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있다면

09 이상한 시선

연화가의 아침은… 이상하게 분주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태형이 느끼기엔 분주했다.

 

사람들은 조용히 움직였고, 말도 낮은 목소리로만 했지만—

그 시선들이 문제였다.

 

 

“…왜 다들 나를 보는 것 같지...?”

 

정원 벤치를 지나가던 집사 하나가 고개를 숙였다.

“도련님, 좋은 아침입니다.”

 

“…아, 네! 좋은 아침이에요....”

 

집사가 지나가자마자, 다른 쪽에서 또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면 다들 아무 일 없다는 듯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저기이...”

 

옆에서 하늘이 속삭였다.

“네?”

 

“여기… 원래 이런 분위기에요?”

 

하늘은 잠깐 주변을 둘러봤다.

“…음. 재벌가니까요. 원래 좀… 관찰당하는 느낌이 있긴 한 것 같기도오...”

 

“…관찰이요?”

 

“네. 감시까진 아니고… 음… ‘평가’?”

 

태형은 그 단어가 유독 크게 들렸다.

“평가…”

 

그 순간, 머릿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겹쳤다.

'가장 인간적인 존재가 신이 된다.'

 

“…읏."

태형은 반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또 머리 아파요?”

 

“아뇨! 아니요, 괜찮아요.”

하늘은 못 믿겠다는 눈으로 태형을 봤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층고가 높은 거실,

긴 소파 맞은편에 중년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무표정을 하고 있었고, 안경 너머의 눈빛이 예리했다.

 

“…저분은?”

 

“연화 그룹 부회장이에요.”

 

“…부회장님이요?”

 

“네. 그러니까…”

 

하늘은 말을 고르듯 말했다.

“…태형 씨를 별로 안 좋아할 수도 있는 분? 아잇 참..”

 

“왜요…?”

 

“재벌가에서 ‘막내 도련님’이라는 존재는… 음…

…위험할 것 같거든요... 제가 또 드라마보면서

익힌 감이 한 두가지가 아니란 말이죠?!”

 

태형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다.

그때 부회장이 입을 열었다.

 

“김태형”

 

“…네?”

 

“... 사고로 기억이 안 난다고 들었다.”

 

“…네.”

 

부회장은 태형을 한참 바라봤다.

마치 물건을 살펴보듯,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재는 눈빛이었다.

 

“…불편하군.”

 

“네…?”

 

“연화는 체계로 굴러가는 조직이다. 변수가 많아지면 곤란해.”

 

공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하늘이 먼저 입을 열었다.

 

“부회장님 안녕하세요,

최근에 입사하게 된 태형 도련님의 비서입니다. 도련님은....”

 

“아가씨.”

 

부회장은 하늘을 바라봤다.

“이 일에 너무 깊게 관여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하늘의 손이 살짝 굳었다.

“…네?”

 

“감싸려는 말을 하려던 거죠?”

 

부회장은 다시 태형을 봤다.

“기억 없는 도련님 곁에 붙어 있어봤자, 얻어 먹을 건 없을 겁니다.”

 

태형이 입을 열었다.

“…저.. 저기...”

 

부회장의 시선이 다시 태형에게로 왔다.

“… 제가 여기 있어서, 불편하신 거면…”

 

하늘이 놀라서 태형을 봤다.

“… 도.. 도련님.. 무슨 말을...”

 

하지만 태형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제가 잠깐 나가 있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어요. 그렇게 불편하시다면요.”

 

부회장은 잠시 눈을 가늘게 뜨더니, 피식 웃었다.

“하하!!”

 

“…?”

 

“기억은 없어도, 말투는 여전하군.”

태형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만하자.”

 

부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켜보겠다. 그게 전부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거실을 나갔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죄송해요.”

태형이 작게 말했다.

 

“뭐가요?”

 

“괜히… 하늘 씨까지 곤란하게 만든 것 같아서…”

 

하늘은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태형 씨.”

 

“…네.”

 

“재벌가에서 제일 위험한 사람은요,”

하늘은 태형을 똑바로 봤다.

 

“자기가 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생각은 하지 말아요?”

 

태형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오후.

태형은 혼자 연화가의 서재에 있었다.

책들이 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와…”

 

손을 뻗자, 오래된 가죽 표지의 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연화 가(家) 연대기>

 

“…연화…”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갑자기 머릿속이 강하게 흔들렸다.

 

붉은 하늘

그리고 금이 간 바닥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

 

태형은 책을 떨어뜨렸다.

 

“헉…!”

 

숨이 가빠졌다. 심장이 빨리 뛰었다.

 

“…헉... ㅎ...헉.... 이 기억은… 뭐지…”

 

그때, 서재 문이 조용히 열렸다.

“역시 거기 있었네.”

 

태형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문가에 서 있는 남자는 태형을 그윽하게 쳐다보았다.

선글라스는 없었지만, 그 붉은 눈은 확실했다.

 

“…김... 석진?”

석진은 미소 지었다.

 

“오, 기억은 없는데 이름은 기억하네?”

 

“… 어떻게 들어온 거에요...?”

 

“그건 됐고, 뭐 좀 확인하러.”

석진은 천천히 다가왔다.

 

“네가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지.”

 

“…? 지금 뭐하는.. 거에요?”

 

“뭐하긴, 널 방해하려는 거지 ㅎ”

 

석진은 솔직했다.

“네가 이 세계에 적응할수록, 페스타에서는 더 난리가 나거든.”

 

“… 페스타…?”

 

태형은 이를 악물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석진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신의 자리는 하나야.”

 

“…그게 전부예요?”

 

“…아니.”

 

석진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

“근데, 그게 제일 크지.”

 

그는 뒤돌아섰다.

“조만간 또 보자, 태형.”

 

“…다음엔, 좀 더 아플 거야.”

 

석진이 사라지자, 서재는 다시 조용해졌다.

태형은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 다시 당하는 일은 없어야 겠어.”

 

하지만 그 말 끝에는, 아주 희미한

결심 같은 게 섞여 있었다.

 

 


 

 

 

그날 밤.

하늘은 태형 방 앞에서 잠시 멈췄다.

안에서는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안 자나…”

 

노크하려던 순간, 안에서 들려온 태형의 목소리에 하늘은 귀를 기울였다.

“…도망치면… 안 되겠지…”

 

하늘은 문 앞에 잠시 서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안 도망쳐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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