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있다면

08 연화가의 아침

아침이었다.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귀가 간질거릴 정도로.

 

태형은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그리고 다시 떴다.

천장이… 너무 높았다.

 

 

“…여긴 또 어디지…”

 

몸을 일으키자 푹신한 침대가 뒤늦게 반발력을 발휘했다.

이불은 폭신했고, 공기는 쾌적했고, 햇살은 딱 적당했다.

 

“…꿈인가…”

 

그때 문득, 어제 있었던 일들이 순서 없이 떠올랐다.

선글라스 낀 남자,

연화 그룹 도련님이라는 호칭,

그리고... 울면서 안겼던 할머니

 

“…흐음…”

태형은 이마를 짚었다.

 

 

“이게… 현실이라고…?”

 

그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똑똑—

 

 

“…태형 씨? 일어나셨어요?”

하늘의 목소리였다.

 

“아, 네! 네! 일어났어요!”

 

너무 크게 대답한 탓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핳 ... 그럼… 들어가도 돼요?”

 

“아, 네! 괜, 괜찮아요!”

 

문이 열리고 하늘이 고개를 내밀었다.

어제와 달리 단정한 셔츠 차림이었다. 머리도 깔끔하게 위로 묶은 하늘의 모습은 영 어색했다.

 

“… 오…”

 

태형이 무심코 중얼거렸다.

 

“왜요? 어디... 이상해요?”

 

“아뇨, 그냥… 어제랑 분위기가 좀 달라서요…”

 

“…여긴 재벌가잖아요. 아무래도요 하핳 차려 입어야죠”

 

하늘은 방 안을 한 번 훑어보고는 작게 웃었다.

“잘 잤어요?”

 

“네. 너무 잘 자서… 오히려 좀 무서웠어요...”

 

“…왜요?”

 

“이렇게 편해도 되나 싶어서요... 아직 기억도 잘 안 나고...”

 

하늘은 잠시 태형을 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래도 적응 잘하시는 것 같은데요?”

 

“…적응이라기엔 아직… 정신이 없는 것 같아요.”

 

그 말에 하늘의 표정이 잠시 부드러워졌다.

 

“괜찮아요. 천천히 하면 돼요. 아침 드시러 가시죠! 도련님 ㅎㅎ”

 

 


 

 

아침 식사는… 상상을 초월했다.

긴 식탁과 정갈한 반찬, 말없이 움직이는 집사들까지

 

태형은 젓가락을 들었다가 멈췄다.

 

 

“…이거… 제가 먹어도 되는 거죠?”

 

하늘이 작게 웃었다.

“지금 다 도련님 드시는 것만 쳐다보고 있는데요?! 어서 드셔요!”

 

“…그럼 잘.. 먹겠습니다..!!”

 

밥을 한 입 먹는 순간, 태형의 눈이 커졌다.

 

“…와.. 너무 맛있는데요...?”

 

 

“오랜만에 도련님 식사라고, 이모님들이 신경 많이 썼나봐요..!! 맛있다니 다행이다..”

 

“인간 세계… 무섭네요. 이렇게 맛있는 걸 숨기고 있다니…”

 

그때, 맞은편에서 할머니가 태형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태형아.”

 

 

“…네, 할머니 안녕하 주무셨어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고?”

 

“아뇨! 전혀요! 너무… 과분하게 편해서…”

 

“그래, 그래.”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기억은… 아직 안 돌아왔지?”

 

“…네.”

 

순간 식탁의 공기가 살짝 가라앉았다.

 

“…죄송해요.”

태형이 먼저 말했다.

 

“왜 네가 죄송하냐.”

할머니는 단호하게 말했다.

 

“기억이 없다고 해서, 네가 네가 아닌 건 아니야.”

 

그 말에 태형의 손이 살짝 떨렸다.

 

“…네.”

 

하늘은 조용히 태형 옆에 앉아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정원으로 나왔을 때였다.

 

햇빛이 나무 사이로 쏟아지고 있었다.

바람이 불자, 나뭇잎이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여기… 정말 커요.”

 

“저도 어제 보고 좀 놀랐어요.”

태형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갑자기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해요.”

 

“뭐가요?”

 

“여기… 분명 처음 오는데…”

태형은 가슴께를 살짝 눌렀다.

 

“…낯설지가 않아요.”

 

하늘은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어디서 본 것 같아요?”

 

“아뇨… 본 적은 없는데…”

 

태형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여기 공기? 아니면… 분위기? 그런 게…”

 

그 순간—

머릿속이 순간적으로 번쩍였다.

 

짧은 장면이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의 뒷모습...

그리고… 붉은 빛이 반짝였다.

 

“…읏…”

태형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태형 씨?!”

 

“괜찮아요… 괜찮은데…”

 

하늘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아까도 그랬잖아요. 무리하지 마세요.”

 

“…네.”

 

하지만 태형은 느꼈다.

무언가가, 아주 천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걸.

 

 


 

 

 

그 시각.

인간 세계 어딘가의 고층 건물 위

창가에 기대 선 석진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웃고 있었다.

 

 

“연화 그룹 막내 도련님이라…”

 

그의 붉은 눈이 가늘어졌다.

 

“기억 없는 상태로는 꽤나 성가시겠지.”

 

석진은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봤다.

그 안엔 태형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조금만 더 흔들어볼까.”

 

그는 낮게 웃었다.

“너한텐 아직… 선택할 시간도 필요하니까.”

 

 


 

 

태형은 정원 벤치에 앉아 하늘과 나란히 있었다.

 

 

“…하늘 씨.”

 

“네?”

 

“…제가 만약…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면요.”

 

하늘은 태형을 바라봤다.

 

“지금도 충분히 대단해요.”

 

“…기억도 없고, 도움만 받는 사람인데요?”

 

“그럼 전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봐요 ㅎ”

 

태형은 잠시 말이 없었다가, 작게 웃었다.

 

“…이상하네요.”

 

“뭐가요?”

 

“하늘 씨 옆에 있으면… 머리가 좀 덜 아픈 것 같아요.”

하늘의 시선이 잠시 흔들렸다.

 

“…그럼 다행이네요.”

 

바람이 다시 불었다.

그리고 태형은 아직 몰랐다.

 

이 평온한 하루가,

시험의 ‘전개’에 불과하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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