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있다면

07 첫 걸음마

하늘은 방금까지 있었던 상황이 꿈이었나 싶을 만큼 얼떨떨한 얼굴로 태형의 병실 문을 살짝 닫았다.

 

"아니... 이게 무슨 재벌 드라마 실사판이야...?"

 

머리를 긁적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지만, 곧 복도 끝에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에 자세를 고쳐 앉았다.

고운 치마 자락을 단정히 정리한 할머니가 다시 병실로 들어와, 하늘에게 미소를 건넸다.

 

"고맙네, 아가씨. 정말로... 이렇게 쉽게 부탁을 들어줄 줄은 몰랐어."

 

"아니에요, 저야말로... 갑자기 이렇게 된 게 좀 정신이 없어서요."

 

하늘이 민망하게 웃자, 할머니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태형이 곁에 있어주기만 해도 돼. 아가씨처럼 따뜻한 사람이 옆에 있으면 분명히 기억도 더 빨리 돌아올 거야."

 

그때, 병실 안에서 문이 살짝 열렸다.

머리를 헝클인 채 태형이 몽롱한 표정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저 이제 좀 ... 괜찮아졌어요, 걱정 시켜드려서 죄송해요"

 

"태형아, 할미는 진짜 놀랐구나... 이제 내가 안심할 수 있게, 사람을 한 명 고용했다."

 

"사람.. 이요?"

 

"그래, 바로 이 아가씨말이다 ㅎㅎ"

 

"...? 네? 하늘 씨요?"

 

"ㅎㅎ 그래, 어떠니? 이 아가씨라면 내가 널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은데 ㅎㅎ"

 

"아... 하늘 씨..도 들은 내용인 거죠?"

 

"앗.. !! 네, 제가 하겠다고 했어요!! ㅎㅎ 저도 마침.. 일자리를 구하고 있었으니까요...!!"

 

 

"앗 그렇구나.. 다행이네요. 혹시 저... 물 좀.. 마셔도 돼요?"

 

하늘은 픽 웃고는 병실로 들어갔다.

 

"마시면 안 된다고 하면 안 마실 거예요?"

 

"아니요. 몰래 마시려고 했는데요... 들켰네요."

 

태형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하늘은 물컵을 건네주며 말했다.

 

"몸은 좀 어때요? 머리 아픈 건요?"

 

"지금은 좀 괜찮아졌어요. 아까는... 뭔가 갑자기 확 머릿속이 깨질 듯이 아파서..."

 

그는 조용히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한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하늘은 그 옆에 앉으며 살짝 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주치의 선생님이 일시적인 거라고 하셨잖아요."

 

"...네. 근데 이상해요. 아까, 거기서 갑자기... 누군가의 얼굴이 스치듯 떠올랐거든요. 근데 그게 누구였는지 생각이 안 나요."

 

하늘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조금씩 기억이 돌아오고 있는 거일 수도 있죠. 분명 좋은 징조예요."

 

태형은 잠시 말이 없었다가, 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하늘 씨. 저... 부탁 하나 해도 돼요?"

 

"네? 뭔데요?"

 

"혹시 제가 엉뚱한 행동하거나 이상한 말 하면... 그거 말려줄 수 있어요? 제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솔직히 좀 무서울 때도 있거든요."

 

하늘은 작게 웃었다.

 

"물론이죠. 제가 옆에 있을 거니까. 이상한 말 하면 바로 태클 걸게요."

 

"태클이라... 뭔가 말투가 든든한데요."

 

"저 태클 잘 걸어요. 어릴 땐 레슬링부였거든요."

 

"진짜요?"

 

"아뇨. 거짓말이요."

 

둘은 동시에 피식 웃었다.

그 순간, 병실 문이 또 한 번 열렸다. 이번엔 비서가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밀었다.

 

"도련님, 하늘 양. 저녁 식사 준비가 되었습니다."

 

"...식사요?"

 

태형은 긴장한 듯 말했다. 하늘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요. 오늘은 밥 먹고, 조용히 쉬는 거예요. 내일부터가 진짜 시작일 테니까."

 

태형은 그녀의 손을 바라보다가, 살짝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기억은 없어도, 이 사람은 믿어도 되겠다.'

 

빛과 어둠의 시험 속에서, 두 사람의 인연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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