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형은 골목 끝에서 사라진 남자의 뒷모습을 계속해서 떠올려보았다.
익숙한 듯 낯선 붉은 눈이었다.
그 얼굴은 머릿속 어딘가에서, 꺼져가던 촛불처럼 아른히 남아있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태형은 속으로 아주 진지하게 생각을 정리해보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차기 신 후보라서 인간 세상에 내려온 거고,
근데 나 혼자만이 아니라… 그 이상한 놈, 석진이라는 사람도 같은 후보고…
그리고 원래는… 인간 세상에 올 때, 페르소나라는 게 있어서, 그걸 머리에 입력하고 내려오는 건데…
나는 그게… 없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는 자신이 손에 들고 있는 아이스크림을 멍하니 바라봤다.
"안 먹어요, 태형씨??"
"아, 먹어요! 이게 그.. 아이스크림?"
"그쵸 빨리 먹어봐요!! 진짜 차갑고 맛있어요 ㅎㅎ"
하늘이 말했던 행복해진다는 음식을 태형은 왕- 입에 물었다.
"!!!!!!!! 읏 차가!!!!"
"아.. 아니!! 그렇게 한 입에 많이 먹으면 어떻게 해요!! 나 참..."
아이스크림은... 뇌를 띵하게 만드는 차가운 괴물 같았다.
‘어우 차가워서 머리가 띵한 건지,
아니면 진짜 내가 머리가 띵한 건지…
그게 아니라면… 그냥 내가 진짜 바보가 된 건지…’
태형은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물고, 머리를 테이블로 푹 숙였다.
‘하… 진짜 바보 같아. 내가 이렇게 기억이 없을 줄은…’
그 옆에서 태양이가 꼬리를 흔들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태형을 위로라도 하고 싶은 눈치였다.
그리고 그 조심스럽게 다가온 하늘이 살며시 옆에 붙어 앉았다.
"태양이도 태형 씨 위로하고 싶은가부다, 그치?"
"멍!"
"... ㅎㅎ 귀엽네 태양이"
“태형씨.”
태형은 고개를 들었다. 하늘의 눈빛은 단단하게 빛나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꼭, 빠른 시일 안에 당신 기억 찾아줄게요. 지금 누구보다 열정 있어요!!!"
"멍 !!!!!"
"ㅋㅋㅋㅋ 태양이도 열정있나본데~? 으이구 귀여운 것~"
태형은 작게 웃었다.
태양이를 찾아줬단 이유 하나로 이렇게 자신을 도와주는 하늘에게 너무 고마웠다.
“...고마워요.”
"에이~ 뭘요, 빨리 아이스크림 남은 거 먹어요! 녹겠다"
다음 날 아침.
창문 사이로 들어온 햇살에 눈을 뜬 태형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조심조심 문을 열고, 그는 문틈으로 하늘의 방을 슬쩍 들여다봤다.
침대에 웅크린 채 있는 하늘. 아직 자고 있는 것 같았다.
침대 옆에선 태양이도 잠들어 있었다.
태형는 입술을 꾹 다물고, 조용히 현관문을 열었다.
..사실은,
어제 그 아이스크림이 너무 맛있어서, 하나만 더 사먹고 오려는 계획이었다.
'어제 그 맛이 머리를 떠나질 않냐, 천상의 음식이었나....'
그렇게 자기합리화 가득한 걸음으로 집을 나와 골목을 빠져나오려던 찰나.
“ㅌ…태형 도련님!!!!! 여기다!!! 도련님을 찾았어!!!”
정장을 차려입고 선글라스를 낀 한 남자가, 미친 듯이 골목 어귀에서 뛰어오고 있었다.
서류 가방이 흔들리고, 넥타이는 반쯤 풀려 있었다.
“도… 도… 도련님!!!!!!!!”
태형은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허… 허허억?! 누, 누구세요?!”
태형은 반사적으로 한 걸음 뒷걸음질쳤고, 다음 순간, 본능적으로 도망쳤다.
“도련니이이이임!!! 잠깐만요오오!!!”
“으,악 따라오지 말아요!!!!!!! 무서워요!!!!!!!”
편의점이 아닌 방향으로 전력질주하는 태형.
왜 달리는지도 몰랐지만, 그냥 저 사람이 너무 무섭게 달려와서 무서웠다.
그리고 익숙한 골목 입구에 다다랐을 때—문득 누군가 튀어나왔다.
“으아아앗?!”
하늘이었다.
머리를 질끈 묶고, 슬리퍼 차림으로 뛰쳐나온 하늘과
도망치던 태형, 그리고 그 뒤를 쫓는 수상한 남자.
세 사람의 경로가 골목 입구에서 겹쳤다.
“조, 조심—!!”
하늘이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넘어지는 찰나—
태형이 돌아와 그녀의 허리를 껴안아 붙잡았다.
“…!!”
둘 사이로 바람이 스쳤고, 태형의 얼굴은 당황으로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하늘도 순간적으로 아무 말도 못했다. 그 짧은 순간에 두 사람의 숨결이 가까웠다.
“...어어어어, 감사합니다... 하하...”
하늘이 가까스로 균형을 잡고는, 태형의 품을 벗어났다.
그리고 그 순간, 태형의 등 너머로 수상한 선글라스 남자가 다가왔다.
태형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어색한 인사를 건넸다.
“…하하… 안..... 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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