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형은 근래 일들이 휘몰아치면서 머리가 더 깨질 듯 아파왔다.
하늘은 잠깐의 나들이를 제안했고, 결국 채비를 하고 바깥에 나가게 되었다.
밖으로 나왔을 때, 공기가 유난히 탁했다.
태형은 연화가 정문을 지나며 괜히 한 번 더 숨을 들이마셨다.
인간 세계의 공기는 언제나 묘했다. 무겁기도 하고, 가볍기도 한 것 같기도 한 기분이었다.
“…하늘 씨.”
“네?”
“저기… 혹시 제가 오늘 좀 멍해 보이면…”
“ .... 음 이미 멍하셔요 ㅎ”
“…아.”
하늘은 피식 웃었다.
“ㅋㅋㅋ 괜찮아요. 오늘은 외출 일정도 없고, 그냥 바람 쐬는 날 하자구 했잖아요~”
태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도 이유는 정확히 몰랐다.
그냥… 어제부터 머릿속이 계속 불안했다.
'내가 왜 여기 있지.
인간 세계에… 왜 내려온 거였더라...'
자신이 천사라는 건 알고 있었다.
신계에서는 날개가 있었고, 신력이 있었고, 하늘 세계 페스타에서 살았다는 것도...
그런데 그다음이 비어 있었다.
'어째서...? 인간 세계로 내려보낸 이유가 분명 있을텐데...'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실까나~?"
"앗.. 그게..."
"아까 못 들었어요? 오늘은 푹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헤헤
일단 저기 저 공원 쪽으로 가서 숨 돌리면서 산책이나 해봐요!"
"ㅎㅎ 좋아요.."
"어? 신호등 곧 꺼지겠다, 뛰어요!"
"ㅇ...어라 네...!!"
“.......... 헉 !!!!!!! 태형 씨, 앞 조ㅅ.....”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귀를 찢는 소리가 도로 위를 갈랐다.
빠앙 ____________!!!!!!!!!!!!!!!! 끼이이익—!!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긁는 소리와 사람들의 짧은 비명이 귀에 꽃혔다.
태형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눈앞으로 다가오는 검은 차량이 보였고 속도가 너무 빨랐다.
“…ㅇ ,,, 위험...!”
하늘의 팔을 잡아당기려는 순간,
세상이 느려졌다.
.
.
.
아니, 멈췄다.
태형의 시야 한가운데로, 붉은 눈이 스쳤다.
'내가 보여?'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렸다.
낮고, 익숙한,,,,
“…김석진”
태형이 조용히 그 이름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차량이 급제동했다.
차체가 미끄러지며 방향을 틀었고,
태형과 하늘은 그대로 인도 쪽으로 넘어졌다.
쿵!!!
“ㅎ..헉.... 엏…! ㅌ...태형 씨 !!!!!!…괜찮아요?!”
“네, 네… 저는..”
태형은 대답하지 못했다.
"허...허억....."
머릿속이 폭발하듯 움찔거렸다.
페스타의 하늘과 빛으로 된 계단 위 카센의 목소리가 울렸다.
'차기 신 후보, 김태형'
수군대던 천사들의 목소리와 그 속에 붉은 날개를 접은 악마 한 명의 자취
'인간 세계에서 1년을 버텨라.
.... 그곳에서, 너희는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
“윽…!”
태형은 머리를 움켜쥐었다.
어디선가 계속 울리는 목소리,
그리고...
석진의 모습이 보였다.
나와 같은 후보로 거론된 5000년 차 악마, 김석진
“태형 씨?!”
하늘의 목소리가 멀게 들렸다.
인간 세계에 내려온 이유가 그제서야 기억이 났다.
신의 자격을 증명하기 위해, 인간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
“…하… 하하...”
태형의 입에서 짧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제야…”
덜컥-
차량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운전석에서 내린 남자는 익숙한 미소를 지닌 석진이었다.
“아깝네~”
“조금만 더 가면 아주 제대로 보내줄 수 있었을 텐데 ~”
태형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너였구나.”
“오!! 기억이 돌아왔나보네?”
석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일부러 크게 치려던 건 아니야, 인간 세계는 규칙이 까다롭잖아?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네 ㅎ ”
“…왜.”
태형의 눈빛이 흔들렸다.
“왜 나한테 이런 짓까지 하는 거야...?”
석진은 잠시 태형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너는 너무 빨리 깨달을 것 같아서.”
“…뭘?”
“신의 시험이 얼마나 잔인한 건지, 알려주고 싶었어. 그게 다야 ㅎ”
그는 뒤돌아서며 덧붙였다.
“기억이 돌아온 건 축하해. 이제 진짜 시작이니까.”
석진은 그렇게 사라졌다.
잠시 후,
연화가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하늘은 태형을 힐끔거리며 몇 번이나 입을 열까 말까 망설였다.
충격적인 광경을 봤음에도 태형과 수상한 남자는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대화를 이어나가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흩어졌다.
하늘은 속으로 이 일을 회장님께 보고를 드려야 할 지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태형 씨.”
“…네.”
“아까… 무슨 일 있었던 거죠오... 어... 저 좀...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요?”
태형은 창밖을 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저, 사실—”
말을 멈췄다.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다.
“…조금 기억이 돌아왔어요.”
“…정말요?!!!”
“네... 그 사람은 절 원래부터 괴롭히던 사람이었어요.”
"헉..!@@ 그러면..."
"근데 할머니 걱정하실까봐, 그냥 이대로 둔 거에요
제가 나중에 다 정리하고 설명할께요"
하늘은 더 묻지 않고,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행이에요.”
“…왜요?”
“기억 찾았으니깐요.. !! 잃어버린 이유도 모르고 헤매는 것보단, 아는 게 낫잖아요.”
태형은 그 말에 가슴이 묘하게 조여왔다.
“…하늘 씨.”
“네?”
“…고마워요.”
“갑자기요?”
“제가… 인간 세계에서 해야 할 일이 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거든요.”
“… 인간 세계..?? ㅋㅋㅋ 또 이상한 소리한다 ㅋㅋ 뭔데요?”
태형은 잠시 생각했다.
신의 시험은 인간으로 살아보는 것.
힘이 아니라, 선택의 순간 속에서 현명해지는 것.
“…사람으로서, 잘 살아보는 거요.”
하늘은 잠시 태형을 보다가 말했다.
“…그거 저랑 잘 맞네요 헿”
“…네?”
“저도 사람으로 잘 사는 연습 중이거든요!!!!!!”
태형은 웃었다.
그 웃음은, 기억을 잃고 난 뒤 처음으로....
조금 진짜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태형은 깨달았다.
신계 테스트를 진행하기 위해,
인간 세계에서 해야 할 일은...
이 삶을, 도망치지 않고 살아내는 것.
그리고..
하늘의 존재가,
그 시험에서 너무 중요한 변수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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