다.


"얘 계속 가이딩 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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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목걸이 가져오게."
"목걸이?"
"있어. 능력 제어 목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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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게 있었어?"

"응. 있었어. 김남준 너는 현장 좀."


땅에 처박혀있던 고개를 드니 눈매가 쭉 찢어진 남자가 날 내려봤다. 정신 차렸네. 말투가 아니꼬웠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냉기에 정신이 몽롱했다.

짤랑, 갑자기 훅 끼친 향기에 눈이 번쩍 떠졌다. 여자는 나에게 목걸이를 채워주며 아기 다루듯 한 투로 날 진정시켰다.


"능력 제어 목걸이. 이거 차고 있으면 아까처럼 능력한테 지배되진 않을 거야."
"... 당신,"
"어?"
"... 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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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창문으로. 헛것으로 봤어요.


"... 능력이 예지력인가 보네."
"예지력?"
"어. 근데 아직 자세히는 못 보는 거 같아."
"그래도 어느 정도 본게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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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오기 전에, 본 거 없어?"


또 다른 남자가 내 눈높이를 맞추며 물었다. 여기 오기 전.. 편의점에 오기전 무엇을 봤지. 아, 맞다. 김태형을 봤다. 컴퓨터 화면으로 김태형을..


"... 김태형."
"...."
"김태,형 찾아야 해요. 어느 남자가, 총을, 총으로,"
"맞네. 예지력."
"...."
"걔 죽진 않았어. 납치는 됐어도."
"그걸..."
"난 과거를 봐."



솔직히 믿지 못했다. 아니, 믿고 싶어도 머리가 이해를 못 했다. 과거를 읽는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지. 뜬금없이 남자는 픽 웃더니 내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콜라보단 사이다. 게임하다가 봤구나. 총 소리도 들었고, 또...


"그, 그만."
"그만?"
"...."


고개를 주억였다. 사소한 것까지 아는 그를 보고서야 난 믿었다.


"너. 네가 센티넬인건 알고 있었어?"
"센티넬이요..?"
"어."
"... 들어만, 들어만 봤어요."
"근데 이제 너도 센티넬이네."
"...."


난 하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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얜 너 살려준 민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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쟨 수사에 도움이 될 김남준.


"... 전정국이예요."
"그래. 정국."
"...."
"김태형. 네 친구 말이야. 반정부라는 놈들한테 납치됐는데, 찾으려면 네가 필요해."
"...."
"솔직히 우리한테도 득이 되는 게 있어서."
"...."
"같이 갈래?"
"... 같이."
"응. 같이."


코앞까지 내밀어진 손. 하지만 선 듯 잡지 못했다. 아까, 폭풍처럼 몰아치던 헛것들에. 모든 장면에 당신이 있었기에. 긍정도 있었지만 부정은 더했기에.


"... 나 팔 아프다."
"...."


그래도, 하여주. 당신은 강해 보였다.


"같이, 가요."
"...."
"나도 도와줄 테니, 당신들도 날 도와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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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래 보였다.















8년 전, 봤던 장면들이 똑같이 그려졌다. 토씨 하나 안 틀렸기에 난 내 능력을 더 신뢰했다.

씻으려 목걸이를 잠시 뺏을 때였다. 정말,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보이던 미래.


"이야, 센터보다 더 잘 어울리네."
"까분다."
"진짠데."
"뭐, 편하긴 하다."
"그치?"


누나가 반정부로 의심받을 때. 하필 그때 능력에 사로잡혀 너무나 뚜렷한 미래를 봐버렸다. 내 가이딩 팔찌를 확인한 윤기형은 곧바로 달려와 가이딩과 함께 목걸이를 채워줬지만, 난 눈물을 흘렀다. 고통, 능력에 지배당해 자책이 아닌,


"... 형."
"야, 괜찮,"
"목걸이 말고,"
"...."
"다른 건 없어?"
"... 뭐?"
"이 목걸이 말고 다른 제어 장치는 없어?"


배신감.


그 유치한 감정 하나 때문이었다.

윤기형은 고개를 주억거렸고 난 해결책을 찾자마자 지하 감옥으로 향했다. 공허함에 찬 표정의 하여주. 울분이 차올랐다. 내가 가장 의지하고 존경했던 사람이, 가장 좋아하고 사랑했던 사람이 우릴 속인 반정부였다는 거에.



"저 목걸이가 8년 동안 내 목에 있었다는 게 끔찍해."
"전정국!"
"얼마나, 우스웠을까."
"상처, 상처부터 치료,"
"작작해."
"...."
"착한 척 그만해."


다 그만해.

센티넬이든, 리더든, 반정부든 뭐든.


이제 다 그만해 누나.



누나를 아꼈던 나를 탓했고, 나를 아껴준 누나를 탓했다.


더 이상,


"...."


나 혼자 죄책감에 시달리기 싫어, 그녀를 더 원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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